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뭘 할 수 있을까?

아기 고양이를 구조해야 할까? 자연의 섭리에 맡겨야 할까?

by 할망

(이전 글) 엄마는 생선 배달부


아기 고양이들은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아슬아슬한 바위 위에서 졸음을 쫓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바닷물은 혹여 작은 몸이 굴러 떨어질까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물에 젖은 치즈 아기와 결막이 부어 있는 카오스 아기의 건강이 걱정스러웠는데, 그나마 괜찮아 보이던 또 다른 치즈 아기의 눈마저 이내 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 고양이들


한편, 어미 고양이는 반나절을 쉼 없이 달렸다. 일곱 마리의 아기들에게 수유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방파제와 어딘가를 끊임없이 오가며 먹이를 찾았다.

새끼들을 위해 달리는 어미 고양이

첫 번째로 작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온 이후, 몇 차례는 빈 입으로 돌아왔다. 사냥은 실패였지만, 어미는 아기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온 듯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일곱 아기들에게 배달가요!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어미의 입에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물려 있었다. 사라졌던 희망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숨이 멎을 만큼 찬란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장면이 이어졌다. 어미는 아기들이 누워 있는 바위를 지나쳐, 조용히 바위틈 안으로 몸을 숨겼다. ‘왜 아이들을 두고 은신처로 들어가는 걸까?’ 의문이 채 가시기 전, 그 이유가 울음소리로 드러났다.

“음-냥, 음-냥.”
어미가 아이들을 부르고 있었다.

가장 몸집이 큰 젖소 무늬 아기가 먼저 어미의 부름에 반응하듯,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바위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하나둘씩, 아기 고양이들이 조심스레 어미의 품을 향해 기어들어갔다. 그러나 젖은 치즈 아기 고양이만은 바위 위에 그대로 남아, 따스한 햇살을 이불 삼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축축하던 털은 어느새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까무룩 잠이든 아기 고양이


“아기야, 일어나. 엄마한테 가야지.”
속삭이듯 부르자, 아기는 비몽사몽 눈을 떴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던 눈은 결막이 불그스름하게 부어 있었다. 젖은 몸으로 추위에 떨었던 탓일까. 허피스가 악화된 걸지도 몰랐다. 생선을 먹지 못하던 이 아기가 습식 고영양식을 받아먹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안심했었지만, 지금의 눈빛은 다시금 마음을 찢듯 아프게 했다.

바닷물에 젖은 아기 고양이의 눈이 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SNS에 올렸다. 순식간에 ‘좋아요’가 쌓이고, 백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고양이 살려주세요!”, “구조해주세요!”, “모금 통장 열어주세요!” 예상된 반응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망설였던 것이기도 하다. 구조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런 장면을 공유하는 건, 보는 이에게도 슬픔의 무게를 전가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더는 늦출 수 없었다. 나는 이틀 뒤면 육지로 돌아가야 하고, 아이들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현실을 알아야만 했다.

댓글 중 하나가 제주 지역 동물 단체에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제안했고, 곧이어 제주에 거주하는 분이 DM으로 구조 사례를 공유해주었다. 육지에서 온 사람이 요청하면 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희망을 품은 채 단체의 홈페이지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누구든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이 있었다.


작은 동물 단체는 구조의 여력이 없는 곳이 많다는 걸 알기에, 나는 당장 구조를 요청하기 보다는 방파제 고양이들의 상황과 중성화 수술의 시급성, 급식소 설치의 필요성을 담은 글을 올렸다.
낚싯꾼들에 의존해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마을 안에도 급식소가 절실했다. 그리고 쥐약 사건으로 수많은 고양이들이 희생되었던 마을의 과거를 알리며, 동물 학대 방지와 인식 개선을 위한 현수막이 필요하다는 요청도 함께 담았다. 장기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했다.
며칠 머무른 이방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사이, SNS 댓글에는 직접 구조에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중문에서 오신다는 분이 있었고, 대정읍에 거주하는 부부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그 소식을 본 이들의 응원이 이어졌고, 댓글창은 금세 “고맙습니다!”로 가득 찼다.

구조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지금 당장 구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망설여졌다. 치료 과정에서의 임시 보호뿐 아니라, 이후 입양까지 고려해야 했다.

아픈 고양이를 구조해야 할까?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과연 그 아이들의 미래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서울에서 구조한 고양이조차 입양까지 수개월이 걸렸고, 그 과정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마음 소모도 컸다. 무엇보다 지금 구조를 시도한다면, 어미와 아기 고양이들을 떨어뜨려야 한다.
수많은 물음표들이 가슴 속을 떠돌았다. 그들의 생명이 내 판단에 달렸다는 사실이, 가슴 깊숙이 내려앉았다.

고양이들의 삶에 개입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그들의 ‘평생’을 건 선택이다. 그래서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게 정답이에요.” 하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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