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고양이의 발걸음을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이어졌다
아픈 고양이들을 돕겠다며 달려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따뜻한 결심은 마음을 울리면서도, 한편으론 무거운 책임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방파제 고양이들의 영상을 SNS에 올릴 때,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 이 작은 생명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틀 남짓한 시간 안에 임시 보호처를 찾고, 구조까지 해내는 건 현실적으로 벅찬 일이었다.
무엇이 고양이들에게 최선일지 고민하는 사이, SNS에서는 "고양이 구조해 주세요!"라는 간절한 요청과 "본인이 구조할 게 아니라면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라는 날 선 반응이 엇갈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곧 서울로 돌아가야 했고, 그곳에는 이미 구조한 유기묘 이쁜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쁜이는 임신한 상태로 구조되어 출산과 육아를 함께하며 6개월을 보낸 아이였다. 아기 셋을 입양 보내는 데만 5개월이 걸렸고, 아직 입양되지 못한 이쁜이는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구조자가 짊어져야 할 현실을 잘 알기에 더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 카오스 고양이의 왼쪽 눈이 급격히 나빠졌다. 결막이 심하게 부어 동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흰 막이 덮였고, 방치하면 실명에 이를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그동안 맴돌던 수많은 물음표를 걷어내고, 구조를 도와주겠다고 연락 준 분들에게 차례로 메시지를 보냈다.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사람은 제주 남쪽 위미에서 고양이 소품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었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아기 고양이를 격리할 공간도 있으며, 이전에도 구조와 임시 보호 경험이 있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언제 오실 수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집에 들러 이동장만 챙기고 바로 출발할게요."라고 말했다. 담백하고 단호한 말투에 믿음이 갔고, 무겁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곧이어 제주 동물단체 대표님과의 통화도 이어졌다. 방파제의 열악한 환경, 바위틈에서 새끼를 키우는 어미 고양이들, 허피스 감염과 최근 발생한 약물 사건까지. 나는 긴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TNR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고양이에 대한 인식 개선과 급식소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도 전했다.
대표님은 "구조할 고양이가 몇 마리인가요?"라고 물었고, 나는 상태가 심각한 아기 고양이 세 마리 중 한 마리를 우선 구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표님은 만약 한 마리를 더 구조할 수 있다면, 저녁에 임시 보호 가정을 연결해줄 수 있다고 했다. 활동가들도 생업을 병행하다 보니 주로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 구조가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때 대정읍에 사는 부부에게서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시내에 있어 이동장은 없지만, 차량에 포획틀이 있으며 두 시간 안에 방파제에 도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는 듯 하나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 거리를 달려오고 있는 임시 보호자를 기다리며, 나는 아기 고양이들이 바위틈으로 숨어버릴까 봐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늘이 구조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바위틈은 깊고 복잡해 아이들이 몸을 숨기기엔 더없이 적당한 장소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을 방파제 위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허피스 증세를 보이며 바위 위에 웅크려 있었고, 체중이 너무 가벼워 포획틀로는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담요나 맨손으로 직접 구조해야 했다.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구조는 실패할 수도 있었다.
나는 장난감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방파제 길목에 조심스럽게 앉아 낚싯대를 흔들자, ‘차르르, 샥샥’ 낚싯대 끝에서 들리는 미세한 소리에 어미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냐아옹— 무슨 일이냐옹?" 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어미에게 나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엄마야, 아기들 데리고 올라와요. 다 같이 놀자옹."
닭고기와 츄르로 만든 징검다리 길을 만들고, 조용히 기다렸다.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소리와 함께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기들, 놀아보자옹." 하고 속삭이자, 카오스 아기가 바위틈 너머에서 조심스레 머리를 내밀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장난감이 신기한 듯, 망설임 없이 방파제 위로 올라왔다. 낚싯대를 따라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은 사랑스럽고도 절절했다.
"잘했어! 여기 맛있는 간식도 있다옹."
내 얼굴이 익숙했던 걸까. 녀석은 경계 없이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동장도 담요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안타까웠다.
잠시 후, 어미와 함께 젖소 무늬 아기 둘도 방파제 위로 올라왔다. 마침 임시 보호자도 도착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양이들이 올라와 있네요. 상태가 제일 심한 아기는 누구예요?"
"저기, 카오스 고양이요. 눈이 많이 부었어요. 치즈 아기 둘은 둑 아래에 있어요."
"바닷물에 젖은 치즈 아기는 괜찮아 보이나요?"
