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사라지면 행복해질까?
(이전 글) 엄마는 배고픔을 잊고 산다.
지난 제주 여정의 마지막 날, 젖이 불어 있는 어미고양이 넷을 만났다. 새끼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어미 고양이들은 결막염을 동반한 허피스에 감염된 듯 보였다. 태풍이 지나가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환경 속에서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했는지, 그들의 배는 홀쭉했다. 만약 며칠만 더 제주에 머물 수 있었다면, 고영양 식사를 준비해 주었을 텐데, 서울로 돌아가는 날에 만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어미고양이와 아기고양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져, 다시 제주도를 방문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임시보호 중인 유기묘 이쁜이가 평생 가족을 찾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비행기 티켓을 끊을 준비를 하고 말이다.
빌라에서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이쁜이를 구조한 지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임시보호 기간이 길어지면서, 임시 보호를 맡아준 진주 씨는 예정된 한 달 일정의 미국 여행을 떠났고, 나는 다시 진주 씨 집에 머물며 이쁜이의 임시보호자가 되었다.
임신한 몸으로 우리에게 온 이쁜이는 아기 여덟을 출산했고, 진주 씨와 나는 아기들이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탯줄을 자르고 태반 정리를 도왔다. 출산과 산후조리, 육아를 함께 하면서 우리는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두 달 전에는 아기 고양이들이 함께 있어 집 안의 공기가 활기찼다. 그러나 아기들이 입양을 가고 진주 씨까지 떠난 집에 엄마 이쁜이만 남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이쁜이는 아기 여덟을 낳으며 새로운 가족을 형성했지만, 태어난 지 보름 안에 아기 다섯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남은 세 아기까지 입양을 보내며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쁜이도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성묘인 엄마 고양이를 입양하겠다는 문의는 거의 없었다. 나는 가족을 두 번이나 잃은 이쁜이가 안쓰러웠다.
단 둘이 보내는 한 달 동안 아팠던 기억은 지우고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주고 싶었다. 매일 밤 품에 안고 ‘너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고양이야’라고 속삭였다. 영양 좋은 사료를 선별해 먹이고, 놀이를 좋아하는 이쁜이가 지칠 때까지 매일 다른 사냥감으로 놀이 시간을 가졌다. 복층인 진주 씨 집에서 놀아주다 보면 헉헉대고 뻗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피곤한 것은 나뿐이었다. 피곤해도 아침저녁으로 이 시간을 갖는 건 언젠가 그리워할 순간이 될 것이고, 이쁜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갚고 싶었다.
약속한 임시보호 기간이 끝나 불안한 마음이 커져갈 무렵, 이쁜이에게도 가족과의 연이 닿았다. 사람 손길을 좋아하는 고양이라서 가족 구성원이 많기를 바랐는데, 엄마와 언니 둘, 오빠가 있는 다복한 가정을 만났다. 이제 이쁜이는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다시는 ‘이별’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 가족의 '생과 사'를 지켜보면서 나는 어미 고양이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방파제에서 젖이 불은 어미 고양이들을 만났을 때 연민을 느꼈고, 열악한 환경에서 새끼를 키우는 어미 고양이들을 돕고 싶었다.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걱정의 무게가 한순간에 사라지자, 고대했던 방파제 고양이들을 만날 준비를 시작했다. 제주행 티켓을 예약하고, 고양이들에게 나눠줄 사료와 습식 캔, 닭고기, 영양제와 상비약, 장난감과 마따따비까지 넉넉하게 주문했다. 이번에는 고양이들에게 나눌 식량을 아쉬움 없이 나누고자 캐리어에 가득 채웠다.
그 많던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두 달 전 나는 방파제에서 4~5개월령 어린 고양이 10여 마리와 젖이 불어 있는 어미 고양이 네 마리를 만났다. 동네 어르신이 전해 준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들도 방파제 앞쪽에 있었다. 단 이틀, 몇 시간 동안 만난 고양이만 15마리가 넘으니, 더 많은 고양이가 방파제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만난 고양이 친구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공항에서 바로 방파제로 향했다.
