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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영 Oct 30. 2022

안개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7

  샌프란시스코가 낭만 넘치는 도시라고들 하는데, 거기엔 안개가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날, 눈 뜨자마자 침대 옆 창문을 내다보니 앞 건물에 햇빛이 세게 비추고 있었다. 어제, “오늘 이렇게 흐리다가 내일은 막 화창한 거 아니겠지?”라고 설마 했었지만 사실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던 거 같기도 하다.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마지막 날의 계획들을 다 재치고 금문교를 보러 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남은 짐을 정리한 후 마지막 날 들리기로 한 매장들을 비롯해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클램차우더를 한 그릇씩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분명 여유 있게 시간을 계산했던 거 같은데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면서 시간이 아슬아슬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도 국내선은 오래 걸릴 게 없으니까 괜찮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갔지만, 최소 40분 전에는 수속이 끝난다는 걸 계산하지 못했다. 우리는 30분 전에 도착했고, 허공에 50불을 날리고 3시간 후의 비행기를 타게 됐다.


  첫날부터 날씨는 맑고 좋았는데 금문교는 아껴두겠다는 마음에 셋째 날에 가는 걸로 계획을 잡았었다. 그리고 둘째 날까지는 맑다 못해 화창하던 날씨는 셋째 날 하루 종일 안개가 가득 꼈었다. 금문교는 멀리서 형체만 흐릿하게 볼 수 있을 정도여서 금문교를 미루게 됐다. 넷째 날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흐린 하루를 보내며 결국 마지막 날까지 금문교를 미뤘다가 못 보게 됐다. 파리 여행 갔을 당시에는 숙소 도착하자마자 짐만 두고 제일 먼저 에펠탑을 보러 트로카데로역으로 나갔었는데. 에펠탑은 나 왔다고, 반가운 친구에게 인사를 하러 가는 느낌이었다면 금문교는 보고 싶었던 옛 애인을 재회하게 됐는데 떨림에 괜히 만남을 살짝 미루게 되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 같아 더 아른거리는 사람, 시간, 장소들이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러한 곳이다. 지내보니 일기예보를 봐도 예상할 수 없는 무심한 안개는 샌프란시스코 같고 금문교는 내 마음 같다. 영원하지도 않을 마음인데 무엇을 위해 아끼는지도 모르고 자주 아끼게 되는 그런 마음. 아끼다가 안개가 가득 껴버리면 바로 앞에 있어도 그렇게 볼 수 없게 되는 거다. 그러니, 언제 덮칠지 모르는 안개니, 보고 싶을 때 뛰어가고, 고마울 때 껴안고, 그저 좋을 때는 활짝 웃으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아껴두는 이유는 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없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마음을 아끼지 말고 살도록 하자고. 보지도 못한 금문교는 이런 다짐을 남겨줬고 내 마음에 오래 남게 됐다.


  그렇게 금문교는 다음으로 기약하게 됐다. 여러 번 여행을 해보니 사소한 거라도 그렇게 다시 올 이유가 있어야 정말로 다시 오게 되더라. 그때는 옛 애인을 재회하는, 떨리는 마음을 덤으로 안고 오겠지. 자유, 젊음, 안개의 도시에, 그렇게 난 한번 더, I left my heart in San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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