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 고양이들과 나눈 작은 신뢰의 순간들
오늘은 사라진 고양이들을 한 마리라도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어제 보았던 수유 중인 듯한 어미 고양이와 그녀의 새끼 고양이까지 마주치기를 기도하며 방파제로 향했다. 지난 여정 동안 방파제 고양이들을 오래 지켜본 덕분에, 이제는 그들이 숨어 있을 만한 은신처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방파제 주변에는 고양이들이 몸을 숨길 만한 곳이 거의 없다. 바람 한 점 피할 수 없는 드넓은 바다 앞, 아이들은 방파제 아래 바위틈 속으로 조심스레 스며들어 살아간다. 그곳은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유일한 피난처이지만, 파도가 거세지는 날이면 차오르는 물살에 삼켜질까 위태롭게만 보인다. 그 안엔 물도, 먹이도 없다. 고요하지만 굶주림만 가득한 바위 속에서, 아이들은 또다시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난 나흘 동안 마주친 고양이는 삼색 어미 고양이 가족과 또 다른 어미 고양이, 그리고 맑음이, 맑음이의 남매로 보이는 삼색 고양이뿐이었다.
불과 두 달 전, 이 방파제 위는 고양이들의 세상이었다. 해 질 무렵이면 바위틈으로 들어가는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방파제 위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거나 사람 곁에 다가와 몸을 부비고는 했다. 다섯 달 남짓 되어 보이는 아기 고양이들만도 열 마리는 족히 되었고, 젖이 불어 있는 어미 고양이도 네 마리나 있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잘 자라주었다면, 지금쯤 이 방파제는 스무 마리 넘는 고양이들로 다시 북적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요한 바닷바람 사이를 아무리 눈으로 훑어봐도, 만날 수 있는 고양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날씨 탓일까, 아니면 내가 몰랐던 무슨 일이 이 섬에서 벌어진 걸까.
특히 어린 고양이들이 많았던 걸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혹시… 마을에 놓였다는 약물의 희생양이 된 건 아닐까. 애써 지우려 했던 걱정이, 다시금 바다 냄새에 섞여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이제 이 방파제의 몇 안 되는 고양이들은 내게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들도 나를 알아보는 걸까. 어딘가에서 나타나 조용히 곁을 내어준다.
방파제 바위 위에 누워 있던 치즈 고양이에게는 ‘맑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 눈에는 아찔하게만 보이는 그 자리에 태연히 누워 있던 모습, 누군가 다가가면 강아지처럼 사뿐히 뛰어오는 그 모습이 너무도 해맑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그날도 방파제 입구에 차를 세우자마자 세찬 바람이 머리칼을 사납게 휘감았다. 손으로 몇 번을 쓸어 넘겨도, 귓가에 꽂아봐도 소용없었다. 결국 다시 차에 올라 고무줄을 찾아 단단히 묶고 외투 단추도 모두 잠갔다. 제주의 11월은 비교적 온화하지만, 바람이 불면 체감 온도는 한겨울처럼 훅 파고든다. 오늘은 그 바람이 유난히 거셌고, 물결은 방파제 바위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이런 날엔 맑음이가 더 걱정이었다.
‘설마 오늘도 그 바위 위에 그대로 있는 건 아니겠지…’
눈길을 돌려 어제 맑음이가 누워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맑음아, 맑음아, 맑음아—!”
내 부름에 눈을 뜬 맑음이는, 마치 무슨 일이냐는 듯 해맑게 달려왔다. 그 순수한 표정에 잠시 웃음이 났지만, 또 한편으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더 거세졌고, 그 작은 몸이 언제 휩쓸릴지 몰라 겁이 났다.
“이 녀석아… 그러다 정말 큰일 나.”
걱정 반, 애정 반의 잔소리를 건네며 사료 그릇을 꺼냈다.
그런데 그 순간, 맑음이는 사료에는 관심도 없이 바닥을 킁킁거리더니, 꼬리를 살짝 치켜세우고는 그 자리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는다. 그리고는 파도 소리 사이로 졸졸—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탁 트인 바다를 향해, 바람을 맞으며, 며칠 전 처음 본 사람 앞에서 여유롭게 볼일을 보다니. 이건… 방파제 고양이만이 누릴 수 있는 ‘1등급 바다뷰 화장실’ 아닌가.
그 순간 피식 웃음이 났지만, 곧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고양이에게 화장실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그들은 반드시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용변을 보고, 자신의 흔적을 감추려 애쓴다. 모래 위에 묻듯, 흔적을 덮는 행동은 본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곳은 시멘트로 굳은 바닥뿐. 맑음이는 그 위에서 아무런 보호도 없이 배설을 했고, 그럼에도 본능처럼 바닥을 조심스레 문질렀다. 그 작은 몸짓이 어쩐지 마음을 아리게 했다. 이 거친 시멘트 바닥을 화장실 삼을 수밖에 없는 고양이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그 순간, 맑음이가 나를 믿고 있다는 느낌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나는 이 작고 대담한 생명에게서 배웠다.
그 뒤로는 바다가 잔잔히 일렁이고 있었다. 바람은 여전했지만, 그날 맑음이와 나 사이엔 말없이 따스한 감정이 쌓여갔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무를 기억으로.
방파제 난간 위에서 아이들이 사람을 기다리는 건 어쩌면 단 하나, 굶주림 때문이다. 인심 좋은 낚시꾼을 만나지 못한 날은, 그저 배를 움켜쥔 채 버티는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이곳엔, 고양이들이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급식소가 필요하다. 그저 하루 세 끼,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작은 배려가 절실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