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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검정고시를 봤다-1탄

베트남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렸던 평범하지 않았던 선택에 관한 이야기

by 반쯤 사이공니즈

중학교를 일주일 다니고 베트남으로 왔던 내가,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결정은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이전에 말했듯 로컬학교에 1년 정도 청강생으로 다니고 나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베트남에서 언어를 배우기 위해 좀 더 자유롭게 학교를 선택하고자, 검정고시를 먼저 치러서, 중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갖춰두자는 전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에 닿은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선택에 큰 불만이 없다.


오빠는 중학교 2학년까지는 마쳤기에 조금만 공부하면 쉽게 고입 검정고시는 패스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중학교는 일주일 다니고, 선행 학습조차 하지 않았던지라 많은 주변인들이 걱정을 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내가 던져졌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오빠와 함께한다는 것에서 큰 걱정은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입 검정고시

보러 한국으로 갔다.


당시 검정고시는 허들이 많이 높지 않았고, 일정한 평균점수를 넘으면 합격할 수 있었다. 나는 높은 점수보다는 오로지 합격만을 목표로 공부했다. 사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내가 어떻게 공부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안 될 거라고 입 모아 말하는 주변 어른들에 반하여 더 해내겠다는 의지가 불탔던 것은 기억난다.

그렇게 오빠랑 나는 단 둘이서, 한국으로 검정고시를 보러 떠났다. 부모님도 내가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계셨고, 처음 시험은 경험으로 쳐도 괜찮다고 나에게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하셨다.


한국에서 우리가 시험을 치르고 온 뒤, 아빠는 시험결과가 나오는 날을 달력에 크게 표시하셨다. 그날이 오자 가족이 노트북 앞으로 다 같이 마주 앉았다. 느린 인터넷으로 겨우겨우 로딩이 되던 시험 결과가 표시되던 인터넷 창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오빠와 나의 수험번호를 하나씩 넣었다. 당연한 듯 오빠의 합격결과를 확인한 뒤, 나의 차례가 왔다.

나는 합격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아마도 부모님은 실망할 나를 어찌 달래줄지 대비하고 계셨을 거다. 그렇게 나의 이름 밑에 합격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비교적 높은 시험점수와 함께.


내 나라에서 느끼는 서러움

베트남에 온 뒤, 처음으로 한국에 가는 건 시험에 대한 긴장감을 압도할 만큼 신나는 일이었다. 오빠와 단둘이 부모님이 꼼꼼히 준비해 준 어른들의 전화번호 리스트를 손에 쥐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향했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면, 힘들었던 건 시험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어린 나이에 처음 느꼈던 '집 없는 신세'의 서러움이었다. 가장 친했던 이모 댁에서 신세를 지면서, 엄마처럼, 친구처럼 편했던 친척, 이모들에게서 눈칫밥을 경험했다.


밤에 어렵게 연결 된 엄마와의 국제통화에서 참아오던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끅끅 울면서 엄마에게 보고 싶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한국이었는데, 정작 내 입에서 튀어나온 ''은 베트남에 있었다.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어른들의 입장도 많이 곤란하셨으리라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아픈 기억이 더 앞서는 건 어린 나이에 내 나라에서 견뎌야 했던 소외감과 서러움이 너무 아프게 남았기 때문일 거다. 최대한 폐를 안 끼치려고 밥상 차리는 걸 돕고, 설거지를 해두고,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지냈다.


여기저기서 상처받았던 우리를 정말 친 자식처럼 돌봐주시고 받아주셨던 이모에게서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우리가 끼쳤던 민폐에 대해서 뒷 말이 나오는 건 막지 못했다. 내가 어려서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뒤섞여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음을 지금은 이해한다.


길고 자세하게는 설명하지 못 하지만, 내 모국에서 경험하는 서러움이 뭔지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많은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그 순간이 내 마음속에서 베트남이 제2의 집으로 자리 잡게 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 한 고개는 넘었으니

다음 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진짜 보스는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이 함축된 대입 검정고시였다. 오빠도 나도 이건 독학으로는 무리가 있었기에 한국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학원을 다니는 방법을 선택했다. 학원을 3개월 다녀서 합격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무수한 참견과 걱정, 조언이 우리 뒤를 따라붙었다.


베트남에서 온 남매가 검정고시 학원에

등장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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