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을 담은 소울푸드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by 박한희
진안 마이산 탑사


때때로 거리를 지나갈 때 무심코 맡게 되는 스치는 냄새나 혀에 닿는 음식의 맛은, 나를 무방비하게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데려가게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라 부른다. 뇌가 기억을 논리적으로 인출하기 전, 감각이 먼저 그 시절의 공기와 감정을 통째로 눈앞에 펼쳐놓는 것이다.


어느 유명한 베이커리에 방문했을 때의 얘기이다. 오픈 런을 목표로 반드시 그 딸기 케잌을 사리라 다짐하고 도착한 순간, 이른 아침 갓 구운 통식빵의 고소한 향기가 갑자기 코를 찔렀다. 순식간에 나는 대학생 시절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영국 어학연수 시절의 추억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너무나 비싼 영국의 물가 때문에 난 늘 허기가 졌고 지갑은 가벼웠다.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던 부모님의 말씀과 다르게 순전히 나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계속 손을 벌릴 순 없었다. 그래서 갓 나온 커다랗고 제일 싼 통식빵 하나를 빵집에서 사서 품에 안고, 길거리에서 정신없이 뜯어 먹던 그 쫄깃한 식감과 따스한 온기. 그때의 식빵은 단순한 탄수화물이 아니었다. 낯선 타국에서 홀로서기를 의존하고자 도와준 따스한 친구 그 자체였다. 식빵 향기는 지금도 나를 그때의 막막하지만 설레던 20대로 되돌려 놓곤 한다.


또 다른 기억의 문은 그 흔한 짜장면의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냄새와 함께 열렸다. 신규 교사 시절, 무작위 발령으로 인해 집과 아주 멀리 떨어지게 되었고 부득이하게 자취방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낯선 곳에서의 자취 생활과 이사는 그 중 커다란 숙제였다. 요즘이라면 교직 생활에 있어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만, 당시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던 반의 귀여운 남학생 다섯 명을 동원해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 유혹하여 토요일 주말에 불러 복작복작 이사를 치렀다.


대충 이삿짐을 다 옮겨놓고 작은 자취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둘러앉아 먹던 그 짜장면의 맛이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서툰 이삿짐 상자들이 한데 얽힌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 아이들은 군대를 갔고 성인이 되어 얼굴도 희미해고 있지만, 기름진 짜장면의 푸근함과 연대감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여전히 내 감각 속에 생생히 기억되어 있다.


그렇다. 우리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무엇‘을 먹으며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에 의해 '기억의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 오늘도 나는 식탁 위의 다양한 음식들을 마주하며 잃어버리고 있었던 나만의 시간들을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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