"잘 먹고 햇볕을 쬐며 털이 보송해졌어요. 식욕도 좋아요. 그런데 다른 치즈 아기의 눈이 더 심하게 부었어요."
세 아이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특히 카오스 아기의 눈은 특히 심각했다. 누굴 먼저 구조할지 선택해야 한다는 현실은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병원에서 두 마리 모두 집에서 돌봐야 한다고 하면, 카오스 아기랑 치즈 아기까지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입양 시기가 불확실하고,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상황임을 상기시키자, 그녀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두 아이라도 입양 갈 때까지 제가 보살필게요."
그녀의 결단으로 구조 대상은 한 마리에서 두 마리로 늘었다. 아기들과 유대감이 있는 내가 낚싯대로 유인하고, 그녀가 구조하는 방식으로 작전을 짰다. 어미가 가까이 있어 마음이 쓰였지만, 아이들을 위해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아기들은 체중이 가벼워 포획틀로는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손으로 직접 안아야 했고, 사방이 뚫린 방파제 위에서의 포획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낚싯대 소리에 반응한 카오스 아기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반짝이는 장난감에 홀린 듯 그녀의 손에 고요히 안겼다. 담요로 감싸 이동장에 옮겨졌다. 그 모습을 본 아기들 몇은 재빨리 바위틈으로 숨었다.
망설이던 그때, 또 한 마리 치즈 아기가 낚싯대 방향으로 살금살금 걸어왔다. 그녀는 숨을 고르고 다시 집중했고, 곧 그 아이도 조심스럽게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 순간, 그녀는 마치 고양이들을 위한 슈퍼히어로처럼 보였다.
나는 어미 고양이를 향해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어미야, 납치 아니야. 아기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라옹."
이동장 안에서 아이들은 서로에게 몸을 기대며 조용히 있었다. 갑작스레 어미 곁을 떠난 것이 안쓰러웠고, 그걸 설명해줄 수 없다는 현실이 아팠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받으니, 아이들은 허피스 바이러스로 인한 결막염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너무 어려 약물 치료는 어렵고, 하루 네 번 안약을 넣어야 하며 회복까지는 2주 이상이 걸릴 거라고 했다.
‘이 아이들을 어미 품으로 다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작은 희망을 품고 원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이들을 어미에게 돌려보낼 수 있을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원장님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방파제 환경에선 회복이 어렵고, 사람 손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다시 방사할 수 없습니다."
결국 아기들은 엄마 품이 아닌 사람의 손에서 치료받아야 했다. 그 사실이 어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나는 사료와 간식을 임시 보호자의 차에 실어주며 몇 번이고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마음을 다해 전했다.
"아기들, 잘 지내야 해. 언니가 꼭 다시 만나러 갈게."
그렇게 두 아기와 이별한 뒤, 나는 다시 방파제로 향했다. 어둑해지기 전, 구조 대상인 마지막 한 마리를 더 구해야 했다.
대정에서 온 부부는 포획틀을 들고 이미 도착해 있었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고, 아기들은 방파제 위에 있었다.
이번엔 남편 분이 나섰다. 나는 닭고기로 아이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는 고무장갑을 끼고 망설임 없이 둑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아기들이 놀라 바다로 뛰어들까 봐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다행히 치즈 아기가 닭고기에 집중해 있었다. 그는 몸을 낮추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숨에 아기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담요로 감싸 포획틀에 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안도의 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아기는 기다렸다는 듯 울기 시작했다.
"이야옹— 이야옹—"
그 울음을 들은 어미는 어디선가 우리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듯 말했다.
"어미야, 이 아기도 꼭 치료받고 따뜻한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줄게."
그 부부는 반려 고양이 셋이 있고, 구조한 고양이 한마리와 떠돌이 개 세 마리도 함께 돌보고 있다고 했다.
"다음에도 구조가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날, 나는 다시금 생각했다. 내가 육지에서 온 이방인이라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겼지만, 선한 마음들이 모이면 불가능도 가능해진다는 것을.
제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대사가 떠올랐다.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백 리 길도 십 리 된다."
그리고 또 한 마디.
"살민 살아진다."
이 말은 오늘도 방파제에서 일곱 생명을 돌보는 어미 고양이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원의 말이다.
고양이 가족을 위해 손 내밀어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나는 기꺼이 외치고 싶다.
"폭싹 속았수다예!"
폭싹 속았수다 : 제주 방언으로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