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국에서 내가 외국인처럼 느껴질 때

숫자 7과 파란색 볼펜에 대하여

by 반쯤 사이공니즈

베트남에서의 삶이 한국인에게 잘 맞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크게 이질적인 면이 큰 문화권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 같이 느껴지는 작고 사소한 부분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물론 정체성이나 정서적인 차이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진지한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적어보겠다.


1. 숫자 쓰기

내가 외국에서 왔다는 것이 숫자를 적을 때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에 오랜만에 들어가면 여기저기 전화번호나 생년월일을 적어야 할 일이 많은데, 숫자를 적을 때 특히 나의 이질적인 글씨체가 도드라져 보인다.

베트남에서는 숫자 1과 7을 구분을 확실하게 하는 편인데, 숫자 7에는 중간에는 항상 작대기 한 개가 그어져 있다. 숫자 1도 머리와 꼬리를 붙여주곤 한다, 그러지 않고 담백하게 선을 그으면 불안해져 본능처럼 작대기를 추가하게 된다. 결국엔 종이를 받아 확인하시는 분이 곧이어 그것들이 1과 7이 맞는지 질문을 하신다.



2. 날짜 순서

사실 아직도 헷갈린다. 베트남에서는 한국과는 정반대 순서로 날짜를 적는다. 년도 / 월 / 일 이 아니라 일 / 월 / 년으로 적는다. 한국에 가서도 날짜를 읽을 땐 속으로 소리를 내어서 몇 월 며칠을 되뇐다. 알면서도 한번 더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된다.


가장 헷갈리는 순간은 베트남에서 한국인과 대화에서 날짜를 적을 때인데, 몇 월 며칠이라고 붙여 적는 경우를 제외하면 항상 생각한다. 아, 한국처럼 적어야 할까? 베트남 방식으로 적어야 할까?


한 번은 베트남 친구가 자기네 집 도어록을 나보고 열라면서 비밀번호는 자기 생일이라고 했다. 그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친구는 자기 생일을 기억하는지 확인할 참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일을 기억 못 한 다는 오해를 받을 거다. 친구의 생일은 3월 5일이다. 하지만 과연 비밀번호가 4자리 일 것인지 6자리일 것인지 또 년도를 포함할지 내 머리는 빠르게 굴렀다. 결국 패닉이 와서 0305를 입력했다가 틀렸다는 소리가 울리자, 친구는 냉정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저었다. 불합격을 받은 것 처럼 절망적이었다. 열심히 해명을 했지만 생일을 제대로 기억한다는 걸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3. 파란색 볼펜

베트남에서 파란색 볼펜은 '검은색 볼펜'과 같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파란색 볼펜을 연필이나 샤프처럼 필기용으로 쓴다. 공책 필기도 시험도 모두 파란색 볼펜을 쓴다. 특히 공문서나 중요한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에도 검정볼펜도 아닌 파란색 볼펜을 사용한다.


왜 굳이 파란색인 걸까? 예전 프랑스 식민지 시절 때부터 흑백으로 된 문서의 위조를 예방하기 위해 직접 기입하는 사인은 꼭 파란색 볼펜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범죄도시 2편은 베트남이 배경이었는데, 고증이나 연출이 잘 되어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곧 공안들이 사용하는 '검은색' 볼펜은 옥에 티처럼 내 눈에 띄었다. 그들 손에는 파란색 볼펜이 들려있어야 했다.


베트남에서는 연필이나 검은색 볼펜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어서, 나 또한 한국에서 사인을 하다가 검정 잉크가 나오면 순간 아차 하며 당황하곤 한다.


4. 1층? 2층?


다른 외국의 경우도 그러하 듯 베트남에서는 1층을 바닥층, 지상층 (Tầng trệt - 떵쨋)이라고 부른다. 그러고 2층이 1층이다. 바닥층 (그라운드 플로어)이 있었으면, 그다음은 2층으로 바로 넘어갔으면 차라리 덜 헷갈렸겠다.

한국은 1층을 1층, 2층을 2층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에 오류가 생기던 경우가 곧 잘 있었다. 한국에 갔을 때는 2층으로 올라가라는 말을 듣곤 엘리베이터 안에서 2층과 3층 중 무엇을 눌러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5. 대중교통


당연하게도 가장 다른 건 대중교통과 날씨일 것이다. 베트남은 인도도 잘 안 되어있을 뿐더러, 뜨거운 햇빛 아래 오래 걸을 수도 없다. 버스나 이제 막 1호선을 개통한 메트로 또한 오토바이택시(그랩)에 비하면 제한이 크다. 그래서 베트남은 생각보다 걸을 일이 없다.


한국에 가면 바쁘게 서울의 끝과 끝을 오가며 지인들과 가족들을 만나야 하는데, 정말 하루에 기본 만 보 이상을 걷게 된다. 지하철의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서 있고를 반복하며 걸어 다닌다. 베트남에서는 쪼리나 찍찍 끌고 다니거나, 컨버스 운동화를 즐겨 신던 나는 새삼스럽게 좋은 신발의 존재이유를 실감하곤 한다. 한국사람들은 어찌 그리 빠르게 잘 걸어 다니는지 바쁘게 쫓아가다 보면 발에 불이 날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