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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May 06. 2017

특별시민의 식사

#스포일러 주의!

영화 끝에서 변종구는 허름한 정육점에서 자신의 충실한 부하와 고기를 구워 먹는다.

상추 두장에 노릇노릇 구운 고기 두 점을 올리고, 부하직원에게 말한다.


"아~ 해봐."


부하직원 입안 가득 쌈을 넣어준다.

그는 다시 쌈을 싼다. 상추 두장, 고기 두 점.

그리고 쌈을 미처 다 씹어 삼키지 못한 부하직원의 입에 쌈을 쑤셔 넣는다.

컥컥거리는 부하직원에게 말을 한마디 던진다.


"끝까지 같이 가자."


변종구는 또다시 쌈을 싼다.

이번에도 부하직원의 입속에 쑤셔 넣을까 무서웠다.

다행히 그의 입으로 가져간다.

그는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영화 '특별시민'에서 최민식은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변종구가 되어 온갖 암투를 벌인다.

'선거'라는 바둑판 위에서 한수, 한수 신중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돌을 놓는다.

때때로 그의 모습은 '음식'을 통해서 드러나곤 한다.


1. 연어초밥

서울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자, 그는 24시간 대기소를 만들고 그 안에서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응급키트에 담겨온 초밥을 꺼내 한 입에 쏙 넣는다. 주황빛 색으로 볼 때, 연어가 아닐까. 연어, 고향으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죽는,  '회귀성 어종' 아닌가. 그는 연어초밥을 먹으려다가 구조대원들이 온다는 소식에 황급히 초밥을 내뱉는다. 예전의 변종구가 아닌, 서울 시장이 되려는 정치인 '변종구'로서.


2. 뒷고기

허름한 정육점의 뒤편, 그는 답답한 마음으로 정육점 주인과 뒷고기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신다.


"그때는 이게 그렇게 맛있었는데, 지금은 그 맛이 안나."


자신이 힘들 때, 도와주던 정육점 주인아주머니와 그의 아들은 그에게 추억이자 치유의 공간이다. 힘들 때, 기쁠 때, 가장 힘든 시절이자 순수했던 시절의 변종구를 떠올리는 장소. 그런 그는 더 이상 그토록 맛있었던 '뒷고기'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뒷고기는 팔고 남은 부위에서 남은 것들이다. 싼 맛에 서민들이 자주 먹는 고기다. 그런 뒷고기조차 얻어먹던 그가 맛을 잊었다. 어쩌면 서민 시절의 자신을 잊은 것은 아닐까.


3. 꽃게

한창 힘들던 그는 무당을 찾아 점괘를 본다. 중학생으로 보이던 소녀는 두루뭉술하게 미래를 말해준다.


"힘들 거야. 아무도 너를 알아주지 않을 거야. 그래도 버텨."


그런 이야기를 듣는 변종구는 울컥하고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단순히 중학생 무당이 한 말에 말이다. 무당이 먹으라며 내밀어준 꽃게 다리는 몸통과 이어져있다. 그 꽃게를 으적으적 씹고 쏙 빨아서 먹는다. 무당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버티기 위해서 그는 꽃게를 꼭 꼭 씹어 먹는다.


4. 낫토

여기자를 불러서 변종구는 낫토를 권한다.


"여기 낫토가 일본에서 건너온 거라 맛이 좋아."


직접 김에 끈적거리는 낫토를 싸서 권한 그에게 여기자가 말한다.


"저는 발 냄새 나서 싫어요."


그런 여기자는 정치인에게 비린내가 난다고 하던 언론인이었다. 사실,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지독한 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감춘채로 말이다. 변종구는 그녀에게 '젊구나'라고 말한다. 늙으면 이런 게 좋아진다면서 말이다. 발 냄새가 나는 낫토를 맛있게 먹던 서울시장 기호 1번 변종구. 정치판에서 구르고 굴러서 비린내가 풀풀 풍기던 그는 권력의 맛을 위해서라면 손에 피비린내가 나든, 입에서 발 냄새가 나든 상관하지 않는 정치인이 되었다. 눈물도 없는 비정한 정치인이 말이다.


5. 상추쌈

영화의 엔딩에 그는 상추쌈을 부하직원에게 쑤셔 넣는다.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말이다.

첫 번째는 그동안 잘 따라왔다는 고마움과 칭찬의 의미였다면, 두 번째는 너는 나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강요와 협박, 그리고 앞으로도 잘 따라오라는 명령에서. 끝에서 그는 자신이 먹기 위해서 상추쌈을 싼다.


상추 두 장, 고기 두 점.

입안 가득 상추와 고기를 욱여넣고 우적우적 씹는 그의 모습에서 기쁨보다는 비장함이 흐른다.

더 큰 한판을 위한 비장함이다. 더 잔인한 암투를 위한 비정함이었다.



영화, '특별시민'이었다. 다른 음식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 적은 음식도 연어초밥이 맞는지 확실치도 않다. 상추쌈에 넣어 먹었던 넓적한 고기가 어떤 종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의미로 느껴졌다. 꽤나 재밌게 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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