'나를 에워싸고 누워서 가방을 털었던 고양이들은 나를 기억해 줄까? 형제 같았던 어린 고양이들은 얼마나 컸을까? 엄마 고양이들은 아기고양이들을 잘 지켜냈을까?'
서둘러 주차하고 고양이들을 위해 준비한 가방을 챙겼다. 내리려는 순간, 느껴지는 시선에 창밖을 내다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마중 나와 있었다. 밥 배달 누나가 오는 걸 알고 기다린 것처럼 치즈 고양이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몸의 크기를 보니 7개월쯤 되어 보인다. 지난번 내 가방을 털었던 어린 고양이들이 컸다면, 그중 한 마리일 거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쭈그리고 앉아 눈 깜박임으로 인사를 전한다.
"안녕? 잘 있었어? 누나 기억하냐옹? 형제들은 어디 있어?"
대답은 기대하지 안 했지만, 당장 뭐라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눈빛에 쫄려 가방에서 닭고기 하나를 꺼내 먹기 좋게 찢어서 내어주었다. 먹을 것을 꺼냈으니 형제들이 나타날 텐데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질 않았다. 다른 고양이들을 만나기 위해 치즈 고양이를 두고 방파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린 잠시 후에 다시 만나자옹.”
흐린 날씨라 그런지 방파제에 주차된 차는 내 렌터카뿐이었다. 오후 5시, 이 시간에 사람이 안 보이는 건 그럴 수 있지만, 그 많던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고양이들의 활동 시간이라 몇 마리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적막한 방파제에는 치즈고양이와 나만 머물고 있었다.
마을 안으로 영역을 옮겼을 수도 있고, 산책을 갔을 수도 있으니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는 집이 있다면 그곳에 모여 파티를 하고 있겠지 라는 희망을 품고 고양이들을 찾아 나섰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던 고양이들은 마을 안길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방파제 쪽으로 나오는 길이었는데, 초록 지붕 집 담벼락에 예쁜 삼색 고양이가 포구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안녕! 우리 구면이냐옹?"
"우린 처음 보는 거 같다냥. 여긴 우리집이라옹." 자연스럽게 담을 넘은 삼색고양이의 대답이 들리는 듯했다.
담이 낮아서 마당이 내려다 보였고, 정말 이 집 고양이인양 마당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나타난 어르신 한 분이 "누구? 고양이 보러 왔어요?" 물으신다. "안녕하세요? 실례했습니다. 방파제 고양이들 보러 왔다가 고양이가 예뻐서 보고 있었어요. 어르신 댁 고양이인가요?" 물으니 "어떤 고양이요?" 되물으셔서 다시 고개를 돌려 "저 아이요!" 말하려는데, 새로운 고양이들이 등장해 있었다. 모녀로 보이는 삼색 고양이와 젖소 고양이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삼색 무늬가 선명한 고양이는 만나기 어려운데, 예쁜 고양이는 이곳에 모여 있었다.
담을 넘나드는 고양이라면 방파제에서 만난 고양이일 수도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두 달 전 만난 고양이는 이렇게 예쁜 고양이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고양이들이 다 예뻐요. 밥 주시는 고양이들인가요?" 여쭤 보니 "다 우리 집 고양이야. 우리 가족."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을 이으셨다.
"마을에 누가 약을 놓았어. 그 약을 먹고 우리 집 고양이도 넷이 죽었어요. 한 아이만 병원에서 겨우 살렸는데, 방파제 고양이들도 많이 죽었을 거야."
"그게 언제 인가요?
"두 달 전쯤일 거야."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두 달 전이라면, 내가 만난 고양이들 중 별이 된 친구들이 있는 걸까?
믿기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어린 고양이 친구들에게 약속했었다. 다음에 올 때는 맛있는 간식을 가득 들고 오겠다고.
"친구들아 어디 갔냐옹? 가방 털어야지! 이번엔 큰 가방을 들고 왔다냥."
(다음 글) 엄마는 생선 배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