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8
여행 가면 유명 관광지들을 비롯해 로컬 맛집, 미술관, 유명 카페, 가끔 영화 촬영지들을 찾아가는데 그중 여행에서 빠지면 안 되는 곳 중 하나가 로컬들 사이에서 유명한 마켓이다. 주중에 정해진 요일에 열리는 마켓이든, 주말 마켓이든, 엔틱 마켓이든, 아기자기한 것들이 판매되는 프리마켓이든, 그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마켓을 가면 그 나라만의, 그 동네만의 특징이 배어 있어 관광지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파리에는 방브 마켓, 런던에는 버로우 마켓이 있다면 보스턴에는 파뉴일 홀 마켓플레이스에 있는 퀸시마켓이 유명하다. 파뉴일 홀 마켓 플레이스는 퀸시마켓, 노스 마켓, 사우스 마켓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건물들이 나뉘어 있지만 다 서로 연결돼 있는 구조로 돼있다.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을 판매하는 상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에는 식품 도매시장이었지만 각종 음식점들이 들어오면서 기념품 가게들도 많이 생겼다. 유럽의 마켓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지만, 여행자들이 와서 보스턴의 대표음식들도 먹고 기념품이나 선물 사가기 좋은 곳이다.
가운데 자리한 퀸시마켓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Boston’이라고 새겨진 후드와 티셔츠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자석 파는 곳들도 있었고, 보스턴의 대표 상징인 랍스터 인형과 열쇠고리들도 다양하게 보였다. 구경하기에 앞서 배부터 든든하게 채우기 위해 클램차우더와 랍스터 롤을 사서 퀸시마켓의 중심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음식을 사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여러 개의 테이블과 자리가 준비돼 있고 운 좋으면 뮤지션들의 버스킹 공연도 볼 수 있다. 각자 혼자 온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서 나도 한 칸 띄어서 앉았다. 도착한 날도 먹고, 어제도 먹고, 원 없이 먹고 있는 클램차우더와 함께 바다 맛이 강하게 나는 랍스터 롤을 맛있게 먹었다. 앞 테이블에 앉은 커플도 랍스터 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옆으로 나란히 앉은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먹을 수 있도록 옆으로 앉아 있었고, 덕분에 그들 말소리는 잘 들려왔다. 그들도 나와 같은 여행자였고, 가야 할 곳들과 가고 싶은 곳들을 서로 나누며 일정을 자유롭게 짜고 있었다.
앉아서 주위 대화를 들으며 천천히 먹고, 다시 본격적으로 마켓을 구경했다. 기념 자석, 컵들도 구경하고 다양한 색의 후드티도 둘러봤다. 별거 아닌데 이상하게 매번 재밌다. 가게마다 비슷한 물건들을 보고 또 보다가, 들어올 때 봤던 파자마 바지가 또다시 내 눈에 들어왔다. 하늘색 바탕에 빨간색 랍스터들이 패턴으로 그려져 있는 귀여운 파자마였다. 남성용이라 기장이 좀 길었지만 그냥 샀다. 어차피 집 안에서만 입을 텐데 좀 끌리면 어때.
귀여운 파자마 바지를 시작으로 아기자기한 기념품들과 친구들 선물을 다 여기서 사기로 결정하여 그때부터 모든 매장을 다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다 물건이 가장 다양하게 많은 가게를 골라 들어가서 챙길 친구들 이름이 적힌 메모를 보며 본격적으로 선물 쇼핑을 시작했다. 12월이라 크리스마스 관련 물건들이 많았다. 빨간색 랍스터들이 돋보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제일 많았고, 자석들도 다양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서 보스턴 레드삭스 로고가 박힌 곰돌이 인형과 야구공을 골랐다. 머그컵들을 한참 구경하고 있을 때 점원이 야구 좋아하냐며 물었다. 내가 아닌 친구가 좋아한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로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여행을 왔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잘 왔다며, 이번 겨울 날씨가 너무 좋다고, 작년에 왔으면 눈이 그칠 줄 모르는 날씨 때문에 고생했을 거라고 했다. 안 그래도 작년에 뉴스로 많이 접해서 두꺼운 맨투맨만 챙겨 왔더니 덥다고 하니 그는 웃으며 그래도 러키 하다고 했다. 보스턴 첫 방문이냐는 질문에 난 아니라고, 십몇 년 만에 재방문이라고 했다. 리액션이 좋은 그는 오랜만에 방문이라 몹시 좋겠다고 하면서 이어진 그의 마지막 말은 보스턴의 이번 겨울 날씨만큼 따뜻했다.
“Well, welocome back! Welcome back to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