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에도 지속가능성이 필요해

오래오래 일을 좋아하면서 나를 키우는 법

이 책을 받아 든 건 내 일생일대의 가장 크고 중요하고 바쁜 일이 막 시작될 때였다. 책을 받지 않았어도 되는데, 난 왜 이 책을 읽겠다고 했을까. 아마도 제목, 아니 부제목 때문이었을 거다.


[컨티뉴어스 : 오래오래 일을 좋아하면서 나를 키우는 법]


이런 제목을 달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책 표지의 자태란.. 도저히 집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당시(지난 5월 즈음)의 나는 너무나도 여유가 없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마음은 매일 쫓기는 아주 불쌍한 상태였다. 일을 좋아하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는 초짜 강사! 그래도 난 이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나면 이걸 꼭 봐야지, 결심했고 결국 해냈다. 좀 늦긴 했지만, 5월부터 이런저런 크고 작은 안팎의 일을 수습하고 나니 다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출처. 예스24



책 초반에는 좀 집중이 안 됐다. 일단 이 작가가 누군지 몰랐기에. 하지만 13년간 2만 장의 글을 써 내려간 사람이라니, 난 브런치도 꾸준히 쓰기 힘든 판에 이 사람은 뭐지 싶었다. 처음부터 직업이 작가인 사람은 아닌 듯 보였다. 나보다 나이는 서너 살 적어 보이지만 사회 경험은 배로 많아 보이는 사람. 우선 여자라는 점에, 그리고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일하는 여성이라는 점에 작은 동질감을 느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작가는 20대부터 일찌감치 사업을 시작했다. 목표의식도 강했고 잘 되려는 의지가 커서 젊음과 패기로 불도저같이 일을 키우며 밀어붙였다. 자신이 다치는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아니 죽을 만큼 힘들어도 마냥 일만 붙잡고 남편과의 관계마저 망가뜨려가며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건강도 삶도 관계도 모두 무너져 내려갈 때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전 국민이 알 만큼 엄청 대단한 업적을 세우고, 초 대박이 난 건 아니지만 그녀는 분명 단단하게 오래도록 버티고 있는 걸로 보인다. 처음엔 그녀 자신도 그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주변에 점점 잘되는 사람이 늘어갔고, 대박을 친 사람,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 재산이 몇 배로 불어난 사람 등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신은 뭘 한 걸까, 나약한 본인의 모습이 싫어졌고 어찌할 바 몰라 엉엉 울기도 했던 그녀. 하지만 인생의 멘토들을 통해, 그리고 그녀 스스로를 통해 올바른 방향과 방법을 알아가게 됐고, 그 깨달음의 과정을 나누기 위해 쓴 글들이 모여 이 책이 된 것이었다.


나도 사업을 하는 남편이 있기에, 윤소정 작가의 마음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짚어볼 수 있었다. 오랜 기간 게임 업계에서 일한 나의 남편 역시 주변에 정말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많이도 스쳐갔다. 한 끗 차이로, 아주 작고 사소한 선택 하나로 몇십억 몇백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크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비교에서 오는 상실감에 많이도 허탈했을 것이다. 그만큼 노력도 했기에.


출처. 예스24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최근 출간한 에세이 [파리의 하늘 아래, 아들과 함께 3000일]의 내용 중 이런 말이 나온다.

하루하루는 나름대로 힘든 삶의 연속이지만 때로 하느님은 이렇게 깜짝 선물을 주시기도 한다. 인생의 80퍼센트는 힘들고 18퍼센트는 그저 그런 것 같다. 나머지 2퍼센트를 나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깜짝 놀라게 행복한 것보다 그 정도가 좋다.


남들 눈에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로, 뮤지션으로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이에게도 고충은 많다. 찰나의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아무리 잘나 보이는 사람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구질한 구석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주부이자 프리랜서 방송인, 스피치 강사, 교육콘텐츠 그룹의 팀장이다. 동시에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커가고 살다 보니 돈이 이렇게 필요했었나 싶은 지경에 다달았지만 사실 결혼 초반 나는 일을 다 그만둔 '전업 주부'였다. 결혼과 동시에 일을 모두 정리했었고, 그때 마음으로는 이젠 다시는 바깥일은 하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있다 보니 집안일만 오롯이 하는 건 내 취향에 도무지 맞지 않았고, 그런 내 마음을 또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아이가 생기고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다. '육아에 전념하다'라는 표현도 사실 참 식상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육아에 전념하는 걸까? 전업주부로 있다 보면 집안일, 요리, 남편케어 등 할 일이 정말 많다. 이 모든 걸 육아에 그냥 날로 포함시키는 걸까? 요즘 개념으로 본다면 '육아에 전념'하는 건 상주 관리사님을 두고 엄마는 정말 오로지 아이에 관한 일만 하는 걸 뜻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출산 후 조리원을 가지 않아 전문 관리사님이 3주는 입주 모드 + 1주는 출퇴근 모드로 와주셨고, 그때가 정말 육아에 전념하는 시기였다.)


