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인생, 알 수 없는 묘생
(이전글) '우주 대스타' 만나고 올게
우주의 기운을 받으면 기대하는 소식이 올 거야.
코골이 소리까지 들릴 듯한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고양이가 내 옆방에서 자고 있다.
덕질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민박에 예약을 하고, 지금 그가 자고 있는 방 옆에서 맥주 한 캔을 따고 있다니.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다.
첫날밤의 저녁 메뉴는 황태포, 맥주, 그리고 고양이 책 한 권. 고양이 구조로 엉켜버린 마음을 달래려 펼쳐든 책은 민박 주인장이 건네준 것이었다. 고양이들과 함께한 하루하루가 담긴 이야기들은 잔잔하게 스며들며, 묵직한 하루의 감정을 천천히 가라앉혀주었다. 낯선 방, 익숙한 긴장,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고양이.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설레는 밤이었다.
성산에 있는 민박집으로 가기 전, 월정리에 잠시 들렀다. 전시를 인연 삼아 알게 된 책다방과 언니옷장 언니들, 그리고 마당에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날, 그 골목에서 뜻밖의 고양이와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여섯 달 남짓 되어 보이는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 아래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한쪽 눈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올라 튀어나올 듯했고, 눈가엔 검붉게 곪은 상처가 번져 있었다. 작은 몸이 벽에 기댄 채, 움직일 때마다 휘청이며 벽에 부딪혔다.
고양이는 형제들과 같은 무리에 있었지만, 늘 한 발짝쯤 떨어져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골목 안쪽으로 움직이자 뒤늦게 따라가려 몇 걸음 내디뎠지만, 담벼락 앞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 짧은 거리조차 버거운 듯 비틀거리던 걸음. 반대쪽 눈마저 흐릿한지, 주위를 더듬듯 고개를 자꾸 기울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곁을 스쳐 지나가는 형제들과 어미의 발걸음이 문득 서늘하게 느껴졌다. 돌아보는 이 하나 없이 저만치 멀어지는 풍경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하지만 곧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무심함은 외면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책다방 사장님은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니는 동물병원 원장님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곧이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
“그대로 두면 생명에 지장이 있어요.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어요.”
해는 이미 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고, 병원 진료 마감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은 초조해졌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수술이 잘 끝나 회복된다면, 이 작은 아이는 다시 형제들 곁으로 돌아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이 아이의 마지막 곁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더구나 나는 이 섬의 주민도 아니고, 끝까지 함께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한 생명을 품에 안는다는 건, 단지 병원에 데려가는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병원에서 "지금 오면 야간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을 듣는 순간, 주저하던 마음이 조용히 방향을 정했다. 책다방과 언니옷장 언니들과도 의견을 나눴고, 결론은 단순했다.
"우선, 아이부터 살리고 보자." 그 한마디에 마음이 모였고, 우리는 곧장 움직이기로 했다.
우리가 다가가자, 아이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고 구석으로 달아났다. 피할 곳을 찾아 허둥댔지만, 시야가 불편해 그 짧은 추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심스레 담요를 펼쳐 아이의 몸을 감싸 안고, 준비해 둔 이동장 안으로 옮겼다. 곧장 시내 병원으로 향했다. 퇴근길 정체로 도착은 더 늦어졌고, 병원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뒤였다.
기다려준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아이는 곧바로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오른쪽 눈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왼쪽 눈이라도 시야를 되찾을 수 있다면, 다시 형제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말했다.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
마취가 시작되고, 아이가 수술대에 조용히 누워 있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문을 나섰다. 낯선 병원에 아이를 홀로 남기고 돌아서는 길,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차올랐다. 한쪽 눈이라도 다시 밝아져서, 가족 곁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를. 형제들과 뛰놀 수 있는 평범한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 있기를. 오늘의 결정이, 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이었기를. 그렇게 믿고 싶었다.
처음부터 계획에 없던 구조였다. 하지만 그날, 마음은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분명했다. 그 짧은 인연을 오래도록 후회하지 않기를, 부디 그 아이가 기억하는 마지막 온기가 따뜻하기를 바랐다.
히끄 아부지께는 늦은 입실 사유를 길게 적은 메시지를 보내고, 내비게이션에 히끄네 집 주소를 입력했다.
그제야 오늘의 목적지가 이곳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마음에 와닿았고, 무거웠던 긴장감은 조금씩 설렘으로 바뀌고 있었다.
시내에서 성산까지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 늦은 밤, 어둠 속을 달리는 차는 드물었고, 조용한 도로 위에서 내 마음만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도착한 민트색 대문. 사진 속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민박집 너머로, 히끄의 집이 눈앞에 펼쳐졌다. 예상보다 훨씬 늦은 밤에 도착한 ‘히끄네 집’.
그곳에 오기 전, 월정리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며 마음은 깊이 뒤엉켜 있었다. 히끄 아부지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향했지만, 히끄와는 아직 눈도 마주치지 못한 상태였다. 히끄의 보호자는 스스로를 ‘아부지’라 부른다. 엄마의 자리는 고양이 엄마에게 남겨두고, 자신은 든든한 ‘사람 아부지’가 되어주기로 했다고 했다.
