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데려가 주세요.

치맛자락에 매달린 작은 맹수, 래오의 첫 만남

by 할망

북카페 유람위드북스를 지키는 호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짧은 안부 인사 뒤, 그는 한참 머뭇거리다 옆 공방에서 만난 아기 고양이 이야기를 꺼냈다.

“작은 목공방에 조그만 아기 고양이가 나타났어. 버려진 듯한데… 입양 보낼 곳을 찾아줄 수 있을까?”


먼지와 소음이 가득한 작업장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어 보인다며, 품어줄 가족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혹시 어미가 놓친 건 아닐까?”

“이 마을 고양이들은 대체로 눈에 익는데, 낯선 아기가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거야. 경계하는 기색도 없고, 사람 곁에 있으려고 하더라. 발톱을 보니, 집에서 지내던 흔적 같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낯선 공간에 홀로 남겨졌을 아기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사 과정에서 길 위에 버려진 고양이를 구조해 새 가족을 찾아준 일이 있었다. 젖소 무늬의 고양이는 비 오는 날에도 골목 한 자리를 지키며, 떠난 가족을 기다리는 듯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 골목 빌라에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가며 아이를 두고 떠났다는 사실을 이웃에게 전해 들었다. 그 기억 탓인지 이번 이야기는 더 깊이 와닿았다. 보지 못한 아기였지만, 혼자 남아 있을 모습이 자꾸 마음을 맴돌았다.

며칠 뒤, 방파제 고양이 구조 때 인연을 맺은 민영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달 전, 나를 통해 품에 안긴 아기 고양이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이었다. 민영 씨는 돌봄에 지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고, 몸까지 많이 쇠약해졌다는 걸 알게 됐다. 아기의 간호를 도울 사람이 절실해 보였고, 그냥 두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곧 제주로 향하기로 했다. 아픈 아기 곁을 지키고, 민영 씨에게도 잠시 숨을 돌릴 틈을 주고 싶었다.


마침 서울에 볼일이 있던 호선이 비슷한 시간에 제주로 돌아온다기에, 공항에서 만나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북카페가 목공방 근처라, 호선이 말했던 그 아기 고양이도 잠시 들러 가족을 찾아줄 사진과 영상을 남기고 싶었다.

책방 앞에 차를 세우고 목공방으로 향했다. 철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 작은 그림자가 번개처럼 달려와 내 신발 위에 올라탔다. 부드러운 체온이 전해지는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가 두 팔을 벌려 발목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발톱이 송송 박힐 만큼 아팠지만, 뜻밖의 매달림에 웃음이 터졌다. “아기야, 아프다…” 아픔과 반가움이 뒤섞인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지켜보던 호선은 아기 얼굴 앞에서 손뼉을 크게 쳤다. “짝짝짝!” 하지만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공방 사장님이 놀라 달려와 아기를 들어 구석으로 보냈지만, 구조물 뒤에 숨었던 아이는 도움닫기 하듯 발끝에 힘을 주더니 다시 전력질주로 달려와 매달렸다.


수많은 고양이를 만나왔지만 이렇게 서슴없이 달려드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온몸을 내던지는 이 작고 씩씩한 생명 앞에서, 당황스러움과 미소가 동시에 번졌다.

그도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 박수를 치며 달려드는 아기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세 좋은 아기 맹수와 책방 주인의 기싸움이 목공방 한가운데서 이어졌다.

낯선 발끝에 매달리고, 따뜻한 품에 안겨 마침내 안심한 아기


결국 그의 손에 붙잡힌 아이는 품에 안겼다. 잠시 발버둥 치다 턱 밑을 쓰다듬는 손길에 금세 ‘고롱고롱’ 소리를 냈다. 목재 절단기의 굵은 모터음과 뒤섞인 그 울림은, 마치 심장 속에 모터를 단 듯 깊고 묵직했다.

사장님은 이 아이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들려주었다. 열흘 전, 울음소리를 따라 나가 보니 문 앞에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고양이답지 않게 사람 곁에서 오래 머물렀고, 곁을 떠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발톱까지 곱게 다듬어진 걸 보면, 집에서 지내다 길로 나온 듯했다.


