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처럼 배짱있게!

<빨간머리 앤>

by 박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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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몰라요.”


동화 속 수많은 주인공 중에서도 ‘빨간 머리 앤’은 그 화보만으로도 깊은 힐링을 항상 안겨준다. 어릴 적엔 그저 해맑고 귀여운 만화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서야 거대한 ‘빨간머리앤 전집’을 알게 되어 독파한 후, 그녀의 삶에 이토록 거대한 대장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록 지붕 집으로 잘못 ‘배달’된 고아 소녀 앤. 예상치 못한 인생의 경로에서 그녀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탈되곤 하지만, 특유의 낙관주의로 비극을 한 편의 희극으로 바꾸어 놓는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현실에 만족하는가?’ 진짜 나의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지도, 혹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삶이 매 순간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비극 속에서도 천국을 발견할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영어 교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학창 시절 재밌었던 것 중의 하나는 그저 심심할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남들이 말하는 ‘벽돌 서적’들을 독파하는 것이었다.

결국 많은 선택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지만, 만약 그때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모든 인생에는 선택이 따르고, 때로는 그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가끔 과거를 돌아오며 여전히 후회를 하곤 한다. 하지만 앤처럼 후회 끝에 절망은 하지 않겠다. 그녀의 밝은 태도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소중히 다루는 그녀의 진심과 낭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절망적인 순간조차 앤은 상상력을 발휘해 ‘아름다운 곳’으로 재창조해낸다.돌이켜보면 모든 수업과 행사가 완벽했던 적은 없었다. “이번 수업은 망했다”라며 자책하며 교실을 나온 적도 있고, 큰 행사에서 실수를 연발해 교장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던 적도 있었다.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앤처럼 배짱을 가지고 살아보려 한다. 그 곳을 자책과 망신의 장소가 아니라,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반짝거리는 무대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화려한 조명 속에 레드 카펫이 깔린 무대 위에서, 멋진 드레스를 입고 샴페인 잔을 든 채 여유롭게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단순히 현실을 외면한 채 밝게만 살자는 무책임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는 ‘실존적 용기’를 과연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우수수 무너진다. 앤이 폭풍을 겪으며 결국 작품 속에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듯, 나 또한 수많은 좌절을 거치며 모든 것의 집합체의 완성품인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어쩌겠는가. 어느 누구도 아닌 지금의 모습을 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을. 다시 다가올 시련 앞에서 이제는 어린 시절처럼 몰아치는 폭풍을 무방비하게 맞지 않고, 옷매무새를 단단히 여미고 덤덤히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의 멋진 '제 2막'을 기다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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