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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Aug 03. 2017

커피가 쓰다.

여느 때처럼,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서는 커피 값이 아까워서 쓰디쓴 아메리카노 밖에 못 사 마시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다 보면 집중이 잘 되는 데, 오늘은 유난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괜스레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메일이 온 게 없나, 카톡이 온 건 없나 확인했다.


그러다가 오래간만에 페이스 북을 들어갔다. 예전에는 친구들 소식 보는 재미로 페이스 북을 했는데, 요즘에는 광고와 유명 인기 페이지만 보여서 잘 접속하지 않았었다. 아주 가끔 한가할 때만 들어갔다. 오늘처럼 한가한 날에 말이다.


페이스 북에 들어가니, 역시 눈에 들어오는 건 '여행에 미치다'나 '유머 저장소'같은 인기 페이지였다. 밑으로 주르륵 내리던 도중, 예전 회사 동기가 올린 사진을 봤다.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듯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와 함께 기숙사 방을 쓰던 룸메이트였다. 그가 차 안에서 셀카를 찍은 사진이었다.


'차 끌고 대학 가는 중!'


그는 나와 함께 고졸 취업한 친구였다. 그런 그가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야간 대학교에 들어갔다는 의미였다.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꿈꿔왔던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뒤, 재직자 전형으로 야간 대학교를 가서 학위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의 상황과 내 꿈이 마찰을 일으키면서 회사를 나왔고, 당연히 재직자 전형도 포기했다. 심지어 퇴사한 뒤에는 재직자 전형으로 집어넣은 대학에서 등록금 달라고 연락까지 왔었다.


나는 순간 그가 부러워졌다. 내가 꿈꾸던 생활을 그가 하고 있었다. 그처럼 회사 생활과 대학 공부를 병행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힘든 만큼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은 더욱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회사가 싫어져서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보니 나는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다가 때려치운,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놈이 되어있었다.


내가 만약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도 저 옆에서 차를 타고 대학교로 공부하고 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의 내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껴안았다. 찐득찐득한 여름 바람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는 놈이었다. 살짝 한숨을 내쉬면서 폰을 끄고 내려놨다. 찰박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게 붙어서 흘러내린 물기가 내 손에 묻었다.


커피의 얼음은 거의 없었다. 녹아버린 얼음 때문일까, 커피는 연한 갈색 빛을 띠고 있었다. 검은 빨대를 입에 가져가서 커피를 마셨다. 유난히 커피가 썼다. 샷을 투 샷이었나 보다. 쓴 맛이 입안을 맴돌자, 나는 다시 스마트 폰을 킬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차곡차곡 쌓인 감정을 밀어 넣고 전 회사 동료이자, 동기, 룸메이트에게 댓글을 달아주기 위해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책은 더 이상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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