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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 매미의 탈피, 촉촉한 민트색 날개에 반하다.

허물 벗는 매미를 처음 관찰한 어떤 어른이의 일기

"엄마, 오늘은 수영 끝나고 차 내릴 때 꼭 데리러 나와!"


9살(아, 이제 만으로 해야 하니 아직 7살) 아이의 말에 하앗, 좀 귀찮긴 하지만 "그래"라고 대답해 버렸다. 아이들 수영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밤 9시. 아들만 키우다 보니 아파트 입구에서 하차하고 둘이서 집으로 올라오는 건 크게 걱정을 안 하는 터라 잘 데리러 가지 않고 있는 터. 하지만 엊그제 이미 한번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막 나가려 했는데 애들이 좀 일찍 끝났는지 먼저 집에 들어와 버렸다_변명인가) 알겠다고 손가락을 걸고 말았다.


수영을 간 1시간 30분. 저녁 시간이라 나름 꿀 같은 시간인데, 보통은 집안일을 하다가 끝나 버린다. 그런데 이날은 유독 피곤했다. 애들 배웅도 겨우 하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잠깐 쉴까.. 하다가 스르륵 잠에 빠져버렸다. 마치 기절하듯이. 조금 잔 것 같았는데 화들짝 놀라 시계를 보니 8시 50분. 곧 있으면 아이들이 오는 시간이다. 서둘러 눈곱을 떼고 물을 한잔 마시며 거실서 뉴스를 보고 있는 신랑에게 물었다.


"애들 데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뭐 나까지, 다녀와!"


쿨하다. 뭐 나도 형식적으로 물어봤지만, 나보다 늘 더 쿨한 우리 신랑. 나도 편한 마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너무 빨리 나갔나 보다. 엊그제 일찍 온 아이들을 생각해 미리 나갔더니, 가만히 서서 목 빼고 차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는 건 생각보다 지루했다. 에어컨을 틀고 시원하게 있다가 나오니 잠시 '어라, 나와보니 바깥도 생각보다 시원한데? 집에 가면 에어컨 꺼야겠다'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 생각을 후회했다. 역시 습도는 어쩔 수 없다.

슬슬 목덜미가 끈끈해질 즈음, 아이들이 왔다.


"엄마~~!!!"


너무 귀엽다. 수영 실장님과 겨우 인사를 나누고, 동시에 매달리는 두 아이를 양쪽에 끼고 아파트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 녀석은 매미처럼 뛰어올라 덥석 매달려 안기고(가벼운 둘째), 또 한 녀석은 제 수영 가방을 휙 하고 내 목에 걸어 버린다. 그래, 그럴 때지. 나도 어릴 때 엄마가 마중 나오면 그렇게 좋았고,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실 때 갑자기 무게가 덜어져 하늘을 날 것 같았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하니까. 그런데 수영가방은 가벼운데... 쩝.어쨌든 그렇게 우리 동을 향하다가, 돌연 둘째가 옆길로 새며 말한다.


"엄마, 따라와!"


"왜, 데리러 나왔잖아. 집으로 바로 가자. 엄마 더워."


"아니야 지금 꼭 봐야 돼. 매미 유충 지금 아니면 못 봐!"


"어? 아.. 귀찮은데. 알았어 잠깐만 보자아-."


관심 없는 큰 아이는 벌써 1층으로 뛰어 들어갔고, 우리 둘만 동 옆의 나무가 빼곡한 곳으로 들어갔다. 아파트가 지어진 지 30년쯤 되어서 그런가, 오래된 큰 나무도 많고 녹지가 상대적으로 많아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걸었을까.


"엄마! 대박 대박. 여기 좀 봐!"


호들갑인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세상에, 진짜 매미 유충이 탈피를 하고 있었다.


"어머 어머, 웬일이야. 진짜 신기하다 우와!"


너무 신기했다. 사실 난 어릴 때 벌레도 무서워하고, 밤에 많이 나다니지도 않아서 그런가. 이런 걸 제대로 관찰한 적이 별로 없다. 집에서 과학실험 키트로 누에 키우기는 해 봤지만. 이렇게 자연 탐험과는 친하지 않았다. 결국 잠시 후, 내가 더 난리를 치며 카메라를 들고 신나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본 첫 자연 관찰의 현장은 이러했다.


