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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이후 3일 동안 생긴 일

자발적 분석 기록

비록 재택근무였지만 2년간 주 5일 근무를 했다. 근무시간도 보통의 직장인들보다는 짧은 형태였지만 그래도 난 일하는 사람, 일하는 엄마, 아내, 여자였다. 고정된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다 보니 이전의 자유로운 주부이자 프리랜서였을 때보다는 제약이 많았다. 당연한 거였다. 


재택으로 일해요,라고 하면 보통은 부러워했다. 나도 대체로 좋았다. 몇몇 아주 약간의 단점을 제외하고는 편한 점이 많았다. 아침 준비 시간이 아주 짧았으며(세수하고 안경만 고쳐 쓰면 내 몸뚱이 준비는 끝) 아이들 등교 케어가 가능했다. 단점으로는 동료가 곁에 없어 외로웠고 적막했다는 것. 일에 집중해야 할 때는 가사 있는 노래도 방해가 되어서, 연주음악으로만 틀어두다가 그마저도 잊고 대부분은 고요히 일했다.


난 성격도 이상해서, 또는 아주 소심해서 출근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대표님은 개인적으로도 친한 분이라 너무 칼처럼 하지 말라고도 부드럽게 몇 번 말씀하셨지만 내가 그게 어려웠다. 남들이 재택을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대충 좀 늦게 출근하거나, 출근했다고 하고 좀 더 누워있거나 할 수 있지 않냐고도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니라고 봤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딱 한 번 제대로 늦은 적은 있다. 1년 전쯤 남편이 없던 날 방학 때였나, 눈 뜨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어 깜짝 놀란 적은 있다. 너무 놀라 죄송하다 연락하고 그만큼 연장근무를 했었다. (잊고 있던 추억인가 굴욕인가 하는 기억)


보통 직원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거라면, 9시 출근이면 8시 30~40분쯤에는 도착을 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 아이들 등교 케어를 내가 다 하는 것이 가능한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고(그래서 9시 출근), 대표님과 본부장님 역시 오전에 정신이 없으신 편이라 9시 전에 컴퓨터 앞에 앉더라도 굿모닝 인사는 꼭 9시 땡 하면 드렸다. 그리고 바로 그날의 업무를 살피고, 보고 시작..!


그렇게 2년간 촘촘히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니, 공허함이 밀려온다...라고 쓰고 싶었지만 감사하게도 프리랜서로의 삶을 쉬지 말고 이어가도록, 모 기업에서 스피치 교육을 진행 중이다. 작년에도 불러주셨던 곳이라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임하고 있다. 그래서 다행히 오전 재택근무 일을 그만뒀다는 것에 큰 현타는 없지만.. 퇴사한 지 3일이 지나니 내 성향에 대해 스스로 분석을 하게 된다. (2월 말일까지만 일한 거지만 휴일들이 있었기에, 진짜로는 이번주 월화수요일이 아침 출근을 하지 않은 첫 주였던 셈이다)


<퇴사 첫날>

연휴 동안 어질러진 집 대청소, 빨래, 정리. 마치고 늦게 출근하는 남편과 점심 외식. 식사 후 근처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일을 좀 보려고 시도. 결국 노트북으로 음악을 들으며 다이어리에 최근 소홀히 적었던 일정 정리만 좀 하고 나옴. 나와서 작은아이 픽업 후 집으로. 학습지 선생님도 오시고, 빨래도 개다가 새 학기 준비물 적어온 것 보고 놀라서 준비 시작. 색연필과 사인펜 새로 사고 짝 맞추고 견출지에 이름 써 붙이고 테이프 두르고, 서류 받아온 것에 특이사항 적고 동의할 거 하고 등등, 없는 파일 등 사러 문구점 다녀오고 마저 작업하는데 남편 퇴근, 일단 한쪽으로 밀어놓고 저녁 준비 돌입. 남편과 저녁 함께 차리고 먹고 치우고 학교 준비물 작업 마치고 일 좀 하다가 하루 마무리.


<퇴사 둘째 날>

다 내보내고 집 치우고 스피치 교육 과제 피드백들 드리고 부산 떨다 보니 점심. 라면으로 때우고 빨래 개다 보니 둘째 하교 시간. 1, 2학년 때 엄마 재택근무한다고 너무 일찍부터 혼자 내보내고 혼자 귀가하게 시켰더니 자꾸 놀이터로 나돌았던 막둥이. 3학년 되어 이제 엄마들이 별로 안 데려가는 나이인데 나는 역으로 이제야 데리러 간다. 새로운 선생님 얼굴 멀리서나마 뵙고 꾸벅 인사하고, 집에 오는 길 문구점 들러 어제 못 산 일기장 2권 사서 집으로. 고학년 큰아이는 1교시 더 하고 혼자 올 거니 안심. 잠깐 쉬면서 아이 가방 정리하고 부산 떨다가 학원 시간 돼서 데리고 출발.(멀어서 차로 함께 감) 아이 수업 기다리는 동안에도 담임 선생님과 통화하고, 친정엄마가 잠깐 들르셔서 볼일보고 가심.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도서관에 들러 책 반납과 대출. 집에 와서 유튜브 영상 녹음과 편집, 중간에 저녁 만들고 먹고 치우는데 1시간 30분 소요. 애들 수영 보내고 8시 필라테스하러 출발. 빡센 운동 후 집에 와서 편집 마무리하고 업로드하고 스피치 과제 들어온 것 피드백 또 드리고 나니 11시, 애들 단도리해서 함께 취침.


