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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베트남의 첫인상

아무것도 모르던 14살에 마주한 낯선 나라, 이게 맞아?

by 반쯤 사이공니즈
어? 이게 아닌데? 숨이 안 쉬어지는데?

14살 때 내가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베트남 공항 밖으로 첫 발을 딛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훅- 하고 엄청나게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심장을 압박했다. 깊은 곳으로 잠수했을 때, 짓누르는 물속의 압력처럼 느껴졌다.


안 되겠다, 나는 이곳에서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약속했던 계단이 있는 집, 오빠가 말하는

언어를 잘 배울 수 있는 더 나은 환경 같은 건 더 이상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는 거지? 가슴이 이렇게 답답한데?


늦은 밤 공항 출국장 게이트로 나오니, 한적했던 내부와 달리 연예인이라도 오는 것 마냥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 인파는 신기하다는 듯이 한 명 한 명 나오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단 한 명을 위해 친인척까지 온 가족이 다 마중 나오거나, 그저 사람구경을 하기 위해 그곳에 모여 있었다.


카트를 끌고 택시를 향해 가는 한국인 가족인 우리를 사람들의 낱낱이 뜯어보는 눈길들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접해보는 낯선 나라의 사람들, 그 당시의 베트남 사람들은 정말 말랐고, 키가 대부분 작았으며 피부가 햇빛에 그을려 어두웠다.

지금처럼 한국인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밝은 피부와 멋진 차림의 베트남 사람들을, 그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택시를 타니, 퀴퀴한 냄새와 함께 이제 막 틀어진 에어컨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겼다. 냉기가 돌기 시작하자 조금 진정이 되었다. 아빠는 의기양양하게 어수룩한 베트남어로 목적지를 말했고, 넉살 좋게 택시기사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낯선 언어를 자신있게 하는 아빠가 신기했다.

생각보다 더 낯설고 강한 충격에 불안감은 점차 커져갔다.


일부 가로등이 비추는 곳 말고는 어둠뿐인 도로들을 지나서, 어느 골목 안에 위치한 3층짜리 주택 앞에 내렸다.

앞에서 보니 건물이 굉장히 얇고 길었다. 그리고 이 어둠은 집 안으로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집안에서는 처음 보는 베트남 아주머니가 나와 문을 열어주셨다.

집주인인가? 우리가 이곳에 올 거라고 말해 두지 않았나? 우리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민폐를 끼치는 거 아닌가? 불안감이 엄습할 때 아빠는 그분이 우리를 도와주실 가정부 아주머니라고 소개했다.


가정부 아주머니? 무슨 말이지? 청소와 밥을 해주신다고? 그러고 이 집에서 같이 지낸다니? 감도 안 잡히지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고 들어가니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 집 내부구조에 놀랐다. 대문을 열자 화장실 타일 같은 것이 깔린 넓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휑한 거실처럼 보이는 곳을 지나 끝까지 들어가니 부엌이 나왔고, 부엌 앞에는 계단이 있었다. 첫인상은 그저 어둡다고 느껴졌다. 바깥에 있는 칠흑 같은 어둠 때문인 걸까? 아님 집안에 깔려있는 어두운 대리석 바닥 때문인 걸까?


맨발에 착착 감기는 대리석 바닥을 딛으며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한 층마다 앞뒤로 방이 2개씩 등장했다.

나는 2층의 뒤쪽방, 엄마아빠는 바로 앞방을 쓰고, 오빠는 3층방을 골랐다. 각 방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널찍한 방 한가운데는 거대하고 딱딱해 보이는 침대와 옷장이 있었다. 그 시꺼멓고 무거워 보이는 옷장이 다소 무서웠다.


습하고 더워서 잔뜩 찜찜해진 몸을 씻기 위해, 샤워기를 잡고 물을 틀었다. 미지근하고 뭔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물이 나왔다. 최대한 찬물을 틀어도 미지근했다. 뜨거운 물은 손이 데일 것처럼 뜨거운 것을 보니 온수기는 작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씻고 나오니 긴장이 풀리고 안심이 되었다. 보송해진 몸을 눕혀 낯설고 거대한 침대에서 잠에 들었다. 처음으로 가져보는 이렇게 커다란 내방은 두려움과 함께 잔잔한 떨림을 느끼게 했기에 같이 자겠냐는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다.


다음 날, 꿈속에서 아침에 눈을 뜨니 다시 한국이었고, 상쾌하고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아,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이내 곧 지난밤의 습한 공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건조하고 텁텁한 더위를 느끼며 깨어났다.


일어나니 방 문 근처에 내 두 손가락 두 마디 만한, 시꺼멓고 둥근형체가 보였다.

안경을 쓰고 확인하니 반질반질 윤기 나는 갈색 바퀴벌레가 뒤집어진 채 아둥거리며 말했다.

어서 와, 베트남은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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