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의해 사라지고, 사람 덕분에 살아가는 생명들
(이전 글) 그 많던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섬의 하늘은 오늘도 회색빛으로 흐리고 있다. “비를 몰고 다닌다”는 제주 하늘에 관한 말이 오늘따라 더욱 실감 난다. 포구의 고양이들이 걱정되어 육지에서 날아온 이방인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그저 무심하게 낮게 깔려 있다.
전날, 마을 어르신께 들은 이야기는 마치 잔혹한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마당에서 함께 살던 고양이 네 마리가 마을에 뿌려진 약을 먹고 별이 되었고, 간신히 한 마리만 병원 치료로 살아났다는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두 달 전, 어르신 댁 바로 앞 포구에서 만났던 많은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사라진 이유가 그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날 밤은 불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새벽녘, 악몽을 꾸고 눈을 떴다. 창밖에는 어슴푸레 푸른빛이 번져 있었다. ‘지금쯤이면 고양이들이 활동할 시간일지도 몰라.’ 부랴부랴 눈곱만 떼고 차에 올라 포구로 향했다. 10분 남짓한 길을 달리는 동안, 방파제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혹시라도 그 아이들 중 누군가가 희생된 건 아닐까. 간절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은 꼭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날의 약속, 지킬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처럼 되뇌며 방파제에 도착하니, 하늘은 금세 비를 쏟을 듯 먹구름으로 가득했고, 전날 내린 비 탓에 수면은 높아져 있었다. 적막한 포구, 사람은 나뿐이었다. 고양이들이 나올 리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료통을 들고 나섰다.
두 달 전, 이곳에서 젖이 불어 있던 어미 고양이 넷과 6개월령쯤 되어 보이던 어린 고양이 열 마리 남짓을 만났었다. 포구 앞에 사시던 할머니가 방파제 끝에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들이 있다고 알려주셨던 것도 기억났다. 그 말을 떠올리며 방파제 끝까지 사료통을 흔들며 고양이들을 불러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인기척도 없었다.
‘정말 모두 희생된 걸까…’ 가슴 한켠이 텅 빈 듯한 참담한 마음으로 방파제를 바라보는데, 저 멀리 노랑과 흰색이 섞인 고양이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바닷물은 찰랑찰랑 방파제를 타고 오르는데, 그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야옹아, 야옹아—” 아무 반응도 없는 그 모습에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었다. 머릿속은 이미 불길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그때, 어제 만났던 치즈 고양이의 해맑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불쑥 솟는 눈물을 꾹 눌러 참고, 더 크게 소리쳤다. “야옹아— 야옹아—!” 떨리는 손으로 포구 인근에 사는 제주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보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그가 곧 달려오겠다고 말하는 순간, 관광객처럼 보이는 두 남성이 방파제 위를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어제의 치즈 고양이가 총총총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나, 나 불렀냐옹?” 그 해맑은 얼굴. 믿기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방파제를 다시 보니, 꼼짝 않던 그 고양이가 바로 이 치즈 고양이였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도 괜히 투정이 먼저 나왔다. “너 왜 거기 누워 있었어? 위험한 줄도 모르고!”
그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오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른 고양이들도 이 해맑은 녀석처럼 어디선가 몸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사료통을 들고 다시 포구 구석구석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마을을 돌고, 방파제로 돌아왔을 때, 하늘은 어느새 구름 사이로 푸른빛을 드러냈고, 바람도 잦아들고 있었다.
저 멀리 포구 끝, 낚시꾼 한 사람이 보였다. 그 뒤편에서 삼색 무늬의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스레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 곁에는, 아슬아슬한 위치에 아기 고양이 하나가 바짝 붙어 있었다. 모녀임이 분명했다. ‘두 달 전, 할머니가 말한 손바닥만 한 아기가 바로 너였구나! 그리고 이 고양이가… 네 엄마구나!’
걱정했던 어미 고양이 넷 중 하나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에 기쁨이 복받쳤지만, 아기가 둘이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라 ‘한 마리는 결국 못 살린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떻게 이런 험한 환경 속에서 새끼를 키워냈을까. 바람과 파도를 견디며 살아낸 이 어미 고양이는 참으로 위대했다.
낚시꾼은 작은 물고기를 잡아 어미 고양이에게 던져주었다. 어미는 재빨리 그것을 물고 아기에게로 달려갔다. 아기는 능숙하게 물고기를 뜯었다. 이 모습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어미는 물고기를 다 먹인 뒤, 등을 돌려 낚시꾼을 향해 또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뒤, 두 번째 물고기가 날아왔고, 또다시 아기 고양이의 입으로 들어갔다. 어미 고양이는 다시 물고기를 물고 아기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그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방파제 위에 조심스레 올라선 치즈 무늬 아기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아기 고양이 둘을 모두 살렸구나!’라는 생각에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두 번째 물고기 역시 삼색 아기 고양이의 차지가 되었지만, 치즈 아기 고양이는 어미의 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직은 생선보다 엄마 젖이 더 좋은 나이. 그렇게 꼭 붙어 있는 모습이 오히려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드디어 세 번째. 이번엔 어미 고양이가 그것을 입에 물고는 자신을 위해 조용히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아기들 배는 채웠으니, 이제야 너도 먹는구나…’
사진첩을 뒤적이던 나는 두 달 전, 이 어미 고양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견했다. 수척하고 지친 눈빛 속에도, 자식을 지키려는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때 어미 고양이가 걸어갔던 방향은 오늘 이 아기들과 재회한 바로 그곳이었다.
‘어미야, 아기 둘을 살려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앞으로도 무사히,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그리고… 너희를 도울 수 있는 방법, 꼭 찾아볼게. 우리, 또 만나자.’
<다음 글> 방파제의 어린 고양이들은 봄을 맞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