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인문학 한모금 2: 사람 하나를 책임진다는 것>
한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우면서도 서늘한 일이다. 나의 말투, 사소한 습관,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24시간 내내 감시당하고 모방당하는 기분. 내가 내린 선택 하나하나가 아이의 인생 방향을 결정짓는 키가 된다고 생각하면, 문득 막중한 책임감에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아이의 모습에서 낯익은 나를 발견할 때마다, 이 존재가 나의 소유물이나 작품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꾸만 손을 뻗게 되는 이유다.
아이를 가르치다 보면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 조금 더 깊이 공부해 둘 걸, 세상을 더 넓게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다면.' 부모라는 과목은 미리 예습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매 순간이 실전이고 매 선택이 처음이다. 자식이 장성하면 과감히 손을 뗄 수 있을까? 어느 시점까지 가이드를 주고, 어느 지점부터는 못 본 척 눈을 감아주어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망설이고 방황한다.
누군가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평생의 짝사랑이라 했다. 내가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제 짝을 찾아 둥지를 떠날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사랑. 나 역시 그랬듯, 아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만의 여행을 떠날 테지만 부모는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그리워하는 존재다.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 떠오른다. 첫째도 그러했듯이 잠깐 짬을 내어 휴가를 내고, 얼른 회사로 복귀하리라 마음먹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참석했다. 첫째 아이 입학식 때는 울지 않았으니 둘째라고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입학식이 끝나고 내 몸집만한 가방을 메고 선생님을 따라 반별로 각자 교실에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무심코 본 순간, 가슴 한구석이 순간 무너져 내렸다.
나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들며 웃으며 멀어지는 그 모습이 마치 영영 나를 떠나가는 예고편 같아서, 혹은 낯선 세상으로 향하는 군대 입대의 행렬 같아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신랑은 주책이라며 핀잔을 줬지만, 그건 막연한 슬픔이 아니라 ‘절대적, 헌신적 사랑’이 주는 무게였다.
아이는 나의 품을 떠나 계속 한 걸음씩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 올 완전한 이별을 기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아직도 나는 미성숙한 부모이지만 비록 그 끝이 지독한 그리움일지라도, 기꺼이 이 영원한 짝사랑을 오늘도 지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