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에서 살아가는 어미고양이와 아기고양이들
'야옹, 야옹-'
오늘도 어김없이 래오의 아침 인사가 들려왔다. 숙소 2층까지 올라와 직접 깨워주는, 다정한 도련님의 기운찬 알람 덕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야옹~ 누나, 일어나라옹. 오늘은 바람도 안 불고 따뜻할 거 같다냥!”
유난히 경쾌한 래오의 목소리에, 왠지 오늘은 사라졌던 방파제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래오 엄마가 싸준 과일 도시락을 챙겨 들고,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방파제로 향했다.
수색을 시작한 지 벌써 4일째. 거칠게 몰아치던 풍랑은 잦아들었고, 차가운 바람 속에도 봄기운처럼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방파제 등대 쪽에는 이미 낚시꾼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쪽으로 향하는 고양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낯익은 걸음걸이, 아마 등대 아래에서 새끼를 키우는 삼색 어미일 것이다. 나는 그녀를 나중에 만나기로 하고, 방파제 주변과 마을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어르신 댁 앞을 지날 때, 두 마리 고양이가 지붕 위에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며 인사를 건네자, 젖소 무늬 고양이가 경계를 풀고 내 앞으로 폴짝 내려왔다. 뒤이어 삼색 고양이도 조심스레 뒤를 따랐다. 마치 “언니, 우리 기억하지?”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마당 한쪽에서는 우유 빛깔의 또 다른 삼색 고양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반갑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집에는 두 달 전, 마을에 놓인 약으로 고양이 넷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슬픈 기억이 있다. 사흘 전 어르신께 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남은 고양이들은 외출을 삼간 채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라 더 귀하게 느껴졌다.
마침 아드님이 마당으로 나오셨고, 며칠 전 나눈 이야기를 전하며 고양이 간식을 건넸다. 마따따비를 건네주자, 아이들은 곧 요리조리 굴리고 핥으며 신나게 뒹굴었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드님께 나는,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다래나무과 식물이에요” 하고 설명을 덧붙였다. 함께 웃으며, 이 집에 남은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기를 바랐다.
어르신 댁을 나와 방파제 식당 앞을 지나는데, 여덟, 아홉 달쯤 되어 보이는 삼색 고양이가 담 뒤에 몸을 숨겼다.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고양이는 풀숲 너머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그 바로 옆 잔디밭 위에서, 낯익은 얼굴이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었다. 4일 내내 해맑게 나를 반겨주던 치즈 고양이, 맑음이었다.
“맑음아, 안녕! 오늘도 여기 있었구나.”
그동안 방파제 위에 누워 있는 모습만 보아 걱정했는데, 따뜻한 잔디밭 위에서 편안히 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잠시 후, 맑음이가 삼색 고양이에게 다가가 코를 부비며 인사를 나눴다. 둘은 친구일까, 연인일까. 사료와 닭고기를 푸짐하게 챙겨주며 조용히 응원했다.
이날은 낚시에 최적의 날씨였다. 등대로 향하는 낚시꾼들, 바다 앞에 의자를 펼친 가족과 연인들로 방파제는 북적였다. 사람 냄새가 많아지면 고양이들은 다시 숨어버릴 터. 나는 서둘러 방파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난간 위에서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고, 그 아래로 아주 작은 노란 털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줌을 당겨보니, 정말 아기 고양이였다. 바다로 떨어질 듯한 아슬아슬한 자리에 조심스레 서 있던 그 모습은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대 아래 삼색 어미 가족도 시야에 들어왔다.
서둘러 그 자리로 달려갔지만, 아기 고양이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방파제를 조심스레 살폈다. 그 옆에 있던 치즈 고양이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옹”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어미일까 싶었지만, 덩치로 보아 그저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고양이였을지도 몰랐다.
등대 앞으로 가자, 낚시꾼들 너머 삼색 어미 고양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야옹야옹—” 낚시꾼에게 말을 거는 듯한 그 모습은 당당해 보였지만, 이 순간조차 생존을 위한 간절함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낚시꾼에게서 물고기를 얻어 아기에게 전해준 어미 고양이는, 이내 구르밍을 하며 햇살을 만끽했다. 그 모습은 어떤 엄마보다도 단단하고 위풍당당해 보였다.
