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집을 찾아 돌아온 발자국, 남겨진 질문과 작은 희망
근무 중 전화벨이 울렸다.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는 K였다.
“작가님, 놀라지 말고 들어. 제리랑 삼색이가 없어졌어.”
“병원에 있던 고양이들이? 무슨 소리야?”
“원장님이 출근했는데, 케이지가 비어 있었대. 화장실 창문이 열려 있었고… 아마 거기로 나간 것 같아.”
병원이 있던 곳은 민가도 드문 오름 아래였다. 끝없이 이어진 감귤하우스와 철제 자재가 쌓인 창고만이 황량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날 제주는 드물게도 영하의 날씨, 쉼 없이 거센 바람과 눈발이쳤다. 바람은 살을 에듯 차갑고, 눈은 얼굴을 때리듯 흩날렸다. 작은 고양이 두 마리가 그 속에 홀로 흩어졌다는 상상만으로 심장이 서늘하게 굳었다. 아이들이 이 추위를 버틸 수 있을까. 하늘조차 원망스러웠다.
실종된 고양이는 소품점의 마스코트 제리와 그녀의 딸 삼색이었다. 소품점은 고양이들의 집 같은 공간이었다. 소품점으로 향하는 골목 바닥에는 고양이 발자국 무늬가 하나하나 이어져 있었고, 그 길은 마당까지 닿아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이 고양이들의 자리임을 알려주듯, 작은 발자국들이 손님을 이끌었다.
마당 한켠에는 ‘길고양이 급식소’라는 글씨가 적힌 정성을 들여 만든 나무집이 놓여 있었고, 사료와 물그릇이 가지런히 놓였다. 햇살이 들면 아이들은 그곳에서 몸을 뉘고 졸았고, 손님들은 그 풍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미소를 지었다.
제리는 책과 굿즈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손님을 맞았고, 아기 때부터 실내에서 지내며 세 번의 출산과 산후조리를 상점 안에서 했다.
제리는 익살스러운 표정과 애교 많은 성격으로 사람들을 웃게 했고, 소품점은 제리를 단순한 마스코트로 두지 않았다. 손님에게 나눠주는 쿠폰에 제리의 사진을 넣었고, 달력까지 제작해 판매하며 고양이들을 마당냥으로 소개했다. 제리는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라, 공간을 상징하는 얼굴이었다.
나 또한 전시에 제리의 사진을 걸었다. 귀여운 표정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얼굴마다 잔잔한 웃음을 번지게 했다.
그러나 소품점은 문을 닫았고, 1년 뒤 건물은 공사에 들어갔다. 이전하며 데려갔으리라 믿었던 제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마당 고양이 대부분은 다른 자리로 흩어져갔지만, 제리와 삼색이, 몇몇 아이들은 무너져가는 건물 뒤편 대나무숲에 몸을 의탁하며 공사장을 떠나지 못했다. 두 아이 모두 구내염에 시달려 밥을 먹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이 소식을 전해준 K는 애월에서 ‘바람이 머무는 곳’ 카페를 운영하며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돌보던 친구였다. 지금은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지만, 그녀 또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이 든 대장고양이 호동이가 카페 안으로 들어와 머물며 마스코트가 되었고, 마당에는 드나드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카페를 접고 떠나면서 그녀는 호동이를 입양 보냈고, 손타는 몇몇 고양이는 가족을 찾아주었다. 남은 아이들의 밥자리가 끊기지 않도록 다음 주인에게 사료를 보내며 급식소 유지를 부탁했다. 카페에서 구조해 온 강아지 여섯 마리도 끝내 그녀와 함께 캄보디아로 건너갔다.
나 또한 그녀가 열던 유기동물 돕기 바자회에 참여하며 제주 곳곳의 고양이 공존 공간을 기록해 왔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같은 마음에 닿아 있었다.
