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의 어린 고양이들은 봄을 맞이했을까?

살아있기를 바랐고, 무사하길 기다렸다

by 할망

(이전 글) 방파제 고양이로 살아남기


다음 날, 두 달 전 방파제에서 만났던 네 마리의 어미 고양이 중 두 번째 어미 고양이를 다시 마주쳤다. '살아 있었구나! 아기들도 무사했을까?' 마음 한켠에는 안도감과 함께 걱정이 가득 피어올랐다.

두 달 만에 다시 만난 어미, 봄바람보다 먼저 마음이 흔들렸다.


마을에서 약을 먹고 희생된 고양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라, 어미 고양이에게 새끼들의 안부를 묻기조차 망설여졌다.

차에서 사료 그릇을 꺼내야 했지만, 그 사이 어미가 자리를 뜰까 봐 주머니 속 비닐봉지를 급히 꺼내 사료를 부어주었다. 어미 고양이의 배를 살펴보려 고개를 숙이는 순간, 그녀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어서, 먹으렴.” 속삭이듯 말을 건네며 나는 다시 시선을 그녀의 배로 돌렸다. 그녀가 다 먹고 일어설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축 늘어진 배를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혹시 젖이 불어 있어서 그런 걸까 싶어 자세히 살펴보려 했지만, 고양이가 몸을 바짝 웅크리고 있어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만약 젖이 불어 있다면, 이제 두 달쯤 된 새끼 고양이 몇 마리는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마음 한켠에 조심스레 자리잡았고, 아이들을 꼭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미 고양이가 사료를 먹고 있는 그때, 저 멀리 방파제에서 익숙한 모습이 다가왔다. 전날 방파제 위에 아슬아슬하게 누워 있던 치즈 고양이였다. 어미 고양이의 사료를 빼앗을까 걱정돼 그릇을 하나 더 꺼내 치즈 고양이 앞으로 내밀었다. ‘오늘 첫 끼였던 걸까?’ 사료를 보자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배가 많이 고픈 듯해 닭고기를 먹기 좋게 찢어주니 그것도 허겁지겁 해치웠다. 홀쭉한 배를 보니 밤새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게 느껴져 안쓰러웠다. 한 덩이를 더 건네주었다. 한 끼라도 든든히 먹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늘도 방파제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치즈고양이


치즈 고양이에게 마음이 쏠려 어미 고양이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아차 싶었다. 어미 고양이의 새끼들이 무사한지 너무도 궁금했는데, 끝내 놓치고 말았다.


방파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전날 낚시꾼 옆에서 생선을 얻어먹던 삼색 고양이 가족이 있던 방파제 끝까지 걸어갔다. 등대 기둥을 돌자, 어김없이 삼색 고양이 어미가 보였다. 그녀는 큰 물고기를 앞에 두고 잠시 먹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물고기에게 미안한 걸까?' 내 눈엔 그렇게 보였지만, 방파제에서 살아가는 어미 고양이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소중한 생존의 자원일 뿐이었다.


잠시 후, 어미 고양이는 앞발로 물고기를 요리조리 굴리더니 입을 벌려 크게 한입을 베어 물었다. 미안함이란 감정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새끼 둘을 키워내야 하는 어미의 생존은 그 어떤 감정보다 앞선다. 물살이 잔잔해 낚시 성공률이 높은 날이라 그런지, 큰 물고기를 선뜻 내어주는 아저씨의 인심도 더욱 넉넉해 보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큼직한 물고기를 선물한 아저씨는 정말 천사 같다. 어제도 같은 분이었을까?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과 함께 먹을 것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마음을 읽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아저씨로부터 큰 물고기를 선물받은 어미 고양이
새끼들을 살려내기 위해, 선물받은 물고기를 맛있게 먹는 어미 고양이ㄹ


전날엔 아기 고양이 한 녀석이 던져준 물고기 두 마리를 차지했었는데, 오늘은 어미 고양이만이 조용히 식사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디에 숨었을까. 방파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위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곤히 잠든 두 마리 아기 고양이가 보였다. 햇살을 머금은 털이 반짝이고, 바다도 함께 반짝였다.