아이들이 자라고 어린이집을 가고 유치원을 가면서 시간이 좀 확보되기 시작했다. 요즘엔 초등학생보다 더 오래 나가있는 아이들이 바로 유치원생들이다. 유치원보다 어린이집 보육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뭐 방과 후 수업을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다르다. (유치원도 병설이라면 칼같이 일찍 마친다.) 어쨌든 나는 적당히 오후 3시쯤 데려올 수 있는 구조로 세팅을 했던 것 같고, 동네 체육문화센터에서 운동과 캘리그래피를 등록하며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나갈 시동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일을 넓혀갔고, 결국 난 뭐라도 해야 하는 성향인 걸로 결론이 났다. 예전 부모님 세대라면 여자가 그렇게 바깥으로 나가 할 만한 일이 많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조금만 눈을 들어 보면 최소한의 돈으로도 할 수 있는 취미와 용돈벌이가 널려있다. 집에서 여유 있게 꽃꽂이를 하고(가끔은 좋다), 하루 종일 가족들을 생각하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침대 시트를 갈고, 앞치마를 벗을 틈이 없는 주부란 직업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물론 적당히 필요한 만큼은 그렇게 지낸다. 하지만 매일, 종일은 아니란 거다. 주부는..쉬워 보일 수 있지만 정말 어려운 전문직이다. 여하튼 난 그렇게 이것저것 하며 지내다가 결국 다시 결혼 전 하던 일을 하게 되었고, 역시 이 일은 나에게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름의 정착을 하게 되었다.


다만 방송 일만 하기엔 일의 양이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가 중심인 내 인생에서 일을 더 크게 벌리긴 어려웠고,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일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아나운싱 말고도 늘 책과 책육아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방송으로 이어진 인연이 지금 나를 교육콘텐츠그룹 팀장으로 있게 했다. 너무도 감사한 인연을 만났기에.


그렇게 일은 확장되어 간다. 매일같이 재택근무 출퇴근을 하며 아침부터 바쁘게 지내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인연을 또 맺어가고, 거기서 받는 에너지와 원동력으로 또 다른 일을 꾸민다. 오래도록 잘 지내온 지인이 어느 날 귀한 일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거기서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생긴다. 그걸 마다하면 안 된다.



출처. 픽사베이



내 삶을 삼각형 피라미드 같은 모형으로 생각해 본다. 29살, 결혼과 함께 다 비웠던 내 삶이 아래부터 하나씩 채워졌고, 40살이 된 지금(그냥 만으로 할까? 39살이다.)은 중간층들이 깔끔하지 못하게 마구 뒤섞여 채워져 가고 있다. 내 인생 피라미드를 끝까지 깔끔하게 다 채우고 싶은데, 계속 이렇게 아무렇게나 쌓아가도 괜찮을까. 아직은 서로 섞이고 물들며 새로운 색을 내고 있지만 버거운 순간들이 다가올 때마다 정돈이 안 된 채 또 한 층이 쌓여도 괜찮은 걸까.


지속 가능함. 일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말이다. 여러 사업으로 몸이 한 개로는 부족할 듯한 이 책의 저자는 물론, 나 같은 프리랜서 주부도. (나는 일은 하고 있지만 프리랜서+반일 계약직이라 아이들 하교 후부턴 육아도 함께한다.) 어딘가 한 회사에 다니며 1년 내내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풀타임으로 일하는 워킹맘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실 나에겐 치트키가 있다. 오후 2시 이후로는 늘 불규칙한 내 일의 지속 가능함을 도와주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냐고? 바로 남편. 요즘 흔히 '남의 편'이라고도 불리는 현시대의 남편이지만 육아와 가정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끈끈한 동지이다. 진짜 가족.


늘 생각하고, 감사하고, 내 삶과 일의 목적과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하며 지속할 수 있도록 애를 써 볼 때 내 일도 그 가치가 올라간다. 처음의 동기를 잊지 말자. 내가 왜 일을 하려고 했는지, 내가 지금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내가 벌린 판에 내가 치여 어쩔 줄 모르는 순간마다 이 생각을 하며 천천히 나가봐야겠다.

내 일과 내 가족, 내 삶의 지속 가능성을 위하여.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밤 매미의 탈피, 촉촉한 민트색 날개에 반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