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망 Mar 18. 2024

처음 만난 사이지만, 가방 좀 털겠소.

고양이가 가자미 눈을 뜬다면, 꼼짝마라냥.

설렘의 대가

SNS를 통해 마주친 한 장의 사진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사진 속에는 은은하게 퍼져가는 핑크빛 노을 아래, 우아하게 걸어오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름다운 장면에 반해 당장이라도 그 장소를 찾아가고 싶을 만큼 마음이 설렜다. 경계심 많은 눈빛으로 조심스레 살아가는 동네고양이들과 달리, 사람을 향해 당당히 걸어오는 사진 속 고양이들의 모습은 내게 큰 영감을 안겨주었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고양이 히끄네 민박집에서의 꿈같은 2박 3일이 우중충한 날씨 속에 흘러갔다. 민밥집 도련님으로 만난 히끄는 상상했던 그대로의 시크한 매력으로 더 반하게 만들었다. 아침, 저녁,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조차도 나에게는 충분히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연히 발견한 그 사진 속 고양이들의 모습은 나의 설렘을 배가시켰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폭풍우와 비바람은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강하게 몰아쳤고, 이는 사진 속 고양이들의 안위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날이 개었다. 들리기로 한 장소가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포구로 향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방파제 주소를 입력하고, 포구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해가 쨍쨍 비추는 오후 1시, 방파제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이 시간은 사람도 고양이도 발걸음을 멈추고 나른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고양이를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작은 희망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방파제 입구에 차를 주차하려는 순간, 저 멀리 하얀 생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였다. 서둘러 차를 주차하고, 고양이 식량 가방을 메고 방파제로 향했다. 평소 같았다면, 한여름 오후의 고양이들은 시원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 그러나 그늘 하나 없는 방파제 위에서, 하얀 털옷을 입은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이제 4개월쯤 되어 보이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 두 마리와 얼룩무늬 고양이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고등어 고양이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는, 어슬렁어슬렁 걸음으로 다가온다.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내 주변을 돌며, 세심하게 냄새를 맡는다. 나의 작은 움직임에 놀랄까 봐 가만히 기다려줬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면서 말이다. 내가 조심스레 자리를 잡자, 어린 고양이들도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주위를 살핀다. 헤치지 않을 좋은 사람으로 합격을 받은 눈치다.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가 앉아 사진을 찍자 어린 고양이들이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온다.


“왜 낯선 사람한테 다가오는 거냥? 배가 고픈 거냐옹?”

“먹을 것 좀 갖고 왔냥? 냄새가 난다냥!”


사람이 반가웠던 걸까? 고양이들의 마중이 설레면서도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평화롭게 누워있던 하얀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눈은 감은 채로 오로지 코만이 열심히 움직인다. 그 순간, 나는 이 고양이가 시력을 잃은 어미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며칠간 지속된 집중호우로 사람의 방문이 뜸했을 방파제였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 가방을 메고 온 사람이 반가웠을 고양이들. 이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서둘러 가방에서 사료와 닭고기를 꺼다. 네 마리의 고양이가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 있도록 골고루 담아냈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밥그릇만 바라보는 아이들 모습에 마음이 바빴다. 냄새를 맡은 한 아이가 ‘이야옹~’하며 울자, 순식간에 뒤에 숨어 있던 다른 고양이들도 '이야옹~ 야옹' 하며 합창을 시작했다. 재촉하는 ‘야옹’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처음 네 마리였던 고양이는 열 마리로 늘어 있었다. 마치 요정이 마술을 부린  것처럼 말이다. 네 마리면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식량은 이제는 열 마리와 나눠야 한다는 사실에 잠시 당황했다. 어떻게 이 작은 양을 골고루 나눠줄까 고민하는 사이, 나는 이미 야옹 합창단에 의해 포위된 상태였다.


서열 높은 고양이들이 먼저 달려들어 습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먹지 못한 아이들을 주려고 닭고기를 찢고 있었는데, 이미 배를 채운 아이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린 고양이가 다가오려 하면, 서열이 높은 고양이가 하악질로 쫓아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줄 서라옹! 사이좋게 먹어야지!”라고 외쳐봐도 소용없다. 거리를 두고 놔줘도 서열 낮은 고양이들은 먹이 경쟁에 뛰어들지 못했다.


열 마리 고양이를 골고루 먹일 작전이 필요한 순간, 서열 높은 고양이들과 눈치 싸움을 해야 다. 고양이 무리가 있던 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먹이를 놓 서열 높은 고양이들이 달려들어 먹도록 유인했다. 그러고 나서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아직 먹지 못한 고양이들을 먹였다. 먼저 먹은 아이들이 돌아오려고 하면 다시 유인하고, 먹지 못하고 뒤처진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서 놔줬다. 어느 정도 작전에 성공한  보였지만, 여전히 충분히 먹지 못한 고양이들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가방 속의 모든 식량을 나눈 터라, 더 나누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 때, 태어난 지 5개월 정도로 보이는 카오스 고양이가 흰 고양이에게 다가가 젖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형제로 보이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도 같은 자리를 차지하며 젖을 빨았다. 아이들의 어미였나 보다. 젖을 뗄 시기가 이미 지났음에도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에서, 시력까지 잃은 어미가 이 험난한 환경에서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쓰고 있을지 안쓰러웠다.