끙끙, 열심히 세상으로 나오는 매미. 밤이지만 가로등이 밝아 너무 잘 보였다.



사실 여름이 되면 동네 나무마다 매미 껍질이 이렇게 그득그득 붙어 있는 것도, 불과 몇 년 전 처음으로 알았다. 살면서 내가 아무리 도시에서 자랐다고 하더라도 내 주변에 늘 있었을 텐데 보이지 않았다니.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매미로부터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즘엔 매미들이 한밤 중에도 하도 시끄럽게 울어대서, 가로등과 간판 불빛 때문에 낮밤을 구분 못하는 거라는 말은 들었었는데. 유충에서 탈피하는 모습은 대부분 밤이 되어야 관찰이 쉬운 걸 보면 그래도 매미들이 낮밤 구분을 영 못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밤에 나와야 연약한 몸을 새들이나 천적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겠지.


매미가 탈피를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관찰하는 동안 빠르게 변화해 갔다. 이 날 자세히 관찰한 아이들이 총 4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아직 유충 상태로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는 아이였고 이미 탈피를 시작한 지 조금 된 아이, 한 마리는 방금 막 시작한 아이(위 사진), 또 한 마리는 탈피를 끝내고 껍질에 매달려 날개를 말리고 있는 아이였다.(관찰을 하고 보니 이제 내 눈엔 모두 다 귀여운 아이들이다. 작고 소중한 존재들!) 그 아이들을 순서대로 돌아보고 다시 처음 아이로 돌아오면 그새 또 이만큼 나와있고, 하는 식이었다. 놀라웠다. 끙끙대며 나오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도와주고 싶었으나 함부로 벗기면 큰일 나는 걸 알기에 참고 바라봐주었다. 아이와 함께 응원하면서.




세상에. 우리가 잠든 시간, 또는 바쁘게 보내는 그 긴긴 저녁 시간 동안 자연 역시 이렇게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구나. 세상에 귀하지 않은 존재는 없었다.


물론 난 아직도 곤충은 눈으로 보는 건 좋지만 손으로 만지는 건 좀 무서워하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 정도도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지! 예전엔 매미를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징그럽다고 생각하기만 했었는데, 이젠 귀엽기까지 하다니 말이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사슴벌레들도 마찬가지다. 이전 같으면 바퀴벌레든 사슴벌레든 벌레는 벌레라며, 소스라치게 놀라고 싫어했지만, 이젠 아이가 내 손에 올려두면 그 간질간질한 촉감이  썩 나쁘지 않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이렇게 관찰하며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하는 동안(물론 플래시는 켜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우리를 쳐다봤다. 강아지와 산책하며 무심히 스쳐가는 사람들도 있고, 우연히 아이 학원 선생님도 만났으며, 퇴근길 어떤 아저씨는 어두운 자리에 있는 매미를 찍으려 노력하는 우리에게 "플래시 좀 비춰드릴까요?" 라며 친절히 웃어주기도 하셨다. 아이는 그런 시선을 나름 즐기는 것 같았다. 마치 유명 유튜버인 에그박사나 정브르 님이 된 것처럼 중계도 하면서!


아이 덕분에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갔다. 더운데 모기의 공격까지 받으며 좀 힘들긴 했지만, 이럴 땐 아이 덕분에 내가 더 배운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건, 아이들은 타고난 관심 분야가 있어서(후천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일부러 그쪽으로 인도하지 않아도 이렇게 부모를 끌고라도 나와서 그 호기심을 충족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놀이터에서도 이미 곤충대장으로 불리고 있으니 자연에서,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다 배운 거겠지.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마지막으로 며칠 전 낮에 아이가 데려와 보여준 민트색의 예쁜 매미 사진을 보여주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낮에 보면 더 아름답다. '날개가 마르기 전 매미는 이런 색입니다 여러분. 책에서 본 것과 사뭇 달라요.' 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고 싶다.


"매미들이 시끄럽다고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아주 짧은 삶을 위해, 이렇게 애쓰면서 세상 밖으로 나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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