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 날, 12시에 내가 근무하게 된 베이커리 카페로 향했다. 집에서는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버스에 내려서 손님처럼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지하 1층 매장으로 들어서니 에스컬레이터 양 옆으로는 식품코너와 푸드코트로 양분되어 있었다. 나는 식품코너를 지나서 왼쪽으로 돌아갔다. 진열대에는 빵이 가득했고, 한 명의 남자 알바생이 가게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을 지나쳐서 이번에도 후방 홀에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쪽에서는 지난번처럼 분주하게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다. 사실, 그때는 디저트를 만들고 있는지, 내일 생산할 빵의 재료를 만들어 놓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짧은 금발을 한 여성 파티쉐가 점장에게 말했다.
"새 알바 왔는데?"
"아, 네, 오셨어요? 혹시 옷 사이즈는 몇 입으시나요?"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나마 XL 사이즈의 유니폼이 내 몸에 맞는 것을 확인한 후, 빵모자와 앞치마까지 걸치고 전방 홀로 투입되었다. 전방의 홀. 그 안에 내가 서있게 될 줄은 몰랐다. 참 신기하게도 나는 언제나 소비자의 입장이었다. 학생 때도, 회사원이었을 때도 말이다. 내가 판매자의 입장이 되어볼 줄은 몰랐는데, 기분이 묘했다.
"안녕하세요,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나는 내 이름을 말하면서 그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았다. 노란 명찰에 이름이 쓰여 있었다.
"여기서는 전부 '00님'이라고 불러요. 참고하시면 되고, 손님이 오시면 '안녕하세요, 브리오 슈도 레입니다.'라고 응대해주시면 돼요. 여기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빵 이름 외우는 거예요. 빵 이름이 불어라서 꽤 어렵거든요. 우선 간단하게 빵에 대해서 설명해드릴게요. 빨리 외우세요."
그와 동시에 줄줄이 나오는 빵에 대한 설명들.
"우선 오른쪽에 있는 빵들은 프랑스 본사에서 반죽이 수입되고 매장 내의 오픈에서 구워져요. 해장은 안에 커스터드 크림, 위에 건포도 올려진 제품이고, 아몽드는 안에 아몬드 커스터드 들어가 있고 위에는 아몬스 슬라이스와 슈가 파우더예요. 자브리 코는 양쪽에 살구잼이 있는 크루아상 제품, 뽐므는 사과 필링이 들어있는 애플파이라고 보시면 돼요. 훼이에 떼는 커스터드 크림에 초콜릿 스틱이 한 줄 있는 제품이고, 빵 오 쇼콜라는 초콜릿 스틱만 두 줄 말려있어요.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은 초코 크루아상이랑 크루아상인데, 초코 크루아상은 위에 초코가 코팅돼있고 위에는 다크 초코 파우더 뿌린 거예요. 고흐 핀초스는 그냥 와플인데, 일반 와플, 초코가 코팅된 초코 와흘, 산딸기 잼이 들어간 딸기 와플이 있다고 보시면 돼요. 위에 있는 건, 크루아상 생지로 만든 식빵인 빵 드미예요. 이것도 와플처럼 안에 초코, 혹은 산딸기잼이 들어간 제품도 있어요. 여기 미니 빵은 기존 빵들과 동일한데 작게 만든 제품이에요. 이 메뉴들 이름을 외우셔야 카운터를 보실 수 있어요. "
외워야 하는 제품이 많았다. 내가 들어간 전방 홀에는 양쪽에 유리 진열대가 있었고 왼쪽 2층에는 디저트, 1층에는 샌드위치가 있었다. 오른쪽 2층에는 미니 빵, 1층에는 빵과 바게트 종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근데 단순히 오른쪽 빵들만 외우려고 해도 분량이 꽤나 많았다. 일을 빠르게 배우려면 빠르게 외워야 했다.
"커피도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우선 빵 포장이랑 빵 이름만 외워주세요."
북카페를 목표로 카페 일을 배워보자 했지만, 내가 온 곳은 제대로 베이커리였다. '카페'는 그냥 덤이었다. 백화점 내부에는 커피나 음료를 파는 매장이 꽤나 많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커피를 사는 고객분들은 대부분 빵과 함께 드시는 분들로 보였다.
한참 동안 빵 이름을 중얼거리면서 손님이 오면 선임 알바생이 불러주는 빵을 포장하기 바빴다. 그 사이, 다른 알바생이 한 명 더 왔다. 약간 긴 머리의 남자 알바였다. 해맑게 웃으면서 들오던 그는 인사를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신입이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 넵. 오늘이 첫날이에요."
"그렇구나. 오늘은 아마 6시? 6시 반? 까지 일을 배우다가 퇴근하실 거예요. 5시부터 샌드위치를 반 커팅해서 포장하고 6시부터 마감 할인 준비하거든요. 그거 조금 도와주시다가 퇴근하시면 돼요."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그는 모자를 안 쓰고 앞치마만 두르고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던 도중, 어느 정도 내가 익숙해지자, 그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제가 아까 건포도 들어간 제품 이름이 뭐라고 했죠?"
"헤... 헤장?"
