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았던 베트남 3층 주택의 바선생, 라따뚜이, 배트맨 이야기
어릴 때 나의 로망 중 하나였던 계단이 있는 주택은 나의 생각보다 더 많은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곳이었다.
집의 크기는 굉장히 컸다.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4 식구
옹기종기 모여 살던 나에게 방이 6개, 화장실이 7개,
거기에 옥상 테라스까지 딸린 주택은 거대했다.
아무리 깔끔하게 산다고 해도, 주택이라면 그런 해충들의 침입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꼭 우리 집에 살지 않더라도 이웃집 혹은 길 밖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아주 작은 틈으로도 들어오며, 심지어 몇 층이건 날아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상, 혐오감을 줄이기 위해 바퀴벌레를 바선생, 쥐를 라따뚜이, 박쥐를 배트맨으로 표현하겠다.
나에게는 그 주택에 살면서 방에 들어가기 전 불을 켜고 방안을 한참을 확인하고 나서야 들어가는 습관이 생겼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활동하다 불이 켜지면 파사사삭 흩어진다.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난다. 벽, 천장, 침대 밑, 심지어는 화장실에 세워둔 두루마리 휴지심 안에도 있다. 14층 아파트 창문 밖에서도 날아들어오는 놈들이다.
그들은 꼭 죽어도 기어코 인간들 눈에 띄는 곳까지 기어 나와 죽는다. (인간들을 안심시켜 남은 개체들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죽은 바선생조차 치울 수 없었는데, 주로 부모님이나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께 도움을 청해야 했고, 지금도 바선생이 가장 두렵다.
바선생의 존재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과 같은 것이라서,
베트남사람들은 대부분 바선생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쿨 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치워주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고 처분하는 시스템이 열악해서 그랬을까? 그 당시 베트남의 스트릿 라따뚜이들은 등치와 영양상태가 좋았다.
집이 골목 안에 있었는데, 오빠와 비가 온 날 장우산을 들고 집으로 걸어 가는 중이었다. 골목어귀에 쓰레기 봉지가 바스락 움직였다.
신기한 마음에 장우산으로 그 쓰레기 봉지를 툭 찔렀고, 정말 팔뚝만 한 라따뚜이가 봉지를 찢고 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집으로 내달렸다.
한 번은 라따뚜이가 집에 침입했다는 걸 부모님이 알아차리셨다.
여러 가지 흔적이 나오기 마련인데, 배설물이라던지,
라면, 밀가루등 식품 포장지에 구멍이 뚫려있곤 했다.
그러고 주로 밤에 활동을 하다 보니 밤에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가 있었다.
중요한 건 같이 동거하는 중이냐, 외부에서 잠깐 침입을 한 거냐 인데, 다행히도 밖에서 들어온 한 마리였기에, 부모님은 날을 잡고 라따뚜이 잡기를 실시했다.
먼저 현관문과 부엌으로 가는 문을 닫고, 구석으로 몰기 시작했다. 그 당시 베트남의 살충제는 무식할 정도로 독했는데, 그걸 2통을 다 써서 실내가 연기로 찰 정도가 되었음에도 라따뚜이는 끄떡없었다.
그때 우리는 아빠가 쥐를 무서워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결국 고무장갑을 낀 엄마가 빗자루로 때려잡은 그날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베트남에서 오히려 고양이들이 커다란 라따뚜이에게 도망 다닌다는 소문을 직접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살았던 주택의 옥상 테라스에는 삼각형 지붕이 있었는데, 이경우 배트맨들의 좋은 거주지가 될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옥상 바닥에 과일씨와 지저분한 것들이 떨어져있었다. 옆집을 의심하며 매일매일 치우시던 엄마는 대낮에 지붕안쪽에 대롱 매달려 낮잠자는 배트맨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 오해를 푸실 수 있으셨다.
그들은 주로 라따뚜이 소리 같기도, 새소리 같기도 한 소리로 찍찍찌르르 같은 소리를 내며 운다. 그러고 밤새 어디선가 물어온 나무열매를 열심히 먹고 씨와 배설물을 바닥에 책임감 없이 던져둔다.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밤에 날아다니는 걸 본다면 높은 확률로 배트맨일 것이다. 늦은 밤 낮게 날아다니고 있는 새를 본다면 자세히 관찰해 보시길.
아, 베트남에서 주택은 결코 우리만 사는 게 아니었다.
모든 생명체에게 더위와 비를 막아줄 좋은 장소가 되어준다. 각오한 자만이 견뎌낼 수 있는 주택 생활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파트는 환경에 따라 해충의 출몰이 적다. 그리고 거의 15년 전쯤의 이야기다. 지금은 도시 라따뚜이들의 등치도 현저히 작아졌으며, 배트맨도 못 본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저 과거의 야생에서 살아남았던 나의 경험과 썰로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