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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망 Mar 07. 2024

'우주 대스타' 만나고 올게

우주의 기운을 받으면 기대하는 소식이 올 거야.

“웅아, 비켜봐! 규리야!, 이쁜아!”

캐리어 안에 번갈아 올라타 있는 이쁜이와 규리, 웅이.


“언니 짐 싸야 한다냥!”

“언니는 비행기 타고 고양이 친구들 만나러 갈 거라옹. 너희도 제주도 가고 싶어? ”


여행은 내가 떠나는데 더 신이 난 고양이 가족이다. 여기는 임시 보호를 맡아준 진주 씨 집이다. 이쁜이의 출산을 함께 지켜보고 탯줄을 자르고 태어난 아가들의 생과 사를 함께 한 진주 씨가 일주일 휴가를 떠났다. 그 일주일을 나와 함께 보낸 고양이들. 내일이면 진주 씨가 돌아오고 나는 보고 싶은 '우주 대스타 히끄'를 만나러 간다. 그는 구조와 임시 보호, 입양을 보내는 과정에서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웃음을 준 고마운 존재다.


소란스럽게 짐 싸는 걸 방해하는 고양이는 5개월 전 구조한 유기묘 이쁜이와 그녀의 아이들이다. 이쁜이는 연남동 빌라에 살던 사람이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8개월령 젖소 고양이다. 이쁜이는 살던 집 골목 주변을 맴돌았고 늘 같은 자리에서 식빵을 구우며 두리번거렸다. 안전한 공간에서 잠을 길게 자는 고양이의 습성도 잊은 채 말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골목길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쁜이


중성화 수술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이쁜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하고 예비 산모가 되어 있었다.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이의 서사를 몰랐다면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의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으로 바라봤을 테다. 출산을 앞둔 고양이를 구조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며 유난스럽게 굴 일이 아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늦은 밤 만삭인 몸으로 공사장에 들어가는 이쁜이를 보고, 결국 나는 SNS 계정에 '임시보호처 구해요' 글을 올렸고 이쁜이를 구조했다.


임시 보호를 맡아준 진주 씨 집에서 생활하게 된 이쁜이는 얼마 후 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출산했다. 출산 후 주 2~3일은 진주 씨 집에 방문해 이쁜이의 산후조리부터 아가들의 육묘를 도왔다. 우주선처럼 불러 있었던 이쁜이의 뱃속에서 아기 여덟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기 고양이 육묘는 우리 모두 처음이었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하고 여러 조언을 들으며 출산 준비를 마쳤다.

우리도, 이쁜이도 육묘는 처음이다. 누구 하나 부족하게 먹는 아기가 있을까 봐 살피고 또 살폈다.
지켜냈어야 할 아기 다섯을 하늘로 보냈다.

안타깝게도 태어난 지 20일 안에 아기 다섯을 하늘로 보내야 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태어난 고양이가 한 달 안에 별이 되는 건 이상할 게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쁜이에게 자식을 잃는 슬픔까지 안겨 주고야 말았다. 이쁜이와 우리는 슬퍼할 시간도 잠시, 남은 세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다행히 남은 세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건강하게 자라준 삼둥이, 규리,웅이,나리

아까운 생명을 다섯이나 하늘로 보내면서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임시 보호 기간이 길어졌고 넷을 입양 보내는 과정까지 순탄치 못 했다. 큰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불안한 시간을 보내던 중 둘째 나리가 평생 가족을 만났고, 다음 주면 규리와 웅이가 동반 입양을 간다.


진주 씨가 없는 집에서 아이들과 매일 함께 자고 털 부비며 보낸 일주일은 귀엽고 소중했다. 내일 진주 씨가 돌아오면 나는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이쁜이 가족을 찾아줘야 하는 숙제가 남았지만, 아기들의 입양이 결정됐으니 보고 싶은 제주 고양이 친구들을 만나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귀여운 이쁜이 가족이 짐 싸는 걸 방해한다. 제주에서 입을 옷을 차곡차곡 쌓아두면 웅이가 흐트러트리고 규리는 가방 위에 올라가 탐지견처럼 냄새를 맡는다. 제주 고양이 친구들에게 선물할 간식이란 걸 눈치챈 아이들은 자기 몫은 챙겨야 하겠단다. 개구쟁이 웅이는 이미 캐리어 한쪽에 자리를 잡고 ‘간식 내놓으라냥!’ 시위를 한다.

개구장이 이쁜이 막내아들 '웅이'


이렇게 짐을 싸다가는 해 뜨는 걸 볼 수도 있겠다. 이럴 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거부할 수 없는 간식으로 유혹할 수밖에. 그리고 느린 손에 마법을 걸어 최대한 빠르게 짐을 싼다. 예쁘게 싸는 건 포기하고 마구 욱여넣는다. 제주에 도착해 캐리어를 열었을 때 고양이만 안 들어가 있으면 될 일이다.

캐리어에 올라 타 '간식 내놓으라냥' 시위 중


그리고 이번 여정에서 가장 큰 이벤트는 몇 년간 흠모하던 우주 대스타를 만나는 것. 처음 좋아할 때는 오조리 마을에서 조금 유명한 청년이었는데, 지금은 우주 대스타가 된 그다. 그 사이 그의 아부지가 운영하던 독채 민박집은 그와 한 지붕 아래 옆 방에 묵을 수 있는 1인 숙소 예약창을 열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예약했고 이제 하룻밤 자면 그를 만난다.


이쁜이가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며 “야옹” 한다.

“언니!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우주 대스타 만나고 오겠다옹. 우주의 기운을 받으면 우리 이쁜이도 가족 만날 수 있을 거라옹. 곧 입양 갈 아가들하고 소중한 시간 재미있게 보내고 있으라냥.”


짝사랑 그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히끄 씨, 할망이 간다옹. 곧 만나요.”

유기묘 이쁜이, '언니 어디 가냐옹?'


@표지 사진은 우주대스타 히끄의 아부지가 쓰고 야옹서가에서 발간한 '제주 탐묘 생활' 책 표지



(다음글) 옆 방에 우주 대스타가 자고 있다.

알 수 없는 인생, 알 수 없는 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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