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운을 품고, 이쁜이의 소식을 기다리며
여덟 생명 중 다섯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남은 셋 중 나리는 입양을 떠났고, 규리와 웅이도 새로운 가족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이제는 오직 이쁜이에게만 좋은 소식이 오기를 바랐다.
그 긴 계절의 끝에서, 나는 조용히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때 화면 너머로 지켜보던 고양이 히끄, 제주의 햇살 아래 마당을 느릿하게 거닐던 그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다쳤다는 소식에 걱정했고, 다락방에서 회복 중이라는 이야기에 안도했다.
그리고 어느새, 아부지와 함께 식사하는 그의 일상이 익숙하고도 따뜻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히끄를 만나러 간다. 긴 기다림 끝에 찾아가는 고양이,
우주의 기운을 품은 그 고요한 존재와 마주하기 위해.
“웅아, 비켜봐! 규리야, 이쁜아!”
이쁜이와 규리, 웅이가 번갈아 캐리어 위에 올라앉아 소란을 피운다.
“언니 짐 싸야 한다냥! 언니는 비행기 타고 고양이 친구들 만나러 갈 거라옹. 너희도 제주도 가고 싶어?”
여행은 내가 떠나지만, 정작 더 신이 난 건 고양이 가족이다. 여기는 임시 보호를 맡아준 진주 씨의 집. 이쁜이의 출산을 함께 지켜보고, 탯줄을 자르고, 생과 사를 함께 경험했던 진주 씨는 지금 일주일간의 휴가 중이다. 그 휴가 동안 이쁜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내게도 특별한 휴식이 되었다. 내일이면 진주 씨가 돌아오고, 나는 보고 싶은 고양이 '우주 대스타 히끄'를 만나러 간다. 구조와 임시 보호, 입양 과정 속에서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고마운 존재다.
소란스럽게 짐 싸는 걸 방해하는 이 아이들은 5개월 전 구조한 유기묘 이쁜이와 그녀의 아기들이다. 이쁜이는 연남동 빌라에 살던 사람이 이사 가며 버리고 간, 8개월령 젖소 무늬 고양이다. 이쁜이는 자신이 살던 골목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식빵을 굽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끝내 기다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중성화되지 않은 채 길 위에 놓인 이쁜이는 결국 임신을 했고, 조용히 예비 산모가 되어 있었다.
낮에는 길가 골목에서 식빵을 굽듯 몸을 웅크린 채, 마치 누군가를 끝내 기다리는 듯한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곤 했다. 그날도 이쁜이는 언제나처럼 자신이 살던 집 근처를 서성였다. 그 작은 몸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멍하니 사람들의 발자국을 바라보는 모습이 왠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늦은 밤, 나는 우연히 이쁜이가 낯선 공사장 안으로 천천히 몸을 들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발 아래가 젖어 있는지도 모른 채, 만삭의 몸으로 위험한 구조물 사이를 조심스레 통과하는 그 모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어딘가 안전한 곳을 찾아, 숨죽인 채 출산할 장소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아, 더는 망설이면 안 되겠다."
길 위에서 아기들을 낳게 둘 순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결국 SNS에 조심스레 글을 올렸다.
"임신한 고양이 이쁜이를 위한 임시 보호처를 찾습니다."
그 한 줄을 쓰기까지 참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이쁜이는 그렇게 한밤중에 우리 곁으로 왔다.
임시 보호를 맡아준 진주 씨 집에서 생활하게 된 이쁜이는 얼마 후 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출산했다. 경험이 없던 우리에겐 모든 것이 낯설고 벅찼지만, 생명의 탄생 앞에서 누구도 조급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서로 눈짓과 손짓으로 위로와 응원을 나누며, 그 모든 순간을 함께 지켜봤다.
우주선처럼 불러오던 배 속에서 아기 여덟 마리가 쏟아지듯 태어났을 때, 방 안은 작은 울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태어난 지 20일도 되지 않아, 아기 다섯을 하늘로 보내야 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한 달 안에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위로했지만, 이쁜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었다. 가족에게 버려진 것도 모자라 자식까지 잃게 된 것이다.
우리는 슬픔을 잠시 접어두고 남은 세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쁜이도 다시 조용한 눈빛으로 그 아이들을 품었다.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견디는 중이었다. 다행히 그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둘째 나리는 평생 가족을 만났으며, 규리와 웅이는 곧 함께 입양을 간다.
진주 씨가 없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보낸 일주일은 웃음과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이제 진주 씨가 돌아오면, 나는 제주로 향한다. 이쁜이의 가족을 찾아줘야 하는 숙제가 남았지만, 아가들의 입양이 결정된 지금, 보고 싶던 제주 고양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여전히 이쁜이 가족은 짐 싸는 걸 방해 중이다. 쌓아둔 옷을 웅이가 망가뜨리고, 규리는 가방 위에 올라가 냄새를 맡는다. 제주 고양이 친구들에게 줄 간식이란 걸 알아차린 아이들은 자기 몫을 주장하며 부산스럽다. 웅이는 캐리어 한켠에 자리를 잡고 “간식 내놓으라냥!” 시위를 펼친다.
이러다 해가 뜨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거부할 수 없는 간식으로 유혹해 방해를 막고, 빠른 손놀림으로 짐을 욱여넣는다. 예쁘게 싸는 건 이미 포기했고, 제주에 도착해 캐리어를 열었을 때 고양이만 안 들어가 있으면 다행이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이벤트는 몇 년간 흠모해온 우주 대스타를 만나는 것. 처음 좋아하게 됐을 땐 오조리 마을에서 살던 조용한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모두 아는 대스타가 되었다. 그의 가족이 운영하던 민박집은 이제 ‘한 지붕, 옆 방’ 콘셉트의 1인 숙소로 바뀌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예약했고, 이제 하룻밤만 자면 그를 만난다.
그때 이쁜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야옹” 한다.
“언니, 누구 만나러 간다고?” “우주 대스타 만나러 간다옹. 우주의 기운을 듬뿍 받아서, 우리 이쁜이도 곧 멋진 가족 만나게 될 거라옹.”
가슴 속 작은 설렘과 함께, 아가들과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히끄 씨, 할망이 간다옹. 곧 만나요.”
(다음글) 옆 방에 우주 대스타가 자고 있다.
알 수 없는 인생, 알 수 없는 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