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코시국의 졸업식

by 글도둑

졸업식이라는 게 참 별거 없다가도 뭔가 있을 것 같다. 혹시 나가 역시나 별 거 없다. 대학 근처에는 꽃다발을 파는 사람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사진기를 들고 돈 받고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보였다. 졸업식이 있는 오늘, 한파주의보였는데 말이다.


잔뜩 멋 부린 졸업생들이 보였다. 면접 복장 뺨치는 복장인데 굉장히 추워 보였다. 별 기대 없이 롱 패딩 하나만 걸치고 어슬렁대는 내가 이상해 보일 정도로. 이상하게 졸업에 대한 기쁜 마음이 없다. 뭐랄까, 미뤄놨던 숙제를 하나 해치워서 후련한 기분에 더 가깝다. 19살, 고등학교 졸업을 막 앞뒀을 무렵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면접을 보러 왔었다. 아쉽게도 예비번호를 받아서 결국 합격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거제도의 조선소에 취직했다. 3년 뒤, 집으로 올라와서 25살에 대학교에 다시 돌아왔다. 돌고 돌아서 온 대학교는 대학 생활이라기보다 미뤄둔 숙제 같았다. 이미 조선소 사내에 있던 전문대학 과정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었기에 더욱 그랬다. 기대도 없었고 만족도 없었다. 퇴사와 창업 이후에 필요한 보험을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학교를 다니면서 흥미 위주로 이것저것 시도해봤다.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거나 커피 동아리에 들어가거나, 재밌어 보이는 수업을 찾아봤다.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다면 글쓰기 수업과 대중영화의 이해가 전부다. 그 외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들은 뇌 어디 구석진 곳에 숨어있다. 어쩌면 이미 잃어버렸을 지도. 그래서 더 기쁘지가 않다. 4년이라는 시간 끝에서 남은 건 두꺼운 종이 한 장이 전부니까. 이게 뭐라고 사회는 이걸 필수조건이라고 여기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 중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동기와 인사를 나눴다. 저 멀리에서 각종 포토존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졸업생들이 보였다. 나는 패딩 위에 졸업가운을 걸치고 대충 사진을 찍었다. 손을 꺼내면 손가락이 얼 것 같아서 너무 귀찮았다. 포토존을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고 싶을 정도로 졸업식이 기쁘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그냥 동기와 계단에서 대충 사진을 찍었다. 퉁퉁한 패딩 위에 걸쳐진 졸업가운을 입은 사진을 보고 친구들은 살찐 햄스터 같다고 했다.


공부와의 인연은 이게 끝난 것 같지 않다. 기쁘지 않은 이유에는 분명 이곳에 다시 돌아올 것 같다는 예감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엔 '커피 대학원생의 일상'으로 돌아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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