잠시 후, 특식을 마친 어미 고양이도 그곳에 합류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아슬아슬한 바닷가 바위 위, 가족이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은 위태롭게도 보였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아기 둘을 무사히 키워낸 어미의 지혜와 힘을 믿는다. 아직 만나지 못한 고양이들의 안부는 여전히 마음에 걸렸지만, 이 평온한 가족을 바라보는 순간, 내 마음에도 조용히 햇살이 스며드는 듯했다.

낚시꾼 아저씨 덕분에 평온하게 잠든 고양이 가족


오후에는 다시 방파제 입구 쪽부터 고양이들을 찾아 나섰다. 아침에 사료를 먹고 사라졌던 어미 고양이는 다시 보이지 않았고, 3일 연속 아침마다 마주친 치즈 고양이는 낚시하는 부자 사이에 앉아 있었다. 마치 감독이라도 되는 듯 정중앙에 앉아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는 그 표정이 무척 진지해 보였다.

“누구든 잡는 물고기는 내 거다냥! 이케이케 던져보라냥! 힘 조절 잘하라옹.” 그런 말이 들리는 듯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도 덩달아 치즈 고양이를 따라 응원했다. “아저씨 파이팅! 형아도 파이팅!”

고양이 감독님 왈, “누구든 잡으라냥! 이번 물고기도 내 거!”


잠시 후, 아저씨가 낚싯대를 들어 올리자 파닥거리며 물고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바닥만 한 작은 물고기는 그대로 치즈 고양이 감독님의 앞에 안착했다. 방파제 낚시꾼의 인심은 여전히 넉넉했다.

실망이잖아! 이따만한 물고기를 기대했다구!
물고가가 작네? 작은 물고기는 바다로 보내줘야 한다냥!

그런데 물고기를 받은 치즈 고양이는 먹지 않고 발로 툭툭 건드리기만 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뚱땅뚱땅… 누나 간식 가방 털러간다냥.


“꼬맹아, 물고기보다 누나가 더 좋은 거야?” 농담처럼 중얼거렸지만, 사실은 아침에 준 닭고기가 더 입맛에 맞았던 게 아닐까. 가방을 털러 오는 것도 그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인기 있는 누나가 된 듯해서.

나중에 낚시꾼 부자에게 들으니, 치즈 고양이에게 다섯 마리나 되는 물고기를 선물했단다. 이미 배가 불러서 마지막 물고기에는 관심이 없어진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고, ‘이 녀석 오늘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구나’ 싶은 생각에 나까지 흐뭇해졌다. 치즈 고양이의 배부름은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사람이 놓은 약에 희생된 고양이들이 있는 반면, 이렇게 사람의 사랑 덕분에 살아가는 고양이를 보게 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낚시꾼들이 작은 생명에게 베푸는 배려에 깊이 감동했고, 세상에는 여전히 따뜻한 마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사진첩을 들춰보니, 지난 9월 방파제 위에서 내 가방을 털던 다섯 달 된 고양이들 중 하나였다. 그땐 앙상하던 아이였는데, 두 달 사이 살도 좀 오르고, 이제는 낚시꾼 뒤에서 응원하며 물고기를 얻어먹을 줄 아는 청소년 고양이로 자라 있었다. 대견하고 반가웠다.

두 달 전 만난 치즈고양이는 또래 고양이들의 무리에 함께 있었다.


그렇게 많던 고양이 가족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제발, 사람 손에 놓인 약에 희생된 것이 아니기를. 만약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면,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을 잘 버텨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방파제를 걷다, 그 아이들과 마주칠 수 있다면. 지난 계절의 기억을 안고, 봄날의 햇살 아래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오늘 이 순간에도, 그날 방파제에서 만났던 어린 고양이들이 무사히 봄을 맞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