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6
보스턴 미술관에 갔다. 오후 10시까지 열려있는 수요일은 4시 이후부터 무료입장이다. 미술관에 미리 도착해 기념품샵을 둘러본 후 4시 전까지 1층 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정면에 입구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앉으니 오후에 미술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구경하게 됐다. 커플룩을 맞춰 입고 미술관 데이트를 온 노부부도 있었고, 배낭을 메고 신나게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할머니 몇 분이 홀에 서성이고 있자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Can I help you find anything?”
“Yes, we’re looking for our friends.”
사람들 구경에 웃음이 오가는 재치 있는 대화들까지 듣다 보니, 곧 미술관 입장이 시작됐다. 1,2층으로 이루어진 미술관은 2층에서 시작해 1층으로 내려오면서 보는 게 효과적이라 하여 2층부터 시작했다. 주요 전시관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19~20세기 유럽 회화관부터 둘러보고 로마 미술관도 보고 1층으로 내려왔다. 1층 내려와서는 아트북 스토어에서 거의 한 시간을 있었고 바로 옆에 있는 미술관 내 카페에 잠시 앉아 어떤 책을 구매할지 고민했다. 차마 빈손으로 돌아서질 못하고 고민 끝에 아트북 한 권을 구매하고는 1층 전시실을 마저 구경했다.
거기서 미술관 통틀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처음 보는 작품을 만났다. 모던 아트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관에서 내 걸음을 멈추게 한 건 탁한 색감의 그림이었다. 막스 베크만의 ‘이중 초상화’라는 작품. 그림의 우측에 표시된 제목 아래에는 이런 설명이 함께 쓰여 있었다.
“이 그림은 베크만과 가까운 두 친구를 그린 것이다. 그 둘은 베크만을 보기 위해 1946년 암스테르담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다른 날 찾아왔기에 (그림에서처럼) 함께 포즈를 취한 적은 없다. 대신 베크만은 그 둘이 함께 있는 초상화를 상상해 그렸다. ”
무슨 사연인지 자세히 나와있진 않았지만 베크만은 두 친구와 함께하지 못한 그날이 많이 아쉬운 듯했다. 그는 본인이 바라던 그 시간을 그림으로라도 완성시킨 게 아니었을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에서도(영화의 반전을 말하는 것이므로 제목은 생략한다) 주인공의 다 못 이룬 사랑을 주인공의 동생이 작가가 되어 언니의 사랑을 소설로 나마 완성시켜 준다. 사실 그림도 진짜 초상화인지 아닌지 중요한 게 아니듯이. 베크만 친구들이 그 그림을 보고 ‘아 베크만은 우리가 다 같이 함께하는 시간을 이 만큼이나 원했었구나, 우리를 많이 보고 싶어 했었구나.’ 그런 그의 마음을 전달받고, 그 그림이 또 다른 남들에게 그런 감동을 주면 그걸로 그 그림은 큰 가치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도 그런 마음을 담기 위해 시작된 거 일수도 있겠지. 완성되지 못한 상황 때문에 묻혔을 진심이 내보여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오히려 글이라는 소재로 풀어져 더 빛날 수 있는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