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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검정고시를 봤다 - 2탄

베트남에서 온 남매의 서울 검정고시 학원 적응기

by 반쯤 사이공니즈



1탄에서 풀었 듯, 나와 오빠는 베트남에서 단둘이 한국으로 건너와 고입 검정고시 시험을 잘 치렀고, 합격했다. 이리저리 독학으로 치른 고입검정고시와 다르게 대입 검정고시는 절대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그 당시, 1년에 검정고시는 2번 4월과 8월에 열렸기에 다다음 시험을 노리고 그 기간 동안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학원에 부모님이 미리 전화를 해두었고, 우리는 사람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신도림역에서 나와 학원을 찾아갔다. 교제를 받고, 등록을 했는데 학원에 흔하지 않은 어린 나이의 우리를 보며 신기해하면서도 특히 더 어린 내가 합격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셨다. 학원의 커리큘럼은 3개월 정도로 기억한다.


학원은 여느 고시 강의에 나오는 교실처럼 넓은 공간에 많은 책상이 다다닥 붙어있었다. 안 그래도 낯선 한국인데, 낯선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 강의실의 첫 모습에 나는 많이 긴장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크게 2가지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뒤늦게라도 시험을 통해서 졸업자격을 받고 싶어 공부하시는 어머님들과 우리보다 3-5살 정도 많아 보이는 중퇴를 한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베트남에서 온 우리 남매는 여러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베트남이란 나라는 어떤지, 왜 갔는지, 왜 이리 어린 나이에 검정고시를 보고 있는 건지 질문이 쏟아졌다.


베트남은 어때요..?

정확히 무슨 과목 선생님이셨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젊은 남자선생님으로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가 많은 선생님이 계셨다. 재미있는 분이셨지만, 한 타깃을 정해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스타일의 개그를 치셔서 간혹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우리 남매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만큼 유명해졌을 때, 수업을 하다가 우리에게 질문을 하셨다. 궁금한 듯, 비꼬는 듯 아슬아슬 선을 타는 말투와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아, 베트남... 하아...
그... 베트남은... 어때요?"


그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선생님의 질문과 주변에서 작게 웃는 소리를 들으며 나와 같은 불편함을 느낀 오빠는 논리 정연하게 베트남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에 대해서 반박하려고 입을 떼었다. 그때 소심한 내 입에서 잔뜩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더워요~

그 한마디에 강의실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모두가 웃으니 그 선생님도 재밌다는 듯 받아치며 가볍게 넘어가셨다.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고 오빠는 나에게 성을 냈지만,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만큼 잘 받아칠 수 있는 대답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사건(?) 이후로 간간히 인사만 어색히 주고받던 같은 반 어머님들과 언니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오셨다. 어머님들은 싸 오시는 간식을 나눠주시고 챙겨주셨으며, 무서워 보였던 언니들은 내가 귀엽다며 친구처럼 대해줬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낯선 학원에, 한국에 적응해 나가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이대로 가면 어려워요...

친절하시던 매니저 선생님이 나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전해주며 한 말이다. 대입 검정고시를 보기엔 어렸던 나를 유독 신경 써주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 본 모의고사에서 나는 합격 한참 못 미치는 처참한 점수를 받았다.


선생님의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시는 표정을 보니 정말 큰일이 났다는 생각에 시험을 몇 주 남겨두고 공부에 더 매달렸다. 혼자서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엉엉 울다가도 악으로 깡으로 공부를 했다.


부모님과 오빠는 나에게 한 번에 합격한다는 건 대단한 거라고, 합격하지 못하는 건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고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런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욕심이 났다.


결국 중2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초연함을 느끼며 시험을 치렀고, 남은 기간 한국에서 자유를 누리고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평균점수가 높게 나온 건 아니었지만 합격점은 충분히 넘어선 점수였다. 이전의 고입 검정고시 합격 때보다 부모님은 더 놀란 기색이었고, 기뻐하셨다.


항상 똑똑한 오빠를 보며 스스로가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신감이었고 성취감이었다. 그렇게 나는 15살 중학교 2학년 때 고입, 대입검정고시를 패스했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졸업자격이 생겼다.


오히려 큰 목표를 빠르게 이루고 나니 다소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다음은 어디로 향할까? 오히려 턱 하니 주어진 자유 속에 선택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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