<퇴사 셋째 날>

어제와 그제 연이틀을 빡빡하게 보내서인지 아침에 겨우 눈이 떠짐. 샐러드에 식빵 구워 잼 발라 애들 먹이고 나는 시리얼. 남편은 시래기밥. 기호대로 먹고 애들 학교 보내고 싱크대 정리, 빨래 돌리고 방으로. 무언가를 루틴 있게 해야겠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중. 오전 재택근무를 할 때와 안 할 때의 차이를 느껴보는데. 해도 안 해도 하루가 바쁘고 정신없는 건 마찬가지다. 일단 마음이 불안하니 계속 일정을 들여다보고 있고, 틈틈이 할 일이 또 많으니 온전히 쉬게 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음. 만약 지금 이 상황에 오전 재택근무를 다시 추가한다고 가정해 보면, 그것도 또 잘하게 될 것 같긴 하다. 지금도 엄청 바쁘고 여유 없게 느껴지지만 막상 루틴 하나를 끼워 넣으면 그것도 또 잘하게 된다는 것.


사람들은 나에게 퇴사해도 제일 바쁘다고 말한다. 사업하는 언니도 내가 더 바쁜 것 같다고 하고, 친한 동네 엄마들도 '민하는 늘 바쁘지!'라고 말한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왜 바쁠까.


1. 너무 오래 쉬면 불안한가 보다.

오래 쉰다는 뜻은, 예를 들어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내내 침대에 누워있거나 드라마를 내리 보거나 하는 것. 예전엔 그런 때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물론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본다. 하지만 이젠 끊어서, 다른 할 일을 하면서 틈틈이 본다는 것. 나는 아직 축에도 못 들지만 이러다가 일중독 같은 것에 걸리고 할 것 같다.


2.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고, 시간이 나면 채우려 한다.

이건 많은 지인들과 대화해 본 결과, 보통 사람들이 이런 것을 겪는다고 한다. 일을 하고 싶고, 일을 갖고 싶은 건 당연한 것이다. 누가 백수가 되고 싶겠는가! 주부도 직업이고, 회사원도 직업, 스피치 강사도 직업이다. 다만 나는 전업주부라는 직업은 내가 못하겠어서 내려놨고, (그래서 '전업'이 아니고 '반'주부이다) 회사원은 2월 말일자로 그만뒀고, 프리랜서 일은 누가 봐도 내가 스스로 벌려서 하는 일이다. 난 몇 년 전 프리랜서 일도 뜸하던 시절엔 가만히 쉬지 않고 브이로그라도 찍고 만들어 올렸다. 스스로 사람을 만나고 다녔고 그러다가 다시 일도 이것저것 더 하게 되었다.


사실 일을 그만두고 바로 글쓰기에 전념하려고 했다. 브런치에 쓰는 일 말고 따로 나의 일을 글로 정리하는 것. 그런데 집중이 잘 안 된다. 잡다한 일이 많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번 주는 아이들 새 학기도 시작되고 챙겨줄 것도 많으니, 조금 여유를 갖고 쉬면서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또 다른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월요일부터 오전에도 쉬지 않고 청소하고 굳이 나가서 카페에 꼿꼿이 나가 앉아서 일정을 들여다봤다. 어제도 나갔고, (아이 학원 때문에) 오늘도 나가야 한다.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오히려 방전되고 있는 느낌은 왜일까. 정리되지 않고 허둥지둥 몸만 움직여서일 게다. 


아무래도, 늘 조금은 불안한가 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걸 하고 있는데, 내일도 내리 4시간 강의가 예정되어 있는데. 쉬고, 정확한 계획을 세워서, 출발해야겠다. 뭐.. 말이 쉽지 여전히 내일 이 시간에도 부산을 떨고 있을 거지만 말이다. 


아니다 차라리.. 명상을 좀 해볼까?



*결론 : 

1. 쉴 땐 쉬고 놀 땐 놀아야 함. 제대로 구분해야 함. 지인들과 만나 수다떨고 놀면 차라리 괜찮은데 혼자 집에 있으면 제대로 놀 줄 모르고, 어떨 땐 컴퓨터 끌어안고 시간만 감. 

2. 갑작스런 일이 들어와도 너무 그 일에만 몰입하지 말고, 균형있게 할줄 알아야 함. 책임져야 하는 일거리가 생기면 만사 제쳐놓고 하는 스타일이라 문제. 일하느라 애들 방치하는 것 조심할 것. 이상 스스로 분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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