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솔직한 사랑의 쟁취

<니체, 에리히 프롬>

by 박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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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연애의 기술을 묻는다면 나는 아마 '빵점'일지도 모른다. 소위 말하는 '밀당'이라는 것을 나는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지 않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보며 아둔하고 곰 같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더불어 친구들은 입을 모아 조언했다.


"절대 마음을 먼저 들키면 안돼."

"연락이 오면 시간을 계산했다가 일부러 몇 시간 뒤에 답장해."

"먼저 연락하는 것은 지는 거야!“


어느 아이돌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에도 고도의 심리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시대의 정석처럼 보이지만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숨기기보단 먼저 표현했고, 돌아가기보다 직진하는 게 편했다.


이런 내가 과연 연애가 능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그 당연한 진리가 통했다. 재미있는 점은, 나의 이런 '무방비한 솔직함'이 지금의 남편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매력이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훗날 내게 고백했다. 속이 너무나 잘 들여다보이는 나의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고.


그는 소위 밀당을 하는 여자들에게 마침 지쳐있던 상태였다. 연락과 메시지에 의미를 부여하고, 느린 답장에 마음을 졸이며, 마치 청문회나 면접을 보듯 가짜 웃음을 지으며 선을 넘는 질문들에 답하느라 피로감을 느끼던 그에게 있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확인을 하고 답장을 보내는 나는 신선한 충격 자체였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까지 답장을 빨리 하나?‘

그는 나의 마음이 마치 ’투명한 거울‘에 잘 비쳐보였다고 말했다. 굳이 싫은 척 기다릴 필요도, 마음을 떠볼 필요도 없는 관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짚신의 짝'이 되어주었다.

사람들은 흔히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기에, 마음을 더 많이 주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그만큼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의 마음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마음도 소중하다. 상대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해 덫을 놓거나, 장난을 치듯 간을 보는 행위는 결국 서로의 신뢰를 잃을 뿐이다. 나 또한 인간이기에 상대의 애정과 확신을 알고 싶은 욕구는 이해하지만, 그 확인이 '시험'이라는 선을 넘는 순간 사랑은 변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해왔다. 밀당에 쏟을 에너지를 '좋아하는 마음'에 들이붓는다. 그렇게 마음을 열심히 다 쏟아붓고 나면, 비록 관계가 끝에 이르더라도 미련의 고통은 크지 않다. 헤어짐 뒤에 오는 슬픔과 상실감은 누구나 피할 수 없겠지만, "그때 더 잘해줄걸" 혹은 "솔직하게 말해볼걸" 하는 후회는 깊지 않게 된다. 진심을 다했기에 언제나 깔끔하고, 나는 다시 새로운 사랑을 위해 걸어갈 힘을 얻었다. "후회 없는 사랑은 니체가 말한 '운명애', ’아모르 파티(Amor Fati)’와 닮아 있다. 결과가 이별일지라도 그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나는 내 과거를 기꺼이 긍정하며 나아갈 수 있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능력'이라고 했다. 내가 밀당이 아닌 직진을 선택했던 건, 사랑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으며 사랑을 억지로 받아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사랑의 능력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사랑은 결국 진실과 배려라는 도구의 작품이다. 결국 모든 관계에 있어 화려한 밀당의 전략보다 중요한 건, 상대를 향한 투박하지만 단단한 진심 아닐까. 오늘도 나는 밀당 대신 '진심'이라는 가장 빠른 길을 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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