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가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결과를 공유해 줬다. 예전의 혈액형으로 성격 가늠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MBTI는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이니 당연한 결과일까 싶기도 하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고 들을 때마다 놀랍다. 어쩜 저렇게 저 사람에 대해 딱 맞는 결과가 나오지. 가끔은 어떤 사람의 성격이 이런가 저런가 뭐라 단정 짓기 어려울 때에도 MBTI를 알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 이게 애매한 것 같았는데 이렇다는 거구나' 하는 식이다. 언니의 결과도 역시나 딱 언니처럼 나왔고, 함께 톡방에서 이야기 나누던 친구 역시 너무나 딱 그 친구였다. 역시, MBTI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귀찮은 마음이 사라지고 어서 내 것도 빨리 다시 해보고픈 마음이다. 서둘러 응답하고 드디어 결과. 역시, 두어 달 전과 다르지 않다. 그대로다. 뭐 그사이에 변할 리가 없지, 싶으면서도 아직 내가 E구나,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약간의 차이로 I가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곧 퍼센티지가 E 쪽으로 넘어왔고, 줄곧 지금까지 외향인(E)의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MBTI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사실, E다 I다 하나로 확실히 말해야 하는 상황이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구구절절 말이 길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때가 많았으니, 난 그냥 대외적으로는 E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밖에서 날 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외향인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해줄 것이다. 그래 보이고, 그렇기도 하니까.
나의 MBTI 결과 中
그렇지만.
아닐 때도 있다. 난 가끔은 내향인이다. 오늘은 기분이 좋았고, 55%로 외향인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내일은 또 내향인이 될 수도 있다. 해보진 않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질문사항들이 그랬다. 너무나 나의 행동들에 대해 나 스스로 하나의 답을 써야만 했다. 긍정부터 부정까지 여러 개의 단계가 있었지만, 애매한 답들이 너무 많았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난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냥 중간에 클릭했다. 이런 답이 많아지면 좋지 않다고 들은 게 기억났다. 그래서 또 완전 중간보다는 살짝 소신 있게 한쪽으로 틀었다. 그래도 칸이 완전히 올라가진 않는다.
글에서도 티를 내고 말았지만 얼마 전엔 많이 힘들었다. 이유는 딱히 몰랐지만 우울했고, 무기력했고, 쳐졌다. 다음 날은 또 좀 좋아졌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이유를 발견했다. 그게 진짜 이유인지 사실은 모른다. 다만 해결이 조금 되었기에, 원인 중에 하나를 찾았나 싶기도 한 것이다. 재택근무를 자주 하는 남편이 출장을 가니 갑자기 내 세상이 펼쳐졌다. 나만 있는 집에서 혼자 일을 하는 게 편안했다. 그가 있는 것도 좋은데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꽤 괜찮았다. 나간 그도 좋다고 하고 나도 좋으니 너무 행복했다.
나는 남편과 사이가 좋은 편이다. 평소 궁시렁 대고 불만이 있기도 하지만(없는 부부가 더 이상한 거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사이가 좋다.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엄마 아빠를 둘 다 모두 따르고 좋아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부부 모두의 오랜 재택근무는 옳지 않다. 아직 남편 앞에서 방귀도 트지 않았다. 앞으로도 안 트고 싶다. 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도 트고 싶다, 방귀커밍아웃'을 외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런 나에게 남편이 24시간 붙어있는다는 건, 뭔가 자유가 억압되는.. 학교에 등교해서 하루종일 하교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조금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남편이 그렇게 불편해서 어떡해요. 그건 좀 아닌 건데 등등의 참견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그건 아니다. 사이가 분명히 좋고, 우린 분명히 편하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들도 남편이 종일 집에 있으면 언제 나가나 하듯, 나 역시도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출처. 언스플래쉬
일단 생리현상이 그렇다. 아직도 수줍은 것인가, 나는 대놓고 생리현상을 노출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정도는 괜찮지만, 조금은 신경 쓴다. 아직 그를 많이 좋아해서라고 해두겠다. 그런 신경 쓰는 시간이 하루 종일이어서는 안 된다. 내가 재택을 하니 그 시간엔 그는 나가는 게 좋겠다. 아니면 집이 60평 정도 되어서 끝과 끝방을 쓰던가. (일할 때만.) 30평대 평범한 우리 집에서는 화장실 가는 소리도, 전화하는 소리도 잘 들린다. 거침없는 그와 달리 나는 타고난 성향이 어쩔 수 없다. 혼자 있으면 거침없지만(뭐가?) 함께 있으니, 너무 집이 조용하니 부담스럽다. 음악을 틀어 놓자니 어수선하다. 이를 어쩌나..
