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프로 관객의 부산국제영화제 탐방기②
앞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찬양하며 기다리고, 고대하는 마음과는 어울리지 않게 영화제 참여를 위한 준비나 계획은 없다. 그저 영화제 기간 중에 참석할 수 있는 날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일정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거나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마무리 지어 갈 수 있는 날짜를 확보하는 것 외엔 정말 아무 계획도 없다.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한 티켓팅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갈 수 있는 날을 확정 지어서 '보러 가는 것' 만으로도 모든 것은 충족된다.
올해는 운이 좋게(?) 하고 있던 일이 사라진 덕에 3박 4일 일정으로 부국제에 다녀왔다. 3박 4일 갈 수 있다는 날짜가 정해진 것 외에 숙소도 영화티켓도 예매하지 않았다. 출발하고 싶은 시간에 가능한 기차표를 예매하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도착시간에 맞는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관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이 40분가량 남아 있었다. 숙소를 정하지 않아 영화관이 있는 센텀시티역에 도착하자마자 물품보관함을 찾았다.
들고 온 모든 가방을 물품 보관함에 넣었다. 카드 한 장과 안경만 있으면 영화 볼 준비는 다 한 것이다. 보관함 덕에 가벼운 몸으로 밖으로 나왔다. 첫 영화는 영화의 전당에 있는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다. 센텀시티역에서 영화의 전당까지 느리게 걷는 내 걸음으로 10~15분 정도 소요된다. 이동을 위해 밖으로 나온 순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준비성이 없는 인간이긴 하지만 요즘 햇살이 너무 강해 양우산을 가지고 다닌 터라 가방에 있는 우산이 생각나긴 했다. 처음엔 비를 맞고 갈 생각이었다. 우산을 가지러 내려가기 매우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빗줄기가 심상치가 않은 것이다. 귀찮음을 이기고 지하로 다시 내려갔다.
사실 보관함 사용은 두 번 째다. 첫 번째 사용 당시 보관함을 중간에 열 일은 없었다. 두 번째 사용에 보관함을 닫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열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시간당 요금을 지불했기에 중간에 열어서 무언가 꺼내고 다시 넣는 기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내 생각'이다. 시간당 요금을 지불했지만, 보관함을 열면 이용이 종료된다. 그리고 다시 요금을 지불하고 보관함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밖에서 우산을 하나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귀찮음과 싸워 승리한 자의 최후가 이런 것이라니. 귀찮음과 싸워 이기면 보람차거나 뿌듯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결과가 지출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귀찮음을 이겨내 보기로 한다.
해결책은 바로 고객센터와의 소통. 질문이라도 해보자. 진짜 방법이 없는 것인지.
예외적인 도움을 받아 우산을 꺼내 쓰고 극장으로 향하면서 작은 돈을 아꼈다는 뿌듯함에 거침없이 커피 한잔을 사들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화관 의자에 착석하자마자 겉옷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