"그럼 저기 자브리 코 안에는 뭐 들어가 있죠?"
"그... 살구 잼?"
"저기 뽐므에는요?"
"애플파이였으니까, 사과 잼?"
"사과 필링이라고 하시는 게 좋아요. 점장님이 조금 깐깐하셔서요. 슬슬 다 외우신 것 같은데, 바게트 종류도 알려드릴게요."
나는 그들에게 시험을 당하면서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고작 빵 이름을 외우고 내용물을 파악하는 건데, 첫날부터 용량이 초과였다.
"파리지엔은 저기 위에 길쭉한 거고, 여기 작은 데네쥬뜨는 이번에 행사용으로 나온 거예요. 두 개에 3,000원. 해장도 원래 3,300원인데 이번 달만 2,000원이에요. 참고하세요. 포숑은 파리지엔과 동일한 바게트인데 사각형처럼 생긴 제품이고, 바타르는 원통형, 원통형인데 갈색 제품은 통밀 100%예요. 이름은 꽁쁠레. 그리고 작은 직사각형 제품은 치아바타인데 그냥 바게트랑 비슷해요. 그리고 왼쪽 샌드위치랑 디저트 종류 설명해드릴게요. 타틀렛, 그러니까 타르트 종류인데 프레즈는 커스터드 위에 딸기 슬라이스, 헤장 블랑은 크림치즈에 청포도, 팜플 무스는 크림치즈에 자몽 슬라이스, 쇼콜라 바난은 바나나 슬라이스에 초콜릿, 시트 홍은 레몬 커스터드 크림이에요. 옆에 작은 쿠키 슈는 캐러멜 커스터드 크림 들어간 제품이고요. 그 옆에 있는 에 끌레흐에서 쇼콜라 밀크는 밀크 초코 커스터드, 아멍드는 다크 초코 커스터드, 얼그레이는 홍차 커스터드, 헤장 블랑은 청포도와 커스터드, 프레즈는 딸기 슬라이스와 커스터드라고 보시면 돼요. 밀푀유는 쇼콜라, 얼그레이, 클래식인데, 쇼콜라는 초코, 얼그레이는 홍차예요. 클래식만 약간 독특한데 위에 올려진 건 바닐라고, 안에 들어간 커스터드는 바닐라 커스터드.
그 밑에 바게트 샌드위치 아메리 깡은 햄, 피클, 계란, 토마토, 상추 들어가 있고, 뿔레는 닭가슴살과 토마토, 상추, 휘스 틱 믹스트는 치즈와 햄만 들어갔어요. 통이라고 돼있는 제품은 전부 참치마요랑 계란이 들어가 있고요, 바게트랑 크루아상 샌드위치 둘 다 있어요. 크루아상 믹스트는 햄이랑 치즈, 토마토와 상추가 있어요. 이 정도만 알아두시면 돼요. 쉽죠? 프로모션이랑 세트도 있는데 그건 다른 분에게 배우세요. 아, 그리고 커피랑 신상 음료도 다음에.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내일 점장님이 시험 보신다고 했으니까 모르시는 거 있으면 물어보시고요."
충분한 게 아니라 머리가 복잡했다. 바게트 샌드위치는 길쭉한 바게트에 갖가지 재료가,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크루아상에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 있는데, 항상 반 커팅해서 포장했다. 가격대는 8,500원부터 7,000원까지 였는데 바게트 종류가 더 비쌌다. 타틀렛은 흔히 타르트라고 알고 있는 것처럼, 손바닥만 한 원형 쿠키 위에 커스터드 혹은 크림치즈가 밑에 깔리고 위에는 과일이 올라가 있는 종류가 많았다. 다들 겉 보기에는 예쁘고 맛있어 보였다. 타틀렛은 전부 7,500원이었다. 밀푀유도 손바닥 만한 크기의 직사각형이었는데, 상당히 달아 보이게 생겼다. 에 끌레흐도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길쭉한 빵이었다. 군 훈련병 시절에 먹었던 에 끌레흐와는 차원이 다르게 얇았다. 전부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가격대가 최소 6,000원 대였다.
한참동안 빵 이름을 외웠고, 다른 알바생들의 짖궃은 빵 이름 테스트를 보던 중, 점장님이 후방 홀에서 나와 말했다.
"오늘은 5시에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부터는 12시 반부터 9시 30분, 마감까지 하실거에요."
점장님은 오늘 어떤 것에 대해서 배웠는 지 간단하게 물어보고는 다음번에 직접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점장님이 들어간 이후, 퇴근 준비를 하고 인사를 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다음에 보자고 이야기를 하자, 알바생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 군대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 알바였어요. 오늘 수고하셨어요!"
3시쯤에 도착해서 해맑은 웃음과 함께 다양한 빵에 대해서 알려주던 남자 알바였다. 그는 뭔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마음이 무거웠다. 회사 생활도 했던 내가 알바도 제대로 못하겠냐 마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역시 부담이 됬다. 심지어 처음으로 하는 알바에, 생소한 프랑스 계열 베이커리였으니까. 많은 빵들의 프랑스 이름을 외우면서 기나긴 알바 첫날이 그렇게 끝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