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스쳐간 아기 고양이의 이야기
그날 바람은 조용히 자장가를 불렀다. 작고 소중했던 생을 기억하듯이.
방파제 바위틈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던 카오스 어미의 일곱 아기 중, 허피스로 심한 결막염을 앓고 있던 세 마리를 가까스로 구조할 수 있었다. 제주 곳곳에서 달려온 사람들의 손길은 어둠 속 작은 생명에게 따스한 빛이 되어주었고, 그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내 망설임을 걷어냈다.
세 아이가 임시 보호처로 떠난 뒤에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어미와 남은 네 아기가 어스름이 내려앉은 방파제에 남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렸다. 구조 당시 아이들은 몸집이 작아 포획틀은 무용지물이었고, 손으로 하나하나 안아야 했다. 물에 젖었던 치즈 아기는 순식간에 바위틈으로 사라져 구조하지 못했다.
남은 아기들이 걱정돼 다시 방파제를 찾았고,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저물어 밤바다가 깊어져 있었다. 휴대폰 불빛에 드러난 치즈 아기는 오전보다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보였지만, 내가 다가가자 잔뜩 긴장한 채 곧장 바위틈으로 사라졌다. 면역력이 더 떨어지면 상태가 악화될 수 있기에, 영양밥을 한 번이라도 더 먹이고 싶었다. 구조 때 사용했던 장난감 낚싯대를 살짝 흔들었다. ‘차르르, 샥샥~’ 매달린 금속줄이 내는 소리가 어둠 속을 스쳤지만, 좁은 틈 사이에선 숨죽인 기척만 감돌았다. 결국 남은 고양이들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고, 나는 다시 이른 아침의 방파제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아기 셋을 빼앗긴 어미의 마음을 대변하듯, 바다는 성난 듯 넘실거리고 바람은 매서웠다. 몇 시간을 지켜봤지만 어디에도 고양이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바위틈에 영양제를 넣은 습식 사료를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비릿한 바람에 실려 가벼운 사료 냄새가 번졌지만, 다시 확인했을 때도 그릇은 그대로였다.
세 아이를 데려온 일이 어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남겨진 자리를 바라볼수록 무거운 마음이 깊어졌다. 잠시 래오네 집에서 몸을 녹인 뒤 다시 방파제로 돌아오니, 맑음이가 내 무릎 곁을 맴돌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왜 저 고양이는 언니를 따라다니냐”고 웃을 만큼, 맑음이는 어느새 나의 작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맑음이의 눈가엔 노란 눈곱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허피스 증상이었다. 며칠 동안 쌓은 신뢰를 믿고, 나는 낚싯대를 흔들어 시선을 끈 뒤 좋아하는 닭고기를 내밀었다. 등을 살짝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기에 용기를 내어 안약 병을 열었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놀란 듯 뒤로 물러섰던 맑음이는 금세 다가와 내 손끝을 비볐다. 제주에서 만난 동네고양이에게 안약을 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틀 내내 어미와 아기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방파제에서 여섯 번째 아침, 서둘러 달려간 방파제는 먹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물결 위에 길을 놓았다. 전날 숨어버렸던 치즈 아기가 바위 위에서 햇살을 베개 삼아 잠들어 있었다. 습식 사료를 꺼내자, 틈 사이로 어미와 세 아기가 코끝을 씰룩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아, 모두 무사하구나.’ 안도의 숨이 바다 냄새에 스며들었다.
어미의 상실감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렸지만, 아픈 아이들이 병원 치료를 받고 따뜻한 집에서 건강해질 모습을 생각하니 그날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육지로 돌아가야 했고 내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방파제엔 여전히 고양이가 넘쳤고, 낚시꾼의 호의만으로는 내일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즈음, 월정리 ‘책다방’의 선영 씨와 ‘언니옷장’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기들이 굶지 않게, 우리가 매일 사료를 가져다줄게요.”
그 다정한 말 한마디가 얼어붙은 마음에 햇살처럼 스며들었다.
책다방은 제주에서 내 첫 전시가 열린 곳이다. 전시가 시작되던 날, 공항으로 향하던 나에게 사장님은 길가에 다리를 저는 아기 고양이를 보았다며, 보호소에 연락해야 할지 물으셨다. 대부분의 보호소는 유기동물이 들어오면 2주의 공고 기간 이후 안락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보다는 치료하고, 입양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잠시 고민하던 사장님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고, 나는 전시 수익금을 아기의 치료비로 건넸다. 아기는 건강을 되찾았고, 마침내 평생 가족을 만나 품에 안겼다. 우리는 고양이를 사이에 두고, 그날 이후 더 가까운 인연이 되었다.
이제 그들이 방파제까지 아침마다 사료 배달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생업이 있는 사람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날부터 책다방과 언니옷장 사장님은 방파제까지 사료를 챙겨 주며, 고양이들의 사진과 함께 안부를 전해오셨다.
일곱 아기 중 두 마리는 위미의 소품점을 운영하는 보호자님의 집에서 허피스 치료를 받으며 호전 중이었다.
