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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Oct 10. 2024

아들이 주는 10만 원


카카오톡 프로필에 생일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의례적으로 축하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편한 지인사이끼리도 간단하게 생일축하 인사만 주고받으면 좋겠지만 카카오톡에 생일표시가 뜨면 아무래도 선물하기 버튼을 눌러 작은 것이라도 선물을 하게 된다. 나는 그런 형식적인 선물과 축하들이 부담스럽다. 정말 친한 사이라면 생일정도는 외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생일표시를 없앤 지 벌써 몇 년째다.

생일표시를 없애면 생일에 받는 축하는 가족들과 오랜 기간 나를 알고 지낸 친한 지인들로 한정된다.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한. 소박하게 가족들과 하는 생일파티는 내 생일을 더 특별하고 기쁘게 만든다.


얼마 전 소박한 나의 생일이 돌아왔다. 생일 전날엔 마라탕을 먹고 싶다던 둘째의 말대로 마라탕을 얼큰하게 한 그릇씩 해치웠다. 집에 가기 전에는 집 앞 맛 좋기로 소문난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하나 샀다. 엄마 제발 초콜릿케이크 골라줘 하는 아이들 말 따라 나도 사실 먹고 싶었던 초콜릿케이크를 골랐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작은 나의 생일파티를. 초는 내 생일과 상관없이 꽂고 첫째 아이는 거실과 주방에 불을 꺼주었다. 축하받는 것이 민망한 나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신이 났다.

목청껏 부르는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면 생일선물 개봉 타임이다. 고사리 손으로 귀엽게도 선물을 포장한 둘째와 아직도 뭘 선물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첫째. 그리고 자신이 선물이라는 남편. 하하.

둘째가 준 선물 포장을 풀어보니 그 안에는 자신이 아껴둔 젤리와 껌과 함께 현금 2만 원이 들어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돈을 엄마에게 준다고! 괜찮은데. 그래도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안 받기도 뭐 하고 해서 고맙다 고맙다 칭찬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본 첫째는 갑자기 방에 들어가 부스럭부스럭하더니 무려 10만 원을 들고 나와 나에게 건넸다. 5만 원짜리 1장과 만 원짜리 5장. 분명 자신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받은 용돈을 꽁꽁 모아둔 돈일 텐데. 그 돈을 엄마에게 턱 내밀다니. 세상에나. 엄마는 이렇게 많은 돈은 괜찮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이라며 기어코 내 손에 돈을 쥐어준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말이다.


사랑과 마음의 크기를 돈으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게 작은 돈일지라도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랑과 마음은 분명히 있다. 셀 수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 사랑과 마음이. 아이들이 준 12만 원이라는 생일선물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몰라 돈으로 준비한 사랑하는 마음. 엄마 사랑한다고 생일축하한다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따뜻하다.

초콜릿 케이크를 한 조각씩 잘라먹었다. 워낙 맛있는 케이크가게여서 그런지 아니면 그날따라 마음이 행복해서였는지 초콜릿 케이크는 달고 또 달았다. 소박하고 달콤하고 행복한 생일. 바로 내가 원하던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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