우리는 제리를 반드시 입양으로 보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삼색이도 애교 많고 사람 곁에 잘 머물던 아이였지만, 성묘 입양은 언제나 높은 벽이었다. 그래서 우선 치료를 받은 뒤 원래의 영역으로 돌려보내되, 혹시라도 새로운 가족이 나타난다면 그 가능성은 열어두기로 했다. 마침 동물단체의 후원으로 치료비가 마련되었고, 두 아이는 차례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창문 하나의 허술함이 두 생명을 눈보라 속으로 내몰았다. 차가운 바람이 문틈을 파고들 듯 마음을 흔들었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를 타야 했던 나는 밤새 발만 동동 굴렀다.
그 시간, 함덕에서는 숨숨집 래오엄마가, 월정리에서는 언니옷장 언니가 이름을 부르며 캄캄한 길을 헤매고 있었다. 치료비를 도와주었던 제제프렌즈는 포획틀을 마련해 들고 와 주었고, 김녕의 브릭스제주 송이님은 공항으로 나와 함께해 주었다. 이미 현장에서는 K의 지인들과 두 분의 캣맘이 수색을 이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 대열에 합류했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날 우리는 한 가지 마음으로 묶여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수색 끝에, 제리가 먼저 발견되었다. 포크레인과 파이프가 쌓인 공터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스스로 몸을 내어준 것이다. 사람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 같은 귀환이었다.
다시 병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송이님이 제리를 브릭스제주로 데려가 정성껏 보살펴 주었고, 성산의 슬로우트립 한카피님이 임시보호처를 연결해 주었다. 반려묘 화장실과 사료까지 챙겨주며 따뜻한 마음을 더해 주었다. 임시보호자는 마침 육지에 머무는 상황이라, 나는 그 집에서 며칠을 머물며 낮에는 삼색이를 찾고, 밤에는 제리 곁을 지켰다.
얼어붙은 바람과 흩날리는 눈발이 뒤엉킨 수색길은 늘 질척였다. 장화를 신고 걸어야 했고, 옷을 겹겹이 껴입고 핫팩을 붙여도 30분만 지나면 손발이 꽝꽝 얼어붙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고양이 탐정이 함께 수색하며, “엄마 고양이의 목소리를 들려주면 딸이 반응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제리의 울음소리를 녹음해 휴대폰에 담고, 눈 덮인 밭과 자재 더미 사이에서 그 소리를 재생하며 귀를 기울였다. 혹시라도 삼색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나타나주지 않을까, 그 희망 하나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낮에는 눈 덮인 밭을 헤매며 삼색이를 찾고, 밤이면 제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빨간 장화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기운을 보태줄게” 하고 말하는 듯했고, 어느 날은 바닥에 드러누워 배를 보이며 애교를 부렸다. 불안과 추위 속에서도, 제리는 내 곁에서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즈음, 소품점 인근에서 아이들을 가끔 챙겨주시던 카페시오 사장님도 수색에 힘을 보태주었다. 나는 더 머물러야 했기에 남았고, 그녀는 돌아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는 입고 있던 롱패딩을 내게 벗어주었다. 눈보라와 우박이 쏟아지던 날, 덜덜 떨며 수색하던 내게 건넨 그 옷은 단순한 외투가 아니었다. 추위도, 마음의 떨림도 함께 녹여준 온기였다.
그렇게 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진흙이 잔뜩 묻은 장화를 신고 시내까지 나와야 했다. 그러나 택시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한 번은 매서운 추위 속에서 40분 가까이 길 위에 서서 덜덜 떨며 기다려야 했다. 결국 빨간 장화를 신은 채, 다시 제리에게 돌아갔다. 떨리던 몸이 가라앉고,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
포획틀에는 다른 고양이나 오소리가 들어오기도 했으나, 정작 삼색이의 모습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고양이 탐정은 2박 3일의 수색을 마치고 먼저 돌아갔고, 나도 일주일 만에 육지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의 수색은 K의 카페 고양이들을 돌보던 건축가와 그의 지인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을 챙기던 캣맘이 이어갔다.