그날만 해도, 내가 이 아이를 입양 보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한 달 전 판포에서 만난 모녀 고양이가 낳은 아홉 아기들의 가족을 찾아주기로 한 참이었으니까. 그런데 아기 맹수는 다시 도움닫기를 하며 속삭였다.

“나를 데려가 주세요.”
고롱고롱 울음이 그렇게 들려왔다.




아기의 사진과 함께 가족 찾는 글을 SNS에 올려 보기로 하고, 나는 민영 씨의 집으로 향했다. 민영 씨가 임시 보호 중인 아기는 스스로 먹지 못해 2~3시간마다 조금씩 강급해야 했다. 내가 머무는 사흘 동안 아기는 서서히 활기를 되찾았고, 민영 씨 역시 건강이 한결 회복됐다. 둘 다 상태가 좋아지자, 나도 마음을 놓고 내 일정으로 향할 수 있었다.


마침 내가 타이틀 애니메이션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 집사〉**의 GV가 제주 시내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에 판포 식당 마당에서 만난 고양이들에게 줄 간식을 전하려 했다. 큰 도로를 달리던 내비게이션은 어느새 좁은 마을길로 안내하더니, 익숙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조수리’. 고롱고롱 모터를 단 ‘아기 맹수’ 고양이가 있는 마을이었다. 작은 섬이라지만, 이렇게 우연히 다시 지나게 되다니 신기했다. 순간, 목공방 사장님이 퇴근하면 홀로 남을 아이가 떠올랐다. 소음과 목재 가루, 날 선 공구들… 작은 몸이 지내기엔 거친 환경이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곧 호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공방 고양이, 다시 보러 가도 될까? 그날은 달려드는 바람에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잖아.”

“웅. 목공방에 이야기해둘게. 예쁘게 담아와서 가족 찾아줘.”


이 방문은 애초에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마치 이 길을 지나게 된 것이 ‘가족을 찾아주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지나가는 길에, 첫날엔 담지 못했던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꼭 기록하고 싶었다.

목공방 안에는 도톰한 이불 위에서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마대 위에 이불을 깔아준 사장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러나 기계음과 날리는 목재 가루가 여전히 눈에 밟혔다.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잠에서 깬 아기가 몸을 쭉 늘려 기지개를 켰다. ‘아는 누나 왔다’는 듯 반갑게 ‘야옹’ 하고 다가왔다. 그날의 용맹함은 사라지고, 볼을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감으며 ‘고롱고롱’ 소리를 한층 크게 냈다.

낯선 잠자리에도, 낯선 사람 곁에서도, 금세 몸을 맡기고 마음을 여는 작은 생명


그날 저녁, 나는 늘 제주에서 묵는 선미 언니의 집으로 향했다. 뉴질랜드에서 10년을 살다 제주에 정착한 언니는, 다리를 다친 고양이 래미를 치료해 가족으로 맞이했지만 몇 달 전 긴 소풍을 떠나보냈다. 아직 새 가족을 들일 마음은 없었지만, 나는 민영 씨가 돌보는 아기 매실이나 판포 아기들의 영상을 보여주며 언니의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다 문득 씩씩하고 맹랑한 목공방 아기가 떠올랐다. 언니 품에 안기면 매일 웃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입양을 권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잠시라도 언니가 기댈 수 있는 그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영상을 보여주자 언니는 웃음을 머금으며 “이렇게 귀여운 애를 누가 두고 갔을까” 하고 안타까워했다. 그 웃음 속에서, 래미가 남기고 간 빈자리가 조금은 채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 마음은 그 순간 자연스레 한 발 더 나아갔다.


“언니, 제주에 예쁜 아기들이 많지만, 이 아이와 함께라면 매일 웃게 될 것 같아. 북카페 갔다가 아기 보고 올까?”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유람위드북스도 오래됐으니 가보자.”

“혹시 모르니까 이동장을 챙겨볼까?”

“그래, 가져가 보자.”


