그는 성큼 성큼 걷더니 어느샌가 저 멀리 사라졌어. 참 이상한 사내 같았어. 나는 창고 뒤쪽에 있는 흔적으로 눈길을 돌렸지. 바퀴자국이 들어왔던 흔적도 깊었어. 그런데 나간 흔적은 더 깊었지.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 더 깊었어. 만약 수레에 철괴를 잔뜩 싣고서 움직인다면 땅바닥에 비슷한 흔적이 남지 않을까. 흔적을 쭉 따라서 걷다보니 박가네 뒷문으로 이어졌어.
으리으리한 박가네 집은 정문과 뒷문이 있었어 정문은 양쪽으로 열리는 큰 문으로 되어있는데, 늘 머슴이 한명 서 있었지. 반면 뒷문은 다른 마을과 연결되는 길이였지. 그 길은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지 풀이 우거져있었어. 꺽인 나뭇가지와 밟힌 풀잎들이 보였지. 이 흔적을 따라가기 전에 얼마나 큰 수레로 얼마나 많은 양의 철괴를 가져갔는지 알아야했어. 나는 창고쪽으로 소리쳤지.
“점박이! 자네 아직 있나?”
“예이! 여기 아직 있슈!”
나는 그에게 박가네가 가지고 있는 수레를 크기별로 전부 가져오라고 했어. 창고와 뒷문 사이에 있는 수레바퀴의 흔적을 비교해서 어느정도 크기의 수레가 이런 흔적을 만들어내는지 알아볼 생각이었지. 박가네 첫째가 몸이 달았는지 금방 준비하더군.
수레의 크기는 제각각 달랐어. 그때는 다 그랬어. 명장이라고 소문난 대장장이라도 똑같은 물건을 찍어낸 듯 만들어내긴 쉽지 않았으니까. 수레는 보통 나무로 만들었는데 바퀴가 4개 있는 것과 2개 있는 걸로 나뉘었지. 주로 2개짜리 수레를 많이 이용했어. 2줄의 선이 오간 흔적이기 때문에 바퀴가 4개 달린 수레는 돌려보냈지. 그리고 바퀴의 간격을 확인했어. 비슷한 수레가 없었지. 그래서 흔적에 있는 바퀴 간격을 쟀어.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자투리 가죽끈이 있었어. 바퀴 사이의 간격 길이만큼 잘라서 손목에 감아놨지. 그리고 철괴를 가져와서 수레에 싣기 시작했어. 사라진 만큼의 철괴를 싣자, 흔적과 비슷한 깊이로 수레바퀴가 들어가더군.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어.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최소 두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한명은 수레를 끌고 한명은 횃불이나 호롱불 같은 걸 들고 있었을거야. 구멍 뚫린 천이나 가죽으로 밖을 보면서 창고를 찾았겠지. 수레를 끌고 쇠를 옮겼을거야. 쇠를 먹는 괴물이 있을 리가 없지. 사람 잡아먹는 짐승이나 요괴는 봤지만 쇠를 먹는 괴물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나는 사람이 저지른 범행이라는 판단을 내렸어. 그리고 박가네 첫째를 불러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지.
“쇠를 먹는 괴물은 없소. 보아하니 이건 사람 짓이오. 여기 흔적 보이시오? 수레바퀴가 지나간 흔적이란 말이오. 눌린 자국을 자세히 보면 깊이가 다르오. 이쪽에 있는건 희미한 반면, 저쪽에 있는건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깊소. 그러니까 더 묵직한 수레가 지나갔다는 소리지. 듣자하니 뒷 문이 다른 마을로 이어진다고 하더군. 그곳을 가봐야 범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소.”
박가네 첫째는 유심히 흔적을 살펴봤어. 두려움에 가득하던 눈은 분노로 서서히 변해갔지.그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외쳤어.
“옆 마을에 대장장이가 있다! 그 대장장이가 지난번에 우리를 찾아와서는 쇠 값을 내려달라고 사정하더니 나중에는 값을 내리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거라고 소리쳤지. 그 놈이다! 그 놈이야! 그 놈은 손재주가 뛰어나기로 소문난 대장장이인데 소문에는 철로 된 바퀴를 만들 수 있다더군. 옆 마을에 대장간은 딱 하나 있으니 우선 거기로 가보게나. 딱 보면 쇠망치질 할 것처럼 생긴 텁석부리 영감탱이니까 만나면 바로 알수있을걸세. 옆마을은 사내 걸음으로는 반나절도 채 안걸리니 금방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길을 떠났어. 뒷문에서 이어지는 숲길은 생각보다 순탄했지. 부러진 나뭇가지와 밟힌 풀잎 사이로 희미한 수레바퀴 자국이 이어지고 있었어. 숲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어. 사냥꾼으로 지낸 세월이 주는 위화감이였지. 나는 잠시 멈춰서 주변을 둘러봤어. 숲은 기이하게 조용했어. 바람 한점 불지 않았는데 너무나 고요했지. 숲은 조용한 곳이 아니야. 새가 지저귀는 소리, 짐승이 지나가는 소리, 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려야했어. 때로는 계곡 물이 흐르거나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 또한 들리곤 했지. 그런데 여기는 너무 조용했어. 이상할 정도로 말이야.
