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여자를 아시나요

어릴 적 꿈은 라디오 DJ

어릴 적 꿈은 '라디오 DJ'였다. 그렇게 많이 어릴 때는 아니었고, 초등학교 4학년쯤부터였던 것 같다. 내 방 책상에 앉아 EBS 라디오를 종종 들었는데, 초등학생 대상 음악방송을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다. 목소리 예쁜 DJ언니가 읽어주는 사연들, 그리고 동요들. 지금도 그런 방송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접했던 것들 중 가장 건전하지만 자극적인(나에겐) 오락거리였다.


그때는(벌써 라떼라니!) 카세트테이프와 라디오가 함께 되는 기기가 책상마다 보통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CD플레이어 기능도 탑재된 것으로 바뀌었던 기억. 우리 집에도 언니 방에 먼저 생기고 그 후 내 것도 생겼었다. 그렇게 낮에는 EBS 라디오를 듣고, 고학년이 되면서는 저녁시간 <볼륨을 높여요> 같은 가요 프로그램도 청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공테이프에 가요 녹음하고... 라떼와 비슷한 시기를 보냈다면 다들 한 번쯤은 해봤으리라 믿는다.



dave-weatherall-51H2LuKFHsI-unsplash.jpg 라떼껀 이렇게 오래된 라디오는 아니었지만. (출처. 언스플래쉬)



어쨌든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의 꿈은 라디오 DJ였다. 중학교 1학년 입학 후 장래희망을 써서 내는 시간이 있었고, 담임 선생님 면담 때 그 얘기가 나왔던 기억이다. 당시 나의 담임 선생님은 스물일곱 살 긴 생머리의 예쁜 음악 선생님이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라디오 DJ가 되는 길은 잘 모르고 계셨다. 만약 지금 내가 선생님이라면, 라디오 DJ가 되려면 우선 아나운서가 되라고 비록 먼 길이지만 친절하게 안내해 줄 텐데... 하지만 그땐 정보도 부족했던 시기라, 이해는 한다. 선생님도 사회 초년생이셨고, 잘 몰랐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냥, 아 그런 꿈이 있구나 특이하네, 정도로 넘어갔고 나 역시 그렇구나 내 꿈이 특별하구나 생각하고 스르르 넘겨 버렸다.


역시, 아이들의 꿈은 자주 바뀌는 것. 난 사실 바뀌었다기 보단 그 이후로는 특별한 장래희망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진학을 할 때도 그냥 점수 맞추어 갔으니.. 난 완전히 문과 체질이니 문과인 법대로 진학한 것일 뿐, 법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자랐다. 그러니 당연히 대학교에서의 공부는 재미가 없었고, 겨우 겨우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


어찌저찌해서 지금의 나. 결국 DJ의 꿈이 이어진 것인가. 아나운서와 방송 언저리를 맴돌고 비슷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마흔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내 꿈은 이어지고 있고, 돈을 벌든 벌지 않든 말하는 일을 놓지 않고 있다.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가만히 쉬는 대신 오랜만에 낭독을 했다. 몇 년 전 만들어둔 내 유튜브 채널은 초반 브이로그를 시작으로 지금은 책 읽어주는 채널이 되었다. 그냥 낭독 유튜버들처럼 책을 읽기만 하진 않는다.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는 게 시작이었다. 아이들 책, 어른 책, 가리지 않고 읽고 소개했다. 내 생각을 말했고, 일부 내레이션으로 낭독을 했다. 출판사에 허락을 먼저 구한 것도 있었고, 소개해달라고 책을 먼저 보내주는 출판사도 있었다. 한 때 조금 욕심내서 올려보던 때도 있었지만, 역시 좋아서 하는 일도 부담을 갖고 하기 시작하면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유튜브는 그렇다. 당장 무슨 결과가 오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연연하기 시작하면 힘들어서 못 한다. 구독자 수, 조회수, 좋아요 수에 신경을 꺼야 한다. 실천하기 어렵지만 꾸준히 다짐해 보는 부분이다.




오늘은 참 우울감이 뻗치는 날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힘들었다. 마음이 어렵고, 가라앉고, 무기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일을 해야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며, 남편을 대해야 한다. 혼자 있지 못하는 게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한없이 가라앉는 와중 갑자기 오랜만에 녹음이 하고 싶어 졌다. 낭독. 책 읽기 말이다. 바쁜 일을 마무리하자마자 축 쳐진 몸을 침대로 가져가는 대신, 마이크를 켜고 이어폰을 꽂았다. 올해 초 구입해서 읽으며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 김혜남 작가님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책이었다. 역시 내가 힘들 때 우연히 알게 되어 읽게 된 책이다. 정말 힘들고 마음이 어려울 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열심히 일하고, 가정을 돌보며 살다가 막 개인병원을 열고 진짜 자기 삶을 살아보려던 차,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을 앓게 된 작가님. 가장 찬란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 작가님이 오랜 기간 투병하며, 어떻게 어둠에서 벗어났는지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져준다. 나에겐 오늘의 이 경험도 오래 남을 것 같다. 내가 진짜 힘들 때 낭독이 힐링이 되었다. 그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https://youtu.be/29jT5GqxuqY?si=rdlrlEhURlUyIGv3

어려웠던 오늘, 나를 힐링시켜 준 낭독. 나의 유튜브 채널 <소소한 책이야기>


그저 좋아서 읽고, 녹음하고, 유튜브를 하고, 방송 진행을 하고, 쇼호스트를 하고, 스피치 강의를 해왔다. 그러다 일이 되니 이걸 진짜 좋아하는 건지 모르고 꽤 오래 지내온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알게 됐으니, 참 길고 고단한 하루였지만 너무 큰 수확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술담배를 하지 않아서 스트레스 풀 곳이 없다고 하던 나인데, 새삼 가까운 곳에서 힐링처를 다시 찾았다.


내 글을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 같다. 이런 계획을 하며 미소 짓는 내가 스스로 기특하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인생이란 말인가.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의 글도 읽어주는 영광이 내게 오길. 오래전 그런 이야기를 잠시 나눴는데, 기억해 주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기억나는 분은 언제든 연락 주시길. 여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책 읽어주는 여자, 아니 '글 읽어주는 여자'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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