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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망 Mar 07. 2024

옆 방에 '우주 대스타'가 자고 있다.

알 수 없는 인생, 알 수 없는 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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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기운을 받으면 기대하는 소식이 올 거야.


코골이 소리도 들릴 것만 같은 벽 하나를 두고 그 남자가 내 옆 방에 자고 있다. 덕질하는 사람을 공감 못하던 내가 그의 아부지가 운영하는 민박에 예약을 하고 그가 자고 있는 옆 방에 누워있다니,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그의 집에 오기 전 들린 월정리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늦은 밤 도착한 민박집. 그의 아부지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그와는 인사도 못 나눈 밤, 허기진 배는 맥주 한 캔으로 달래고 방문 5cm를 열어두고 누웠다. 잠에서 깬 히끄가 문 틈으로 인사해 주길 바라며 말이다. 3일 동안 그가 자는 옆 방에 묵는다. 숨은 제대로 쉬고 잠은 편히 잘 수 있을까!

히끄가 자고 있는 옆방에서 첫날밤 저녁 메뉴

사실 오늘은 마음의 피로가 가득 찬 날이다. 히끄를 만나러 오기 전, 월정리로 향했다가 아픈 고양이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한쪽 눈이 돌출된 채로 벽에 부딪히는 6개월령 고양이를 마주했다. 형제 고양이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홀로 다니는 아이. 함께 발견한 책다방 사장님이 동물병원 원장님께 아이 사진을 보내고 상태를 설명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은 ”그대로 두면 생명에 지장이 될 수 있어요.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어요.“ 였다.

해는 기울고 진료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구조해야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수술 이후 회복해서 길로 다시 보내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경과가 좋지 않다면 누군가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제주에서 사는 사람이 아닌 내가 책임감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수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귓가에 맴돌고, 우리에겐 오래 생각하고 결정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 오면 야간 수술을 해줄 수 있다 ‘는 병원 측 이야기에 위급한 아이를 두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우선 아이부터 살리고 보자!'

어린 고양이라도 길에서 사는 고양이를 잡는 것은 쉽지가 않은데, 한쪽 눈이 불편한 탓에 우리에게 잡히는 데에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우리 품에 온 고양이는 시내 병원에 입원시켰다.


히끄를 만날 생각에 설레며 공항에 내렸는데, 첫날부터 다친 고양이를 만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픈 고양이를 만나면 먹이려고 캐리어에 영양제와 항생제를 담아 왔지만 고양이 구조는 계획에 없던 일이다. 고민 끝에 수술을 결정했으니 잘 회복해서 건강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히끄 아부지께 ’ 입실이 늦어지는 이유‘를 구구절절 적어 메시지를 보내고, 내비게이션에 히끄네 집 주소를 입력했다. 그제야 오늘의 목적지가 ’ 히끄네 집’이었다는 사실에 긴장감은 설렘으로 바뀌고 있었다. 미숙한 운전 실력이라 해 지기 전에 도착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밤길 운전을 하게 됐다. 시내에서 성산까지 한 시간 넘는 거리, 늦은 밤 도로에는 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 적막함은 다시 긴장을 고조시키고 심장이 두근 됐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안전하게 도착, 사진과 책 속에서 만난 민트색 대문 ‘히끄네 집’ 이 눈앞에 있다.


늦은 밤에 도착한 터라 히끄 아부지와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입실 안내를 받고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 아침에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이곳에 왔다. 히끄는 만나지 못했지만, 옆 방에 있다는 것만으로 긴장이 풀리고 행복하다. 설레고 떨렸던 첫날밤이 아쉽게 지나갔다.


2016년도 캣맘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엽서에 스파이처럼 숨겨두었던 우주대스타 히끄, 그 남자가 내 옆 방에서 자고 있다.

2016년 콜라보로 그렸던 크리스마스 엽서 그림에 '히끄'가 있다.

“히끄야, 잘 자. 자고 일어나서 굿모닝 인사하자옹! 내 꿈 꾸라옹.”



히끄네 집 거실 창에는 히끄를,  하늘엔 치즈 고양이 별을 심었다.

구조한 고양이는 수술받고 퇴원해서 하루를 못 넘기고 ‘별'이 됐다.

안타까운 생명 앞에서 우리가 한 결정은 눈물로 남았다. 제주 하늘에 또 하나의 별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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