그런 경우는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야. 나는 이런 숲이나 산을 ‘겁먹었다’라고 표현하곤 했어. 겁먹어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거라고 말이야. 숲을 겁 먹게 하는 무언가가 근처에 있다는 소리지. 나는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숲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일까, 해가 중천에 떴다가 슬며시 질 때 쯤, 숲을 벗어났어. 다행히 별 일 없었지. 숲을 벗어나자 멀리서 마을이 보이더군. 나는 숲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느라 지쳤기 때문에 우선 쉴 생각이였어. 아무래도 허기와 갈증을 먼저 채우려했지. 그래서 주막에 들렀는데 그곳에도 그가 있었어. 어둑어둑해지는 마당 한구석에서 있는 평상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더군.
구멍 뚫린 갓, 낡고 허름한 도복과는 다르게 멀끔한 외모의 사내, 전우치 말이야. 그는 나를 보더니 씩 웃고서 말했어.
“난 이미 돼지를 잡고 왔다네. 근데 돼지를 잡고 나니까 어디서 쇠 비린내가 진동을 하더군. 그래서 그 냄새를 따라왔네. 자네는 생각보다 늦었군? 먼저 도착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자네가 지금 뭘 쫓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나는 어리둥절했어. 일단 배가 고팠기에 그가 걸터앉은 평상에 나도 앉았지. 그 위에는 개다리 소반이 놓여져 있었는데 돼지고기 수육이 정갈하게 썰려있었지. 나온지 얼마 안됬는지 뜨거운 김이 모락 모락 나오고 있었어. 게다가 옆에는 흔한 탁주가 아니라 소주가 놓여있었어. 나는 홀린 듯 그의 옆에 걸터 앉았지.
“자, 일단 한잔 하세나.”
그는 잔에 소주를 따르더니 내 쪽으로 밀어줬어. 나는 당연히 냉큼 받아 마셨지. 술이 목을 타고 짜르르 흐르는데 그 당시 소주는 꽤 도수가 높은 편이었어. 이번 수육을 쓰윽 밀어주더군. 나는 젓가락으로 수육을 한점 집어서 입에 넣었는데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꿀렁 넘어가더군. 나는 소주 병을 잡아서 잔에 가득 따르고 전우치에게 밀어줬어.
“잘 마셨네. 자네도 한 잔 받게나.”
여태 살면서 먹을 거 주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못봤지. 전우치에 대한 평가가 좋은 쪽으로 바뀔 무렵, 그가 다시 입을 벌려서 말을 꺼냈어.
“자, 이제 자네도 공범일세. 이 소주와 수육을 어떤 돈으로 샀을거라 생각하나? 바로, 탐욕스러운 돼지를 털었기에 나온거라네. 그러니까 이걸 먹은 이상 자네도 공범이라는 말이지. 하하하!”
나는 밀어줬던 잔을 다시 내 입으로 당겨서 털 듯이 밀어넣었어. 다시 한번 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 술 기운이 불콰하게 올라오는 가운데 생각을 정리했어. 역시 도사란 놈들은 믿을 게 못된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야.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요? 돼지, 돼지 노래를 부르더니 가장 돈 많은 사람을 턴거요? 그게 전에 봤던 박가네 댁이고? 나와 함께 걸어간 이유는 털 장소를 둘러보기 위해서였소?”
나는 잔을 부서질 듯 꽉 움켜줬어. 괴팍한 도사 놈들에게 엮이면 늘 일이 이상하게 꼬였단 말이지. 잔금도 아직 못받았는데.
“하하, 농담이오, 농담. 뭐 턴 곳이 박가네 댁은 맞지만 말이오. 그나저나 아직도 구린내가 아는데 은을 그대로 가지고 있나보오? 조심하시오.”
그는 수육을 젓가락으로 한점 집어넣고는 우물거렸어. 또 어느새 잔을 가져갔는지 소주를 따르고는 단숨에 삼켜버렸지. 그는 살짝 우울해보였어. 한숨을 살짝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지.
