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오랜만에, 가위에 눌렸다

섬뜩하다. 하얀 화면에 제목을 쓰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닭살이 돋는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은 먼저 잠들고,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남편은 오랜만에 낚시를 가서 집엔 우리 셋 뿐이었다. 자정이 넘어가고, 고단한 하루를 보낸 터라 꼿꼿하던 머리는 서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의지와는 관계없는 춤사위.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꺼풀은 하염없이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졸려도 해야 한다, 해야 한다. 중얼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정해둔 목표량이 있었다. 그걸 다 마치지 않으면 절대 자지 않을 요량이었다. 고개를 흔들며 겨우 잠을 쫓아내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됐다! 드디어 목표치를 채우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은 부부침대를 독차지하고 대자로 자고 있었다. 처음부터 같이 잤으면 모를까, 중간에 침투하긴 쉽지 않다. 비집고 들어가 불편하게 자느니 애들 방 이층 침대 1층에서 편히 자야겠다 생각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지들 방 놔두고 내 곁으로 와서 자는 걸 좋아한다. 특히 둘째. 첫째와 달리 다방면으로 겁이 많다. 첫째는 은근히 독립적이라 물리적 겁은 많지만(놀이기구는 잘 못 탄다) 혼자 있는 것 등에선 무서움을 타지 않는다. 이사 오고 나서 이제 너희들끼리 자봐라, 큰맘 먹고 탄탄한 원목 이층 침대를 들여 줬건만. 한 방이어도 위아래 따로 자야 하니 무서운가 보다. 호기롭게 2층을 픽했던 둘째는 초반 며칠을 제외하곤 내내 나에게 같이 자자, 엄마가 와라 내가 간다 실랑이를 하더니 결국 안방에서 나와 단 둘이 자는 신세가 됐다. 그럼 신랑은? 신랑이 이층 침대 1층으로, 큰아이는 거실이 좋다고 또 거실에 매트 깔고 누워버린다. 이게 무슨 모양새인가. 한 지붕 아래 뿔뿔이 세 팀으로 나뉘었다.


출처. 언스플래시



안방 불을 끄고 깜깜한 거실을 가로질러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밝은 곳에 있던 눈은 쉽게 어둠에 적응하지 못했다. 휴대폰 화면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무사히 침대에 누웠다. 창가에 붙어있는 침대라 달빛과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피로가 몰려왔다. 알람 맞춰둔 휴대폰과 안경을 바닥에 내려놓고 편안히 자세를 잡았다. 마침 낮에 이불과 패드, 배게커버까지 싹 빨아 햇볕에 말려 다시 세팅해 두었던 터다. 섬유유연제 냄새와 햇살 향기가 좋다.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며 잠에 빠져들었다. 12시 55분.


너무도 편안해서인지 바로 깊이 잠이 들었고, 꿈속을 헤맸다. 분명 선명한 꿈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깨고 나서 현실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꿈. 불편한 꿈속을 헤매다 잠이 반쯤 깼다. 깨긴 깼는데 이런.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가위에 눌렸구나. 내가 너무 똑바른 자세로 자고 있었다.


예로부터 가위눌림에 대한 이야기 중 그런 말이 있다. 똑-바로 천장을 본 상태로 차렷하고 자는 게 가위눌리기 가장 쉬운 자세라고.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그냥 이해가 된다. 그 자세는 무언가로부터 내 몸을 방어하기 가장 어려운,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자세 아닌가. 동물들도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배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물론 우리 동네 손 많이 탄 귀염둥이 길냥이는 아무에게나 배를 보인다) 그 무서운 팁 아닌 팁을 듣고 난 후, 뭔가를 끌어안고(베개나 인형) 자거나 옆으로 누워서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런데 그걸 까먹다니. 평소 자지 않던 이 낯선 방에서 말이야. 그 와중에 아차 싶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날 누르는 걸까. 그냥 계속 안 보이면 좋겠다. 평생 들어온 온갖 괴담들이 떠올랐다.


온 힘을 다해서 깨어나려고 애썼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도 보고(실제로 돌아갔는지는 모르겠다), 팔다리를 움직여보려고 했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몸은 그저 버둥버둥. 마치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실험처럼, 누군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꾹 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불쾌하고 소름이 끼쳤다.


어둠 속에서도 주변이 또렷이 보였다. 내가 고개를 돌리긴 돌린 걸까. 방 안을, 내 주변을 휘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너무 힘이 들었다. 아까 야근을 하며 억지로 잠을 참았을 때처럼, 빨리 좀 자고 싶은데 가위가 눌리니 짜증이 났다. 눌리든 말든 그냥 잘까 두 번 정도 고민했다. 그런데 이대로 잠들면 안 될 것 같았다. 안 될 이유는? 모른다. 그냥 촉이었다. (그럴 때 잠들면 깨어나지 못한다는 괴담이 또 떠올랐다. ) 누군가 꽉 누르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으며 그 와중에 또 두어 번 깜빡 졸다가, 결국 더 힘을 썼다. 으쌰. 옆으로 틀면서 일어났다. 성공.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경과 휴대폰을 주워 들고 안방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자고 있다. 어둠을 가로질러 방 안까지 들어왔는데도 뒤가 자꾸 찝찝했다. 쫓기듯 아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휴, 그제야 안심이 됐다.


시계를 보니 1시 16분.


겨우 20여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전 저쪽 방에서 자려고 누운 시간으로부터. 깊은 꿈에 이어 가위 탈출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았는데.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민하기 싫었다. 든든한 큰 아이를 뒤에 두고,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아이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너무나도 편안했다. 내가 낳은 아이들로부터 내가 보호받고,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이 밤에 집에 없다는 건 이렇게도 차이가 있었다. 남편의 출장이나 낚시는 잦은 일이 아니었기에 하루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가위에 눌리고 나니 새삼 생각하게 됐다. 평소 애들한테 방에 혼자 있는 게 뭐가 무섭냐고, 깜깜한 게 뭐가 무섭냐고 반문하던 나였는데. 그날의 밤은 나 역시, 무서움 타는 아이와 다름없었다. 나도 아이였던 시절이 분명 있었는데, 그걸 다 잊고 세상에 무서울 게 뭐 있냐고 귀신은 없다고,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라고 어느새 큰소리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번 일은 아이들의 무서움 체험을 오랜만에 해본 느낌, 정도로 기억해두려 한다. 조금 미안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가위에 눌려 몸이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 분명히 아직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눈을 뜨고 있었나. 주변이 너무 훤히 보였던 기억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귀찮아서 그냥 그 상태로 잤어도 괜찮았을까. 괜찮았겠지, 설마.(아직도 유치한 편이다)


애들 어릴 때 신비아파트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어른 별 거 없다. 자제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에도 지속가능성이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