둘째로, 밥 먹는 것도 그렇다. 양이 적고 소화가 느린 나와 달리 그는 양도 나보다 당연히 많고 소화도 빠르다. 뭐든 시원시원하다. 거침이 없다. 요리도 조금씩 천천히 살살 치워가며 하는 나와 달리 그는 많이 빠르게 팍팍 어지르며 맛있는 음식을 뚝딱 해낸다. 오전 근무하며 대부분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탓에 점심시간이 되어도 배가 고플 때가 많지 않다. 혼자 있을 땐 먹지 않거나, 밥만 조금 떠서 멸치에 김만 가지고도 반그릇 정도 먹기도 한다. 물론 고플 땐 많이 먹지만. 여하튼 그런 나의 상황과 관계없이 같이 제시간에 먹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따로 먹어도 되고, 그도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신경을 쓴다. 오늘도 그랬다. 고프지 않아서, 난 이따가 먹겠다고 했다가 결국 같이 먹었다. 다시 차리고 어지를 생각 하니 먹을 때 그냥 같이 먹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국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혼자 힘들어하는 건 바로 나 자신 때문이었다. 스스로 노력 중이다. 그러지 말자고, 의식하지 말고 나도 편안히 할 거 하면 된다고.
어릴 때를 돌아보면 그때도 난 그랬다. 가족들하고 다 같이 거실에 모여 과일 먹고, 티비를 보다가도 일정 시간이 되면 내 방으로 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아야 했다. 그게 편했고, 진짜 휴식이 되었다. 가족들과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나만의 공간과 시간도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건 여전하고 말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 출산 후 오직 주부로서 집에 있을 때는 그것이 가능했다. 남편은 재택을 하지 않았고, 나는 어린 아이들을 돌봤지만 유치원에 가는 오전 시간은 주로 나의 공간이자 나의 시간이었다. 그게 참 소중한 거였다.
반대로 남편은 어떨까도 종종 생각한다. 아이들 어릴 때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남편은 회사에도 사람들이 있고 집에도 사람들이 있으니 진짜 혼자 있는 시간이 없겠네, 하고 안쓰러워한 적이 있다. 그는 굳이 원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내 눈엔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오빠가 낚시를 가는 것도 오케이 한다. 다 큰 성인끼리 허락이 필요하겠냐만 부부는, 아이가 어린 부부는 아무래도 필요한 부분이다. 당연하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가족이니까. 내가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듯 그에겐 밖에서의 혼자 시간을 주기.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말이다.
밖에 나가면 동네 반장 소리도 들었을 만큼 외향적이기도 했던 나지만, 요즘엔 영 자꾸 내향적인 성격과 마음이 물씬 물씬 올라온다. 나의 힐링 포인트였던 혼자의 시간도 줄었고, 나이도 들어가기 때문이리라.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이럴 땐 다 내려두고 나를 돌보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친한 언니는 내 기분을 잘 살피라 조언해 줬는데, 그 역시 어떻게 할지 참 어려웠다. 매일 도전 중이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 와중 집에 꽂혀있던 책이 눈에 띄었다.
<오직 딱 한 해만, 다정한 이기주의자>
<오직 딱 한 해만, 다정한 이기주의자>
워킹맘과 심리학자인 두 친구가 편지 형식으로 주고받은 글을 모은 책이다. 너무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좀 돌보기로 하고, 딱 1년 동안 매달 자기 돌봄의 미션을 정해두고 그 내용에 대해 서로에게 편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독자는 이 책에서 안내하는 미션대로 따라가면 된다. 그러면, 독자 역시 자신을 돌보며 진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선물 받아 집에 들인 지 1년도 되지 않은 책인데, 왜 그동안 이걸 생각하지 못했지 싶었다. 아마도 너무 바쁜 삶에 이 책은 늘 제자리에 놓여있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보인게 어딘가 싶었다. 마치 계시 같았다. 내 힐링포인트인 책소개, 낭독으로 몸을 풀었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이니, 소개하고 싶었다. 함께 나누고 싶었다. 번아웃이 오기 직전의 요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함께 읽자고, 그리고 이야기 나누자고 말하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지금의 내 위치, 내 상황에서 나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 매우 이기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우리 마음을 읽어준다. 사실 그렇다. 저자들도 그렇고 나 역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이 있고, 남편이 있고, 부모님이 있다. 그리 잘 챙겨주고 살지는 못해도 그렇다고 나 혼자 잘 살겠다고 나를 돌보겠다니. 그럴 힘으로 아이들을 더 돌보고 남편을 더 챙겨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책은 그런 것도 다 간파하고 있다. 내가 행복해야 그들도 행복하다고. 너무 당연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말을 해주며, 눈 딱 감고 딱 1 년만, 한 해만 자기 돌봄을 해보자고 한다. 그걸 '다정한 이기주의자'가 되자고 말하는 것이다.
너무 예쁜 말이다. '다정한 이기주의자'라니. 눈에 확 띄어 독자의 구매욕이 바로 당기는 카피는 아니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곱씹다 보면 참 좋은 말이다. 너무 오래도 아니고 딱 한 해만. 양해를 구하고 다정한 이기주의자가 되어보고 싶다.
내향인도 아닌 외향인도 아닌 '중간인'으로서, 나는 이렇게 하루를 또 살아낸다. 중간인의 MBTI는 뭐라고 할까. 그것도 만들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