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주 간단한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HSP라는 낯선 단어를 처음 접한 건 '하말넘많'의 유튜브 채널에서였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최재훈)"라는 책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는데, '초민감자 (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개념은 단순 예민함을 넘어선 '매우, 많이' 예민한 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또 나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라는 사실은 묘한 위안이 되었다.
베트남도 지역마다 분위기 차이가 분명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낙관적이고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공공질서, 타인이 불편한 행동은 하지 않으려는 사회적인 의식이 엄격하지 않다.
베트남에선 좋은 날엔 잔치를 열듯 일반 주택집에서 스피커를 빵빵하게 틀고 노래를 부른다. 그 소리는 무료 라이브 공연 같을 정도로 온 동네에 크게 울려 퍼진다. 주로 저녁시간에 시작되어 늦으면 11시까지도 지속된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거나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베트남에선 엘리베이터의 '닫힘'버튼이 거의 눌리지 않는다. 호치민의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들은 쉴 틈 없이 붐비는 주민들을 실어 날러준다. 엘리베이터가 4-6개나 있어도 사람이 많아 5분 이상 기다릴 때도 많은데, 그럼에도 엘리베이터의 문을 빨리 닫으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닫힘 버튼이 가장 먼저 닳아버리는 민족, 한국인으로서 이것은 너무 큰 불편으로 다가온다.
베트남 일반 가정집에서는 에어컨을 잘 안트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일까 아파트에서도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곤, 생활소음이나 음식냄새를 같은 층 주민들이 모두 공유해야 함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요즘 들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활짝 열린 남의 집 앞을 지나칠 땐 여전히 불편하다.
베트남에선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게 그다지 존중되지 못한다. 줄을 설 때,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쑥쑥 거침없이 가까이 다가오곤 한다. 대화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선을 넘나드는 친근함이 남다르다.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은 장소를 힘들어하는 나는 공항이나 피크시간대의 쇼핑몰에선 사람들을 피해서 걷는 것만으로도 기가 쏙 빨린다.
이런 것들에 대해 나는 주로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는 나의 생각은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다'라는 수동적인 자세였을 수도 있다. 갈수록 뾰족한 경계심이 높아져가는 나를 베트남사람들은 순수한 호의와 배려로 민망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가득 차서 내려온 출근시간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자, 사람들은 마치 어제 본 사람을 대하듯 모두가 한 발씩 옮겨 자리를 만들어주곤 어서 타라고 손짓을 한다.
길 위에서 오토바이가 고장 나거나 넘어진 난감한 상황에서는 지나가던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멈춰 서서 도와줬다. 선을 지키지 않는다고 느끼던 나의 오만한 편견은 그저 그들이 타인을 혐오하지 않고, 가깝게 여긴다는 걸 보여주는 조건 없는 정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뗏 (설)'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와 무분별하게 터트리는 작은 폭죽들은 나에겐 그저 버거운 소음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새해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고, 열린 이웃집에서 나는 생활소음과 냄새는 혼자 살던 시절 나의 외로움을 위로해 주는 의외의 역할을 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면서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큰 소리로 숏폼영상을 보는 사람들부터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까지, 늘어가는 이기적인 행동들에 '민폐'의 정의는 점점 더 촘촘하고 엄격해져 간다. 축적되는 피로감에 타인은 사랑스럽지 못한 대상이 되어감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콤사우 (괜찮아)"를 외치며 웃는 베트남사람들과 살아가다 문득 나 혼자만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의 예민함이 더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진 이유는 외부적인 변화보단 내부적인 문제가 더 컸다는 것을, 뻔한 말이지만,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몸소 경험하고 나서야 잔뜩 경계하고 긴장하고 있던 몸에서 힘을 좀 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누군가는 편견으로 간편하게 정의하거나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뭐든 배울 게 있다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좋거나 나쁘기만 할 수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사랑스러운 부분에 더 집중하는 게 내게도 타인에게도 좋다는 생각을 하며 '매우 많이 예민한' 나는 베트남을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