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덧의 늪, 겪기 전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임신 사실을 알기 전
평소 그날 생리증후군처럼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겼다.
그래서 '곧 생리하려나 보다' 했다.
몸에 한기, 약간의 오한이 생기며 평소 야행성이던 내가 잠이 매우 많아졌다.
체력이 매우 저하되고 후각이 예민해져
하루는 편의점 모카라떼 같은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는데 속이 이상해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순간 촉이 왔다.
생리 예정일 3일 차, 집에와서 테스트기를 해봤더니 진한 두 줄이 확인되었다.
혹시 몰라 다음 날 다시 해봤는데 역시나 선명한 두 줄 이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온 축복의 아기 꼬물이.
(태명이 럭키가 된 이유는 다음에 풀어보려 한다.)
임신 전 나에게 연상되는 "임신" 이란 축복받고 기쁨 가득한 장면들이었다.
새 생명을 잉태한 고귀한 몸, 다이어트 강박과 몸 관리에서 해방된 야식이 허용되는..? 축복의 기간
늦은 밤에도 "나 족발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말하면 남편이 즉각 사다 주는 그런 광경을
(요즘은 배달이 참 잘 되어있어 남편이 고생을 덜한다.^^ 부부싸움 미연 방지의 효과랄까)
그리고 "우웩" 하고 토하는 입덧. 이 있었다.
아직 모르는 게 투성이라 스트레스가 살짝 올라온다.
그리고 야행성이던 내가 6-7시만 돼도 잠이 쏟아진다. 또 1주일 간은 매~일 개꿈 같은 악몽을 꿨다.
임신 극 초기부터 후각이 개 코처럼 발달하더니 아침 공복에는 미친 듯이 울렁거린다.
그런데 아무 거나 먹어지지가 않는다.
배가 고픈데 아무것도 못 먹겠는 것이 처음 겪는 미칠 노릇인 것이다.
평소 편식이 없이 먹성이 좋아 "입맛이 없어.."라는 생각을 해본 기억이 없는 나는
살이 주체불가로 찔 듯하여
임신 전 상상하던 "여보~ 나 00 먹고 싶어"는 수시로 뭐가 먹고 싶은 것이 아닌
입덧의 느낌은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는데 나의 경우 가장 싫었던 게
와인, 소주, 맥주를 섞어 마신 후 다음 날 하루종일 숙취가 계속되는 느낌이다.
숙취가 다음 날 하루종일 가는 게 싫어 술을 많이 못 마시는 나에게 종일 숙취에 시달리는 기분이라니...
울렁울렁 배 멀미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평소 화장품 냄새도 잘 인지하지 못하던 무던한 편이었던 후각이 미친 듯이 발달하여
음식 외에도 냉장고 냄새, 외국인 냄새(?), 택시 안, 엘베 안 냄새 등.. 별의별 괴로운 냄새투성이다.
(아주 미묘한 냄새도 잘 나기 때문에..)
평소 싫어하던 담배냄새는 더 싫다.
아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담배연기를 풍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앞으로 평생 후각이 이러진 않겠지..? 강아지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임신초기 시간은 왜 이리 안 가는지
이르면 12주부터 분명 입덧이 완화될 수 있다고 해서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개인차가 있으며 끝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내가 어쩔지 모르니 무섭잖아..)
아침에 눈 떴을 때 괴롭던 공복 입덧은 다행히 12주 이후 사라졌다.
하지만 입덧이 가장 심하다는 12주 차까지도 "내 인생에 토는 없다"라며 안 하고
잘 버티던 토를 (헛구역질은 계속..) 13주 이후 시작했다.
음식이 드물게 당길 때 조금 많이 먹었다 싶으면 얹혀서 토를 한다.
자주 배고픈데 많이 먹으면 부대낀다.
그리고 그렇게 느글거려진 음식은 쳐다도 보기 싫어진다.. 아니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오래간만에 맛있게 먹었다' 싶었더니 저녁에 소화불량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과식한 스스로를 탓한다.
안 그래도 당기는 게 없는데 그렇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점점 더 사라진다.
거울을 보니 얼굴 살이 쪽 빠져 노화가 찾아오는 듯하다.
폰 보는 거 책 보는 것까지 별개 다 메슥거리고 (그냥 네 속이 느끼한 거야)
두통, 현기증이 심해진다.
‘그렇게 많은 걸 하던 내 체력이 좋았던 편이긴 했구나.. ’라고 소중함을 깨닫는다.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에, 알 수 없는 감정에 아기와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이런 증상은 괜찮은 건지, 처음 겪는 일에 하나하나 불안하고 민감해지는 내가 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