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생선 배달부

새끼를 살리려는 어미고양이의 간절한 발걸음

by 할망

햇살이 바다 위로 천천히 번지던 이른 아침, 나는 다시 방파제를 향했다. 차 문을 열기도 전에 낯익은 얼룩빛 털이 시야를 스쳤다. 아기 고양이 넷의 엄마였다.

방파제 입구를 어슬렁거리던 그녀의 걸음에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가 이곳에 나와 있다는 건,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들이 방파제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었다.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밀려왔다.

“어미야, 아가들은 두고 나온 거냐옹?”

수유로 불은 젖이 배 아래로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분명 아기들에게 수유를 마치고, 허기진 몸을 달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다. 사료 그릇을 살며시 놓고, 전날 아기 고양이를 처음 마주했던 방파제로 조심스레 발길을 옮겼다.

젖이 불어있는 카오스 어미 고양이


그곳엔 어김없이 작은 노란 털뭉치 하나가 바위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치즈 아기 고양이는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떨고 있었다. 눈에는 노란 눈곱이 끼고, 코에는 말라붙은 콧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여린 몸은 더 왜소해 보였고, 온기를 향한 간절함이 몸짓에 묻어났다.

“아가야,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닷물에 젖었어요. 엄마 좀 찾아주세요.”


“엄마 데려올게. 조금만 기다리라옹.”

“도와줄 수 있나요?“


아기 고양이 곁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치즈 무늬 성묘 한 마리가 함께 있었다. 어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조용히 곁을 지켜주고 있었던 걸까. 나는 작게 속삭였다.

“어미 고양이 데리고 올 때까지 아기 잘 지켜주라옹.”

스스로를 지키기 위에 햇살 아래 누운 아기 고양이


그 순간, 방파제 입구 쪽에서 갈색빛 고양이 한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입에는 은빛 물고기 하나가 물려 있었다. 어미 고양이였다. 무려 백 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를, 물고기를 입에 문 채 아기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았다. 아침 햇살 속에서 그녀의 강인한 실루엣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어미야, 잘했어!”

그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젖은 치즈 아기를 지나쳐 곧장 바위틈 속으로 사라졌다. 입에 문 물고기는 아기들에게 전달되었고, 젖어 있는 치즈 아기는 그 자리에 남겨졌다.

“어미야… 아기가 물에 젖었는데 못 본 거냐옹?”

아기들한테 생선 배달을 가요.


어미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더 강한 아이부터 챙겼다. 어쩌면 그게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 현실 앞에서 마음이 저릿했다.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다. “아기야, 우선 먹자! 먹어야 몸이 따뜻해질 거라옹.”

작고 떨리는 몸을 보며, 꼭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다. 그 아이가 세상의 따뜻함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 고양이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입에 아무것도 물려 있지 않았다. 혹시나 치즈 아기에게 다가가 구루밍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녀는 또다시 방파제 입구 쪽으로 사라졌다.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먹이를 구하러 간 것이다.

어미의 발 끝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녀의 발걸음엔 서둘러야 한다는 조급함과, 멈출 수 없는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작디작은 물고기 하나로는 일곱 아이의 허기를 채울 수 없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 배를 채우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어미는 또다시 먼 바다 쪽으로 향했다. 그 빠른 걸음마다 ‘살아야 한다’는 어미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살고 싶어서 올라온 아기 고양이


어미 고양이를 기다리는 사이, 나는 젖은 치즈 아기 고양이 옆에 습식 사료와 따뜻한 닭고기를 조심스레 놓아주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방파제 위, 지금 이 작은 생명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한 끼의 따뜻한 식사와 누군가의 다정한 온기였다. 그 순간, 따스한 냄새를 맡았는지, 아기 고양이들이 “삐약 삐약”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가들, 잠시만 기다리면 물고기보다 맛있는 닭고기를 줄 거라옹.”

넷인 줄 알았던 어미의 아기 고양이는 다섯이 되었다.


그때 바위틈 어딘가에서 아기 고양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젖소 무늬의 아기 고양이 셋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보였다. 이어서 어제는 보이지 않던, 눈에 띄는 카오스 무늬의 아기 한 마리가 바위 틈을 비집고 나왔다. 나는 천천히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다섯 마리. 그런데 그 순간, 치즈 무늬의 또 다른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어? 치즈 아기가 한 마리 더 있었네?"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다시 또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숨을 멈춘 채 셈을 했다. 하나, 둘, 셋... 일곱.


심장이 조용히 뛰기 시작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넷이라고 생각했던 아기 고양이들이, 실은 일곱이었다. 바위틈에 꼭꼭 숨어 있다가, 어미가 남긴 물고기 냄새와 사람 손에서 나는 온기를 따라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겁 많고 체구 작은 아이들은 그제야 용기를 낸 듯했다. 이 모든 생명들을 단 한 마리의 어미가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말을 잃었다. 가녀린 몸으로 일곱 생명을 먹이고, 따뜻하게 품고, 그 좁고 험한 방파제 틈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냈던 것이다.

그러나 감탄에 머물 수 없었다. 아기들 중 몇몇은 눈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특히 카오스 아기 눈은 결막이 부풀어올라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고양이 허피스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반적인 감기라지만, 이런 어린 아기 고양이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병이었다.

바닷물에 젖은 치즈 아기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픈 아이들이 더 있다는 사실은 가슴을 더욱 저리게 만들었다. 고영양식을 지속적으로 먹이면 회복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틀 뒤면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 했다. 어미 혼자서 사냥한 먹이로는 일곱 마리의 허기를 모두 채우기 어렵고, 바람이 불거나 날이 흐리면 방파제의 바위틈은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아픈 고양이를 데려가 병원에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의 치료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바위틈에서 살아가는 아기 고양이들


30분쯤 지나 어미 고양이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빈손이었다. 조금 전, 물고기를 물고 씩씩하게 달려오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의 어미는 힘이 빠진 듯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미는 묵묵히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녀의 둥지였고, 아이들의 전부였다.


어쩌면 이곳은, 어미가 아기들을 물고 이소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왜 마을이 아니라 위험한 방파제였을까? 쥐약 사건 이후, 마을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미 고양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일곱이나 되는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녀의 작고 지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오롯이 ‘엄마’라는 이름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곁에서, 간절히 바랐다.

부디, 어미가 희망을 놓지 않기를, 이 작은 생명들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