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지 벌써 올해 11주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1년 결혼생활기간 동안 우리는 이사만 8번을 했다. 아이 둘을 낳아 첫째 아이가 벌써 4학년이다. 아이친구들의 엄마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이사 얘기로 흘러 8번 이사했다고 말하면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백이면 백 어떻게 그렇게 이사를 다녔다며 하나같이 입을 오자로 벌리고 신기하다는 눈빛 반 대단하다는 눈빛 반으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나도 이렇게 이사를 다닐 줄 몰랐다. 군인 남편을 따라 정읍, 삼척, 서울, 인천, 다시 강원도, 다시 서울.. 지금은 경기북부로 이사를 왔다. 군인이라고 다 똑같이 이렇게 이사를 다니는 건 아니지만 이사주기도 보직마다 다르기에 우린 그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갈 수밖에 없다.
이사는 외롭다. 언제나 정든 친구들, 지인들, 선생님들, 익숙한 동네를 떠나게 한다. 사람도 공간도 나에게 편한 게 최고인데 이사는 항상 나에게서 내 주변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리곤 낯선 곳에서의 다시 시작.
아이들이 어렸을 땐 어린이집 구하기가 어려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복닥복닥이었다. 우리에게 맞는 병원을 찾기도 별따기다. 낯선 동네에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보며 아이들에게 맞는 병원을 찾는 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용실은 또 어떻고. 미용실 한번 잘못 방문했다간 아이들 머리가 꺼벙이처럼 되어 다시 기를 때까지 몇 달을 속상해해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학원 찾기도 어렵다. 지인 한 명 없는 타지에서 인터넷 정보로만 학원을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인터넷은 광고가 많으니 좋아 보여 보냈다 막상 너무 별로인 경우가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종종거려야 하는 이사 후 적응하기는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제일 어려운 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다. 나에겐 가족뿐. 외로움에 사무친다. 하루 종일 입에 거미줄을 치고 있다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이들이 유치원생도 아닌데 학교 다녀오면 엄마 안 보고 싶었냐고, 엄마는 너희들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사를 다니다 한 번은 친정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하기도 했는데 그때 얼마나 좋았던지. 내 결혼생활 내내 그렇게 활발했던 적은 그때뿐일 거다. 친정도 자주 가고, 친구들과 점심도 자주 먹고, 공동육아도 하며 바쁘게 살았었는데. 지금은 그땐 그랬지 하며 그리워하고 외로워할 뿐이다. 하루 종일 집안일이나 하고 침대에 누워서 쉬다 멍하니 창밖이나 바라보면서 말이다.
타지에서의 오랜 생활이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긴 외로움이 양극성장애라는 병을 키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 약을 안 먹고 있긴 하지만 외로움이 스멀스멀 올라와 내 얼굴부터 무표정으로 만들면 다시 눈물이 차오르고 또 병원에 가야 하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이사는 이렇듯 나를 자꾸 무너트린다. 애써 중심을 잡으면 또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 시기가 돌아온다. 나는 언제나 애쓴다. 무너지지 않도록, 쓰러지지 않도록. 애를 써서 살고 있다. 항상 낯선 곳에서.
아이의 학교 방과 후 공개수업에 갔다가 우연히 어떤 엄마와 대화하게 되었는데 같은 군인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이사 온 곳은 군인관사가 아니라 일반 아파트여서 군인가족을 만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서 아이의 공개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한참 둘이 떠들어버렸다. 역시 이사라는 같은 고충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되고 비슷한 처지에 동질감을 느껴 하루 만에 친밀감이 확 들었다.
나도 드디어 여기서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건가..! 내년이 되면 또 이사를 가야 하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즐겁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인데 아는 사람 한두 명이라도 있으면 낯선 곳에서 조금이나마 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오늘도 애를 쓴다. 아이의 학교와 학원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며 사람도 사귀면서. 우리의 8번째 이사와 9번째 이사 사이에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기쁜 삶이 되도록 부단히도 애를 쓴다. 외로움이 깔려있는 이곳에서 커다란 행복을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