허기진 배는 맥주 한 캔으로 달래고, 혹시 히끄가 문틈 사이로 모습을 비출까 싶어 방문을 5센티쯤 열어 두었다.
그렇게 3일, 그의 숨소리를 벽 하나 너머에 두고 머물 예정이다. 숨은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잠은 편히 잘 수 있을까.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낯선 밤,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입실 안내를 받고 방에 들어온 뒤에도, 마음은 아직 도착하지 못한 듯 몽글거렸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아침 비행기를 탔건만, 고양이 구조로 모든 감정이 뒤섞였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곳에 도착했다.
히끄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바로 옆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생각에 잠겼다. 2016년 크리스마스 엽서 그림 속에, 스파이처럼 조심스레 사심을 담아 숨겨 두었던 고양이. 히끄 옆에 나도 몰래 들어가 있었다. 덕질이라는 세계를 전혀 몰랐던 내가, 어느새 마음 깊은 곳을 흔들리게 된 고양이. 그 이름도 빛나는 ‘우주 대스타’ 히끄. 그 남자가 지금, 바로 내 옆방에서 자고 있다.
“히끄야, 잘 자. 자고 일어나서 굿모닝 인사하자옹! 내 꿈 꾸라옹.”
혼잣말처럼 작게 속삭이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을 살짝 열어 두었다. 문 안쪽 바닥엔, 히끄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해 온 물고기 인형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설마 정말 오려나, 기대 반 장난 반 마음으로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다. 그렇게 문틈 사이로 불어올지도 모를 하얀 기척을 기다리며, 설렘에 휩싸인 채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이른 아침, 고요를 가르며 낯선 기척이 천천히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잠결에 눈을 뜬 순간, 문틈 사이로 하얗고 도톰한 앞발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히끄였다.
그 발은 물고기 인형 앞에서 잠시 멈췄다. 인형 냄새를 킁킁 맡더니, 앞발로 툭툭 두어 번 장난스럽게 건드렸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고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너무나 히끄다운, 시크한 퇴장. 나는 숨을 죽인 채 뒤따라 나갔다. 그는 이미 거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밤새 쌓인 감정들을 단번에 무장 해제시키는 등줄기. 부드러운 햇살이 히끄의 하얀 털에 내려앉고 있었다.
창밖, 마당에는 줄무줄무가 와 있었다. 길 위에서 함께 지냈던 히끄의 친구. 히끄는 조용히 창문에 앞발을 올리고 일어섰다. 둘의 눈이 마주쳤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인사가 오갔다. 그 고요하고 깊은 교감의 시간에 나도 천천히 다가가, 히끄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들과 함께 창밖을 바라보며, 줄무줄무에게 마음속으로 눈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화면 속에서만 보던 히끄가 지금,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 작은 발은 인형 냄새를 맡더니 앞발로 몇 번 툭툭 건드렸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휙 돌려 방 밖으로 나갔다. 조용히 따라 나서자, 히끄는 거실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끄네 마당에는 종종 동네 고양이들이 들러 밥을 먹고, 볕을 쬐고,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곤 한다. 오늘은 히끄가 길 위에서 지낼 때 친구였던 줄무줄무가 마당에 와 있었다. 반가웠는지 히끄는 앞발로 창문을 짚고 일어서서, 줄무줄무와 눈을 맞추며 조용히 인사를 나누었다. 마당 고양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히끄의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일상이었다.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나도 조심스레 히끄 옆에 앉아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줄무줄무에게 마음속으로 눈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히끄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햇살에 은은하게 물든 그 눈빛이, 조용히 내 마음을 건드렸다.
“히끄야, 안녕. 보고 싶었어.”
꿈결처럼 마주한 첫 인사는 말랑했고, 조용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화면 속에서만 보던 그 아이는 생각보다 작았고, 눈빛은 상상보다 훨씬 더 시크했다. 하얀 털옷을 입고 거친 길 위의 시간을 지나온 고양이답게, 말 없이 단단한 기운이 고요히 풍겨 나왔다.
이제는 아부지 곁에서 평생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 삶의 자리로 스스로를 옮겨온 고양이의 당당함이, 뭉클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마음 한쪽에선 “히끄야, 나 너 진짜 좋아했어!”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히끄에게 나는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낯선 손님일 뿐이다. 괜한 호들갑으로 그의 세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팬심은 가만히 접어두었다. 이른 아침에 나가고, 저녁이면 조용히 돌아오는 여행자처럼,
그저 히끄의 하루에 천천히, 조심스레 스며드는 3박 4일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전날 구조한 고양이는 수술을 마치고 퇴원했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별’이 되었다.
짧은 인연, 너무도 짧은 생.
하지만 그 하루의 따뜻한 품이, 그 아이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기를 바란다.
제주의 하늘 아래, 우리는 또 하나의 별을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