어미 고양이가 잠시라도 육묘의 힘든 시간을 잊고 행복한 순간을 보내길 바라며, ‘마따따비’를 선물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은 후 "이게 뭐냐옹?"이라는 표정으로 발로 툭 치는 듯했지만, 마음에 들었는지 누워서 물고 빨고 뒹굴뒹굴했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어미 고양이가 조금이나마 힘든 육묘를 잊기를 바랐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린 고양이들이 가방 안에 서로 머리를 넣으려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얘들아, 이미 다 털린 가방이라옹. 까까는 없다냥!” 비록 가방 안에서 건진 것은 없었지만 맛있는 냄새가 나는 가방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꼬맹이들은 이젠 서로 가방을 차지하겠다고 난리다. 가방 하나를 두고 에워싸고 있는 그들을 보니, 귀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에 ‘내일은 더 많이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가방 위에 올라탄 꼬맹이들의 모습은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마냥 귀여웠다.

그제야 아이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쭈그려 앉았던 그때, 예상치 못한 관경이 펼쳐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당한 거리를 두던 꼬맹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뭐지?’ 하던 순간, 놀랍게도 내 그림자를 그늘로 삼아 눕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맛있는 먹이를 내어준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어미에게 교육이라도 받았나 보다. 쭈그리고 앉는 자세는 불편했지만,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온 꼬맹이들을 차마 뿌리치고 일어날 수 없었다. 이런 뜻밖의 인기는 사라지기 전에 누려야 하니까!


꼬맹이들의 배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으니, ‘그늘 막이라도 되어줘야겠구나’ 해서 땅바닥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내 움직임에 놀라서 도망갈 꼬마가 한 둘은 있겠지 생각했는데, 오히려 좋다는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눕는 고양이들이다. 다리 아래로 자리를 잡은 삼색 고양이, 왼쪽 엉덩이에 바짝 붙어 누운 고등어 무의 고양이 둘, 오른쪽 엉덩이에는 치즈 고양이가 기대어 누웠다. 그 주변으로 카오스와 치즈, 가방 위에 앉아 있던 꼬맹이들까지 모여들어 다리를 뻗고 함께 누웠다.

태양은 살을 태울 듯이 내리쬐었고, 내 피부는 점점 발갛게 익어 갔다. 하필 반바지를 입고 나온 데다, 고양이의 따뜻한 체온까지 더해져 마치 에어프라이어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돌바닥 때문에 엉덩이는 점점 아파오고, 땀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다리가 저려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자세를 고치려고 하자, 고양이들이 단체로 가자미 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어마나 강렬하던지, 꼬마 고양이도 도끼눈을 뜨는 것을 경험한 순간이다.


이때다 싶어, 기대어 누운 아이를 슬쩍 밀어 보았다. 꼬맹이는 잠시 흠칫 놀라는 듯했지만, 곧 꼬리를 탁탁 치며 감정 표현을 했다.

“하아악~ 움직이지 마라옹. 내 몸에 손도 대지 마라냥!”

보통은 이러면 도망가기 마련인데, 정말 귀엽게도 다시 제 자리에 살을 붙이고 누웠다. 이 꼬맹이들 눈에도 어지간히 만만하게 보였나 보다. 맛있는 간식을 받쳤으니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겠지.

“언니 뜨겁다냥!” 하소연을 해봐도, 고양이들은 그저 ‘사과는 받아주겠다’는 눈빛만 보내고는 내 그림자 안에서 편안히 잠을 청했다.

“그래! 언니가 태양에 익어 홍당무가 되더라도, 너희 그늘이 되어줄게. 쉬고 싶은 만큼 내 곁에서 자고 가라옹. 그런데 내 다리에 난 쥐는 너희가 잡아줄 수 없는 거냐옹?”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대담하게 행동하는 방파제 고양이들과의 첫 만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제주 섬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함께, 섬 고양이들의 자유롭고도 사랑스러운 모습은 그들만의 작은 천국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거센 바람과 파도에 맞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힘겨운 삶 속으로 들어가 보기 전까지 말이다.


*마따따비 :   개다래나무의 가지 부분. 캣닢과 비슷하게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향을 가지고 있어 진정과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네이버 사전)



(다음글) 엄마는 배고픔을 잊고 산다.

엄마의 고군분투: 고양이에게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옆 방에 '우주 대스타'가 자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