“나는 구린내를 맡는다오. 음,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아주 오래된 일이오. 도사가 된지 얼마 안됬을 때, 도성에서 양반네들을 골려주고 재물을 훔쳐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지. 항간에는 의적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었소. 그때 그를 만났지. 화담이라 불리는 서경덕 도사. 그는 나와 달랐소. 나를 유심히 보더니 한마디 했지.
‘구린내 나는 재물로 유세를 떠는구나. 너는 앞으로 옳지못한 수단으로 번 재물에서 구린내를 맡으며 살게 될게다. 언젠가 진정한 도를 깨닫는 날까지 말이다.’
그 후로 나는 탐관오리로 소문난 양반네의 집을 지날 때, 도적들의 은신처를 지날 때, 지나가던 상인에게 구린내를 맡게 되었지. 나도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걸세. 그렇게 도사 전우치가 다시 태어났지. 탐욕스러운 돼지를 혼내주는 정의로운 도사로 말이야.”
나는 오랜 시간 살면서 아직 전우치라는 이름을 들은 적 없는데 말이야. 그는 자기가 유명해지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어. 아마 화담 선생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했지. 그는 이 저주에 가까운 술법을 풀고 싶어보였으니까.
"그래서 탐욕스러운 돼지를 혼냈으면 된거 아니오? 나는 도사 선생이 사준 술과 고기만 얌전히 얻어 먹겠소이다."
그때 전우치는 눈을 빛내기 시작했어.
"쇠 도둑말일세. 거기서도 냄새가 난다네. 자네도 그 쇠 도둑을 잡고자 했으니 나와 함께하지 않겠나?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나는 꽤 실력있는 도사일세. 보탬이 될 걸세."
박가네가 털렸다면 굳이 쇠도둑을 잡아야 할 필요가 없었어. 그러나 숲 길을 지나오면서 너무 조용했던 세상을 떠올렸지. 이제는 의뢰가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이 생겼어. 쇠 도둑은 대체 누굴까. 내 짐작대로라면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움직 였을텐데.
"좋소. 그러나 내 말을 잘 따라줘야하오. 가능하겠소?"
무릇 도사라는 족속들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놈들이라 보통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었지. 도사라고 일반 사람에게 막 대하는 경향이 있단 말이야. 뭐랄까, 사람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곤 했었지.
"하하, 물론이오. 나는 따라다니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만 도와주겠소이다. 자, 다시 일행이 된 기념으로 한 잔 하시오!"
전우치는 어느새 나타난 또 다른 술잔에 소주를 넘칠 듯 따르더니 내게 주었어. 그리고 자기 잔에도 가득 따르고 잔과 잔을 부딧쳤지. 부딧치는 순간 잔 속의 술이 출렁이며 주르륵 흘러내려갔어. 그리고 서로의 입 속으로 흘러들어갔지. 고기 한점과 술 한잔에 하루의 피로가 쓸어내려갔어.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그때는 술을 좀 잘 마셔서 한동이 씩 마시고 그랬어. 정신을 차리니 누워있더군. 바로 옆엔 전우치가 자고 있었어. 얼마나 마신건지 속이 더부룩했어.
주막에서 허기만 때우고 소문 좀 들어보면서 대장장이를 찾아가려 했는데 일정이 어긋난거지. 나는 옆에서 코를 골던 전우치를 툭툭 건드려서 깨우곤 말했어.
“일어나시오. 대장장이를 찾으러 가야겠소.”
그는 툭툭 건드리는 내 발을 모기쫓는 것 마냥 손을 휘저었어. 그러더니 내 몸이 스르륵 뒤로 밀리더군. 허울뿐인 도사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것 같았어. 다면 유명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이상한 놈이긴 하지만. 나는 예전에 사냥꾼에게 물려받은 활을 들었어. 나는 그 사냥꾼에게 활을 물려받은 이후 늘 들고 다녔어. 시위를 풀고 지팡이처럼 말이야. 꽤나 굵직했기에 몽둥이 대용으로 쓰거나 지팡이 대용으로 쓸때가 있었지. 특히 이런 이상한 술법을 부리는 요괴나 도사에겐 더 유용했고.
활로 등을 푹 찌르자, 전우치는 마치 따끔한 벌레에 물린 것처럼 크게 움찔하더니 비척비척 일어났어.
“아,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건 짐작했건만. 그거 벼락맞은 나무로 만든거였소? 사람을 그렇게 깨우다가 타 죽소. 타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