확답을 주고받은 건 아니었다. 다만 가볍게 흘린 마음이 언니의 대답과 맞물려 작은 가능성이 된 순간이었다. 심장을 두드리던 그 매달림이 정말 이 아기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평생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예비 엄마를 모시고 간 날, 나는 조금은 긴장했다. 소풍을 떠난 래미는 점잖고 신사 같은 성격, 장남 재질 고양이였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 천방지축 맹수처럼 굴던 아기의 모습이 떠올랐고, 언니가 그 모습을 직접 본다면 깜짝 놀랄 것 같았다. 아기를 소개하는 내가 오히려 입양 면접을 보는 듯 떨렸다.

점잖고 신사 같은 래미. 눈을 감고 머리를 기대는 순간에도,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에도 늘 품격이 묻어났다.


아저씨에게 안겨 나온 아기는 영락없는 순한 아기였다. 품에서 내려놓자, 주저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첫 만남에서의 맹수 같은 기세는 흔적조차 없었다. 가족의 인연이 될 사람을 알아본 걸까. 어린 눈빛 속엔 천진함이 가득했고, 몸짓은 한없이 장난스러웠다. 그 모습에 내 마음에 맴돌던 걱정은 이내 옅어졌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낯설지 않았던 아기 맹수, 웃음을 불러오는 작은 힘


작은 몸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트럭 밑을 기웃거리고, 금세 달려와 내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언니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가 다시 나와 장난을 걸더니, 모래 위에 앞발로 작은 구멍을 파고 앉았다.

바닥을 뒹굴고, 발끝에 매달리고, 트럭 밑을 오가며 장난치던 작은 몸짓들이 하루를 환하게 물들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는, “여기서도 난 할 거 다 한다옹!” 하는 듯 태연히 소변을 보았다.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모래를 덮는 모습이 어찌나 야무지고 귀여운지,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지었다.


천진스러움과 씩씩함이 뒤섞인 그 장면에 언니의 얼굴이 환하게 풀렸다. 웃음 속에는 이미 답이 담겨 있었다.

“오늘 데려갈까?” 하고 내가 묻자,
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러자.”

마지막으로 남긴 작은 영역표시, 이곳을 기억하겠다는 듯


언니는 목공방 아저씨께 “제가 건강하게 잘 키울게요”라며 인사를 드렸다. 아저씨는 짧은 순간을 함께했을 뿐인데도, 어느새 깊게 정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기가 이 환경에 오래 머무는 게 마음에 걸려 늘 안쓰러웠다고.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공방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어 드렸다. 보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아이가 뒹굴던 마당, 작은 그릇과 남은 사료, 목재 먼지에 덮인 눕던 자리까지 곳곳에 흔적은 선명했다. 아저씨의 얼굴에는 섭섭함과 기쁨이 교차했다.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거라는 안도. 그 두 감정이 겹겹이 어른거리는 표정은, 잠시 침묵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짧았던 만남은 끝났지만, 아기의 발자취와 아저씨의 마음은 오래 남았다.


처음 타는 차, 낯선 길 위에서도 아기는 장난감을 물어뜯으며 신나게 놀았다. 그러던 차 안에 구수한 냄새가 은근히 퍼져왔다. 언니와 나는 서로가 아니라 손사래를 쳤고, 범인은 금세 드러났다. 초면인 엄마 앞에서마저 스스럼없이 마음을 놓는 아기의 천진함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곧 안도와 다짐이 되어, 새로운 가족의 시작을 더욱 따뜻하게 밝혀주었다.

낯선 길 위에도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서던 아기 맹수

그렇게 씩씩한 아기는 웃음을 잃었던 집에 다시 환한 웃음을 불러왔다. 언니 품에 안긴 순간부터 ‘아기 맹수’는 새 이름을 얻었다. 래오. 별빛처럼 반짝이는 이름은 곧 집 안 가득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가 되었다.

하루의 장난과 저녁의 고요 속에, 래오는 빛처럼 자라난다



아기 래오의 작은 발자국이 열어준 문은, 이제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halmangcat/8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계단 위의 고양이 성, 마델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