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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작가 Apr 19. 2023

제주도 오름길, 내 꿈은 습지


제주도에서 습지의 오름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간 내가 갔던 오름들은 높은 곳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는 모습이었기에 이곳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습지는 물이 습지내부의 환경과 동, 식물을 통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는 지역으로써 지구상에서 가장 생명력이 풍부한 지역이며 다양한 미생물이 유기물질을 먹고살기 때문에 오염원의 자정작용과 홍수, 가뭄 등을 조절하는 자연적 스펀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제주 서귀포 여행 중, 남편에게 가볼 만한 오름을 찾아서 가보자고 미션을 줬다.


그리고 우리는 현 위치에서 가까운 "물영아리 오름"에 가보기로 했다. 여러 가지 걷기 코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시간이 부족했던 우리는 가장 빠른 직선(가파른 계단 코스)으로 오르기로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안개가 자욱했다. 사람은 우리 둘 뿐이고 계단은 상당히 가팔랐다.

얼마나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체 이 계단의 끝이 어딘지..



중간중간 쉬는 곳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가 한 편씩 있었다. 잠시 그 시를 읽는 시간이 어찌나 소중한지

(마음에 울림을 주기도 하고.. 역시 난 작가인가)




역시 빠르게 가려고 하면 큰코다친다며, 왜 나는 남들이 가는 편안한 길을 두고 힘든 길을 택하는지


하지만 평소에 단련해 둔 체력으로 나와 남편은 그 힘듦을 약간은 즐기고 있었다.

(물론 오를 때는 죽을 것 같고, 오른 후의 기쁨으로..?)


하산할 때 만난 이곳에 매일 오르시는 거주민, 흡사 홍보대사 분 께서 근래에 계단 오르는 젊은이 중 최고라며 이 831 개의 계단을 올라보면 몸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고 하셨다. (허리, 관절, 체력, 심장, 폐 등 이상 있으면 힘들어서 끝까지 오를 수 없기에...) 우리 부부는 20년 안에 병 걸릴 일 없을 거라고 55세까지 병원 가게 되면 여기로 찾아와 병원비 청구하라는 말씀까지 해주시며. 이곳에 매일 오르시는 분은 감기도 한 번 걸리지 않기에 병원을 갈 일이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건강해 보이셔서 부러웠다. 이런 좋은 자연의 기운을 매일 느끼며 운동한다니, 아플 수가 없을 듯했다. 언젠간 제주에 꼭 살아보겠다며.






안개가 자욱한 날씨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음습한 분위기 어디가 정상인지 몰랐지만 생각보다 소요 시간은 짧았다. "약 1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르는 과정에서는 끝이 언제인지 모르기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고요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습지의 광경이 펼쳐졌다. 

평온하고 잔잔한데 왠지 모를 강인한 생명력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인데, 마치 금도끼 은도끼 산신령 나올 것 같고 처녀귀신이 나올 법한 곳.  (여러 오름이나 산을 가봤지만, 이런 모습은 상상치 못했다. 그리고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이곳의 분위기, 촉촉한 비와 안개도 분위기에 한 몫했다.)


고난의 행군 끝에 최종 삶은 이런 모습일까?


평온하고 잔잔한데 대체 불가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연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주며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었다. 외유내강이랄까.



그런데 이렇게 힘든 고난의 계단이 없었다면, 정상의 습지의 모습에서 평온함과 강인함의 기운이 감격스럽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냥 조~용한 물이 살짝 고인 웅덩이 같은 모습에

“잉? 이게 다야?”라고 했을 것 같기도..




이후 평지로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오는 순간은 더 편안하고 행복했다. 


올라가는 건 어렵지만 내려가는 건 쉽다. 어릴 때 고생을 좀 해봐야 평범한 게 소중함을 안다. 


짧고 굵은 등반길 속에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 물영아리오름 습지


다음에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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