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맞는 사람

<일상 속의 인문학 한모금 1: 유목민 공립교사의 삶>

by 박한희
KakaoTalk_20260303_085349563_03.jpg 따뜻한 봄날, 벚꽃나무 아래서


공립학교 교사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정든 곳을 떠나야 한다. 이 사실은 극명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때로 드디어 이 ‘미운’ 학교 탈출이다! 라는 안도감을 주지만,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정들었던 학교에서는 눈물과 서글픔을 안겨준다. 그래서인지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다가도 ‘어차피 언젠가는 떠날 텐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게 된다.


퇴근 후 커피 한잔, 밥 한 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나이가 들수록 그 마음을 접는 법을 슬슬 배운다. 얼마 전 일본을 다녀온 후 여행지에서 사 온 기념품을 나눠드리려다 ‘너무 오지랖인가?’ 싶어 슬며시 가방 깊숙이 밀어 넣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체감하는 사실이 있다. 내가 먼저 부지런히 마음을 보이고 오지랖을 떨지 않으면, 또한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 인연이란 자연스럽게 잊힌다는 것. 관계의 거리감 앞에서 이제는 일종의 귀찮음, 선택적 만남이 발생한다.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과는 잠깐의 시간도 내기 아까운 귀찮음이 생기는 반면, 보고 싶은 사람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근처를 맴돌며 말 한마디 건네고 싶어진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참 이기적이고 간사하다 싶지만, 나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결이 맞는 사람을 놓쳤을 때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새 학교로 떠나신 어느 ‘국어 선생님’이 그랬다. 단어 한마디 한마디를 어찌 그렇게 유머러스하고 위트있게 하시는지, 그분의 말 솜씨에 무릎을 탁 치며 ‘역시 국어 선생님이다!’ 라며 웃던 작년 1년은 힘든 교직 생활을 녹여주던 참으로 편안한 시간이었다.


나 또한 올해 새로운 곳으로의 파견이 결정되어 이미 내 자리는 정리되어 없어진 교무실에 어색하게 들어섰을 때, 내 이름을 크고 반갑게 불러주던 그분의 목소리는 뭉클한 감동이었다. 송별회가 끝나고 망설임 끝에 다음 날, 커피 쿠폰과 함께 작별 인사 메세지를 보냈다. 마침 그분도 개학 후에 안부를 전하려 했다는 답장을 보내오셨다. ‘보내길 정말 잘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 인연만큼은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파견 합격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작년 한 해 업무 때문에 정말 고생 많으셨잖아요. 그 노력을 다들 아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이 되신 것 같아요.”


“별 말씀을요. 선생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제 업무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는걸요. 새로 가시는 학교 평판이 정말 좋고 괜찮다던데, 선생님께 맞는 곳이라 정말 잘됐어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서로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하던 그 눈빛을 여전히 기억한다.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냈을지 모른다. 문득 자문해 본다. 언제쯤 또 이렇게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예민하고 까칠해서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유독 어려웠던 건 아닐까?


세상에 100%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지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노곤노곤해지는 ‘티키타카’의 인연은 분명 존재했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곁에 두는 것, 그리고 인연의 끊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유목민 같은 교사 삶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사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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