실종 2주가 지난 어느 날,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소품점 자리에서 800미터 떨어진 공터, 컨테이너 건물 아래에서 찍힌 고양이였다. 발견한 캣맘은 삼색이와 닮았지만 다른 고양이라고 여긴 듯했다. 실종된 병원은 무려 15km나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러나 사진 속 무늬를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수척한 몸, 악화된 구내염. 분명 삼색이였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새끼들을 품었던 마당을 향해 걸어온 것이다. 소품점 계정 속 사진처럼 실내에서 산후조리를 하며 사람의 손길을 받았던 기억, 그 모든 애착이 삼색이를 다시 불러들였을 것이다. 거센 바람과 눈발을 헤치며 15km를 걸어온 길은 단순한 영역 본능을 넘어 고양이의 기억과 집에 대한 그리움이 만든 여정이었다.
그러나 삼색이가 마침내 닿은 곳은 이미 사라진 집이었다. 그가 태어나고 새끼를 키우며 지냈던 마당은 무너져 공사 현장으로 변해 있었고, 익숙했던 자리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삼색이는 그 주변을 맴돌다 끝내 밀려나, 삭막한 컨테이너 밑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사라진 집을 좇아, 15km를 걸어온 길은 한 마리 고양이의 본능이자 그가 끝내 지키려 했던 삶의 자리였다. 지도 위에서는 짧아 보일 수 있는 거리였지만, 작은 고양이에게는 절벽 끝을 딛는 발걸음이었다. 삼색이는 태어난 영역으로 돌아왔지만, 익숙하던 마당 대신 삭막한 공터에 남아 있었다. 경계심은 높아져 있었고, 사람 곁에서 손을 타며 애교 많던 아이가 이제는 수척한 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우리가 ‘치료라도 해주자’는 마음으로 구조를 결정했지만, 남은 건 상처뿐이라는 죄책감이 깊게 남았다.
그 여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수술 직후의 몸, 마취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어둠을 뚫고 길을 나섰다는 사실은 더욱 마음을 저리게 했다. 그 마음은 단순한 미안함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장면을 잊지 않으려 그림으로 남겼다.
삼색이가 돌아온 것은 기적이었지만, 동시에 묵직한 질문을 남겼다. 제주의 마당을 내어주고 밥과 물을 챙겨주는 공간들은 여전히 고맙고 소중하다. 그 덕분에 수많은 고양이들이 굶주림을 면하고, 사람 곁에서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나 제리의 경우는 달랐다. 아기 때부터 실내에서 자라며 ‘엄마껌딱지’라 불렸고, 손님을 맞는 얼굴이자 공간의 상징이 되었다. 이미 가족처럼 길러진 아이였다.
마당의 배려가 고양이에게 삶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면, 제리 같은 존재는 과연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 아이를 단순히 ‘마당 고양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책임은 누구의 몫일까.
험난한 15km 길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마리 고양이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어디까지 사랑을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그 물음은 무겁지만, 결국 더 나은 공존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제리는 임시보호처에서 하영 님의 다정한 보살핌을 받다가, 마침내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처음 마주한 날, 엄마가 될 분은 눈물을 흘리며 제리를 품었다. 많은 사람들의 연대 끝에, 제리는 다시 ‘집’을 찾았다.
삼색이의 여정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무겁다.
그러나 제리의 결말은 작은 희망을 더했다.
우리가 끝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실을, 아이들이 몸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눈보라를 뚫고 15km를 걸어온 삼색이.
그러나 그 귀환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이어지는 길 위에서 나는 뜻밖의 풍경과, 삼색이가 남긴 또 다른 삶의 자취를 만나게 된다.
➡️ 2부, 고양이들이 만든 무대, 삼색이가 머문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