또 한 마리는 동물보호단체가 연결한 임시 보호처로 갔는데, 다음 날 “사정이 생겨 아이를 못 맡게 돼 동물보호센터(보호소)에 입소했다”는 연락이 왔다. 안락사가 빈번한 곳에 보내지 않겠다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단체는 “요즘 보호소는 시설이 좋아 치료를 잘해주며, 단체에서도 아이 상태를 확인할 거라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포인핸드 사이트에서 아이의 사진을 찾아보니 ‘공고번호 06597’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어미 곁에 있어야 할 아기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렸다.
2주 뒤 임시 보호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위미에 있는 두 아기가 설사를 하고 배가 불러 병원에 갔는데, 원충과 회충이 나왔다는 것이다. 보호센터에 있는 아기도 검사를 받아야 했다. 단체에 연락하자 “확인해 보고 연락주겠다”고 했지만 돌아온 소식은 “아기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걱정 끝에 책다방 선영 씨에게 면회를 부탁했고, 그녀가 보내온 영상 속 아이는 겁에 질려 귀가 접히고, 몸이 말라 있었다. SNS에 소식을 올리자 활동가 ‘오묘한 집사’님이 “지금이라도 데려와 돌보겠다”고 연락을 주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단체로부터 “아이가 숨을 거뒀다”는 연락을 받았다. 믿어지지가 않아 보호소 수의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기가 먹지 않았고 개체 수가 많아 세심한 치료가 어려웠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했고, 센터는 규정상 불가하다고 했지만 “불쌍하게 떠난 아기를 쓸쓸하게 보낼 수 없다”는 말로 끝내 허락을 받아냈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을 전하며, 그때까지 아이를 잘 지켜달라고 조심스레 부탁했다. 잠시 침묵하던 수의사는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서울에서 오신다고요?”
죽은 고양이를 위해 비행기를 타겠다는 말이 낯설었던 걸까. 그제야 한층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잘 돌보고 있겠다고 말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가장 빠른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보호센터 앞엔 활동가 오묘한 집사님이 먼저 와 있었다. 함께 들어간 보호소 안, 아기는 뼈가 드러날 만큼 말라 있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내 선택이 아이에게 상처였던 건 아닐까. 여윈 몸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졌다. 영상 속 모습보다 훨씬 앙상했다.
집사님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기를 위해 마지막 인사를 준비해도 될까요?” 그분은 정성껏 뜬 동백꽃팔찌를 아이의 작은 발목에 걸고, 조심스럽게 눈을 감겼다. 하지만 아이의 눈꺼풀이 쉽게 감기지 않아, 나는 아이의 눈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아가, 미안해. 눈 감고 편히 쉬어.” 말을 건네며 조심스레 눈을 감겨주었다. 우리는 아이의 작은 몸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형제 둘을 돌보던 보호자님도 달려와 아이와 이별을 나누었다. 짧은 생이었지만, 아이는 따뜻한 손길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존중받으며 떠났다.
아기를 품에 안고 조용한 바닷가로 향했다. 아기는 방파제에서 멀지 않은 인적 드문 바닷가 앞 조용한 땅에 묻혔다. 쓸쓸히 떠난 작은 생명이 외롭지 않도록, 어미의 숨결이 닿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같은 바람이 스치는 곳에 조심스레 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작고 따뜻한 손길로 흙을 덮으며 속삭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렴. 엄마가 너를 기억할 거야.”
그날따라 바닷바람이 잠시 멎은 듯 고요했다. 그 순간, 고양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인지를 새삼 절절히 배웠다.
아기의 작은 몸을 감싸 안았던 담요 끝에는, 흰 꽃 한 다발이 함께 안겼다. 어미가 머물던 바다와 가까운 곳, 바람이 스치고 햇살이 닿는 그 자리에. 외롭지 않은 마지막 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아기와 작별한 다음 날 아침, 서울에 도착해 출근하던 길에 책다방 언니에게서 또 다른 비보가 전해졌다. 방파제에서 가까운 등대 아래, 삼색 어미가 키우던 아기 고양이 하나가 차가운 바위 위에 젖은 채로 누워 있었다. 어미가 물어다 준 생선을 야무지게 뜯어먹던, 활기차고 용감한 아이였다.
새벽 사료 배달을 나섰던 언니는 그 장면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고 했다. 젖은 털, 반쯤 감긴 눈, 어미가 물어다 올려놓았을지도 모를 자리. 작은 생명은 차가운 바위 위에 조용히 몸을 누인 채,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바닷가를 뛰놀며 어미 품에 기대 바람을 맞던 아이였다. 그 생이 하루아침에 꺼졌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았다.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조용히 사라진 것만 같았다.
이틀 사이 두 생명을 하늘로 보냈다. 어린 고양이들의 운명은 한순간에 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버겁게 다가왔다. 카오스 어미의 아픈 아기 세 마리 중, 보호센터에 들어간 한 아이는 열엿새 만에 떠났고, 건강했던 삼색 어미의 아기는 파도 소리에 묻혀 홀로 눈을 감았다.
첫겨울을 맞는 아이들에게 방파제는 혹독했다. 반년 전, 실내에서 출산한 유기묘 이쁜이의 다섯 아기를 보름 만에 떠나보냈을 때도 속수무책이었는데, 반년 만에 또다시 방파제에서 두 아기를 잃은 것이다. 수의사는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새끼 고양이의 생은 연약하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무덤 앞에 앉아, 아이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아가들아, 짧은 세상살이였지만 사랑받았다는 기억만은 품고 가렴. 부디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