카메라에 포착된 치즈 아기 고양이를 다시 보기 위해 방파제를 살폈지만, 흔적은 없었다. 마치 꿈처럼. 아쉬운 마음을 안고 숙소로 향했다.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고 외투를 챙겨 다시 방파제로 향했다. 오후 5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며 고양이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침에 보았던 아기 고양이는 있었던 걸까. 꿈처럼 사라진 그 노란 털뭉치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다시 그 자리를 찾아보니, 방파제 둑 아래 바위 위에 인형같은 아기 고양이 셋이 쪼르르 앉아 있었다. 바다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자리에 앉은 그 모습은 너무나 위태로웠다.
이곳은 등대 아래에서 새끼 둘을 키우는 삼색 어미 고양이 가족이 머무는 곳에서 불과 열 걸음 거리였다. 그 어미 고양이는 아이들을 바위틈에 숨겨두고 곁에서 살뜰히 육묘 중이었고, 덕분에 그곳의 아기 고양이들은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두 어미 고양이가 나란히 바위 아래서 새끼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아기 고양이들은 상태가 달랐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몸은 눈곱과 콧물로 뒤덮여 있었다. 허피스, 고양이 감기에 걸린 듯했다. 몸집도 눈빛도 연약했고, 어미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 환경에서도 어미의 존재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키튼용 사료에 면역 영양제를 섞은 습식을 그릇에 담아 가까운 바위 위에 놓고,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멀리 떨어져 지켜봤다. 5분쯤 지나자 치즈 아기 고양이의 귀가 살짝 움직이는 게 보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바위 위로 올라왔다. 고양이 몸보다 큰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듯 먹는 모습은 세상의 모든 귀여움을 품은 듯했다. ‘그래, 넌 꼭 살아남을 거야.’ 속으로 중얼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방파제 입구 쪽에서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둑 아래로 내려갔다. 가까이 다가오자, 4일 전 방파제 입구에서 마주친 바로 그 어미 고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 순간, “삐약- 삐약-” 하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미는 곧바로 아기 곁에 다가가 핥아주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왜 나와 있어? 엄마가 숨어 있으라고 했잖아!” 어미의 표정엔 다정한 꾸지람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조용히 사료와 습식, 닭고기를 담아 그릇을 내려두고 뒤로 물러섰다. 냄새를 맡은 어미는 망설임 없이 올라와 닭고기 한 점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바위틈 아래로 내려가 아이들 앞에 내려놓았다. 치즈 아기 고양이가 가장 먼저 다가가 그것을 먹기 시작했고, 다른 아기들도 하나둘 뒤따랐다.
그리고 바위 틈에서 또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렇게 넷. 매 끼니를 아이들에게 먼저 내어주고, 다섯 번을 배달하고 나서야 그녀는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때, 어미가 바위 틈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코에 큰 점이 있는 또 다른 아기 고양이를 입으로 살짝 물고 올라왔다. 그제야 알았다. 아기 고양이는 셋이 아닌 넷이었다. 숨어 있던 막내를 데려오는 그 어미의 걸음은 조심스럽고 단호했다. “너도 먹어야지. 엄마가 다 준비했단다.” 마치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닭고기와 습식 사료를 다섯 번이나 나르며 아이들에게 먼저 내어준 뒤, 어미 고양이는 그제야 자신의 그릇 앞에 앉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자신의 입에 무언가를 넣는 순간이었다.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 배는 홀쭉했고, 눈빛은 지쳐 있었지만, 그 고단한 몸으로 새끼 넷을 굶기지 않으려 고군분투한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척박한 방파제 위에 피어난 모성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 마음 깊은 곳을 뜨겁게 울렸다.
척박한 방파제 바위 틈에서, 아이 넷을 이만큼 키워낸 어미 고양이의 삶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남은 며칠 동안, 이 아이들을 위해 영양식과 닭고기를 충분히 챙겨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도 올게. 우리 꼭 다시 만나자옹. 아가들, 꼭 무사하자.”
조용히 되뇌며, 저녁 하늘 아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