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도 마음이 깃드는가? <일본애니미즘,츠쿠모가미><하이데거 도구존재>
결혼 전부터 내 곁을 지켰던 통돌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드디어 바꾸었다. 사실 멀쩡히 잘 작동되는 녀석들을 굳이 왜 바꾸냐는 질문에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무거운 젖은 빨래를 안방 베란다까지 낑낑대며 나르던 수고를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안방 베란다 바깥에서 건조기는 묵묵히 버텼지만 특히 ’극단적인 날씨와의 싸움‘에서는 항상 졌다. 뜨거운 한여름이나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밤에는 정해진 시간을 넘기고 3~4시간씩 쉬지 않은 채 마음대로 빙빙 돌아갔다. 그래서 건조기를 열어보면 빨래는 이미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는데, 계기판은 여전히 2시간이나 남았다며 고집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우리 집 전기료 인상은 건조기가 한 몫은 했을 것이다.
드디어 마침 오래된 침대를 새로 들이며 가전도 함께 교체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빨래 바구니를 들고 안방 베란다까지 낑낑거리며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어졌다. 베란다는 운동장처럼 넓어졌고 나의 삶은 쾌적해졌다. 신랑도 10년 넘게 이고지고 했으면 충분했다며 큰 시험을 마친 학생을 대하는 마냥 어깨를 툭툭 쳐줬다. 하지만 집 밖에서 수거를 기다리며 덩그러니 놓인 녀석들을 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마치 가기 싫은 곳으로 억지로 떠밀려가는 아이처럼 딱해 보였다고 할까.
"우리 아직 쓸모 있어요.", "더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나의 편리함을 위해 함께 한 동료를 매몰차게 내쫓는 기분이었다. 영화 <토이 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저들끼리 서로를 다독이며 ”잘 가게.” 작별 인사를 나눌 것만 같았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가 물건을 사용할 때, 그 물건이 너무 익숙해져서 마치 나의 몸 일부처럼 느껴지는 상태를 설명했다. 아마 세탁기와 건조기가 떠날 때 비로소 그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내 삶의 세계를 구성하던 존재의 일부‘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가전제품일 뿐이지만 좋은 미래를 위해 기도했다. 부디 누군가에게 또다시 귀한 존재가 되어 열심히 살아가기를. 사람도, 동물도, 하물며 물건도 오랜 시간 같이 살다보면 무언가는 ’반드시’ 깃들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공감할만한 주제가 있다. 오랫동안 애지중지하고 소중히 여기는 물건으로 힘을 빌리거나 마음대로 이용해 적을 파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바로 도구를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정성껏 사용하면 그 안에 영혼이 깃든다는 믿음인 이른바 일본의 ’츠쿠모가미‘를 나도 느꼈을지 모른다.
떠나기 전, 두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누군가는 이제 버려질 가전제품을 찍어서 무슨 소용이겠냐 하겠냐만은. 이제는 세련되고 조용한 기계가 집안을 채우고 있지만, 찍어놓은 사진을 들춰보며 기억하려고 한다. 투박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며 온기를 나눠준 나의 첫 통돌이와 건조기, 사람에게도 느끼기 힘든 10년간의 ’온기‘과 ’마음‘을 간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