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텔라가 아니라 크루엘라예요
*이 글은 독립 음악 매거진 프로젝트 gem의 <행다의 엔딩크레딧> 코너를 발췌한 글입니다.
*곡 명(하이퍼링크)을 클릭하시면 유튜브에서 음악을 들어볼 수 있어요.
*이 글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호는 어쩌면 영화 음악 소개를 가장한 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편하게 이야기해 볼까 해요. 사람은 모두 특이하거나 특별한 점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드러내며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차이 정도가 있지 않을까요. 다수의 이들에게 당연한 것이 내겐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내가 특별하거나 특이하다고 느끼는 지점들이 남들이 생각하기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은 그런 크고 작은 특별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다른 누구도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다는 건, 그에 대해 누군가와 완벽히 소통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특별함’이 때로는 성가시게도, 버겁게도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파악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겠죠. 크루엘라를 보며 든 생각도 비슷했어요.
<크루엘라>는 월트 디즈니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의 스핀오프(파생작, 번외작을 뜻함) 실사영화입니다. 달마시안 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빌런인 크루엘라 드 빌(Cruella De vil)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다뤄요. 개들은 약간의 감초 역할만 하는 정도랍니다. 포스터를 한 번이라도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흑과 백으로 갈라진 주인공의 머리와 새빨간 글씨가 인상적입니다. 포스터를 지나치듯 본 사람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남을 만큼 대비와 강조가 확실해요.
저는 <101마리 달마시안 개>의 열성 팬도 아니고, <크루엘라>라는 영화가 스핀오프라는 것 또한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알게 되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크루엘라라는 인물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영화를 보게 된 거죠. 어찌 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영화의 결말을 모르고 보았기 때문인지 크루엘라가 빌런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조금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에겐 크루엘라가 디즈니 실사영화보다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 전기(?) 정도의 느낌이었기 때문이에요. 동화의 실사와 드라마라는 장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은 감안하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동화 특유의 행복한 결말이나, 인물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다소 억지스러운) 서사,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훅훅 뛰어넘는 전개 등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루엘라가 잘 만든 디즈니 빌런 실사영화라는 평을 듣는 이유는 앞서 나열한 억지스럽고 아쉬운 부분을 눈감고 볼 수 있을 만큼의 ‘완벽한 화려함’ 덕분입니다. 영화 내내 70년대 영국을 주름잡았던 패션과 음악의 향연이 펼쳐지기 때문이지요. 패션계의 이단아로 등장하는 크루엘라의 강력한 존재감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아찔할 만큼 화려한 글램 록 패션과 Bee Gees, Queen, Blondie, The Beatles 등 60-70년대 영국, 미국의 소프트 록(Soft Rock), 펑크 록(Funk Rock), 글램 록(Glam Rock)의 역사 그 자체인 뮤지션들의 음악을 대거 사용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의 음울하고 과격한 분위기를 상쇄하고, 빌런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할 목적으로 Nancy Sinatra(낸시 시나트라)와 같은 뮤지션의 60년대 포크 음악을 사용하기도 해요.
태어나길 반은 흰 머리 반은 검은 머리로 태어났고, 남들보다 뛰어난 미적 감각을 가졌고, 다른 이들에겐 그저 평범한 옷들이 너무나도 지루했던 크루엘라는 가는 곳마다 본의 아니게 사고를 치며 살아갑니다. 그런 크루엘라가 걱정되었던 어머니는 크루엘라에게 ‘에스텔라’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는 개성을 죽이고 다른 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것을 당부하죠. 그럴 만도 했던 것이, 크루엘라의 재능은 감당하기 무서울 정도로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크루엘라가 걱정되어 개성을 죽이라 꾸짖으면서도, 범상치 않은 딸의 재능을 억누르는 것이 못내 미안했던 어머니는 끝내 크루엘라가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 당시 패션의 중심지였던 런던으로 딸을 데려갈 것을 다짐합니다.
런던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런던에서 크루엘라를 부탁할 의문의 인물에게 잠깐 다녀올 동안 차 안에 꼼짝 말고 있어야 한다고 크루엘라에게 신신당부를 해요. 그러나 호기심 또한 남달랐던 크루엘라는 그 말을 까맣게 잊고 차 안을 벗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달마시안 개들을 만나 쫓기기 시작해요. 쫓기다 다다른 곳은 어머니와 의문의 인물이 대화를 나누던 절벽이었고, 크루엘라가 개들을 피해 숨은 사이 그녀를 쫓던 개들은 그대로 어머니에게 돌진합니다. 어머니는 그대로 절벽에서 떨어져 돌아가시게 돼요. 크루엘라는 모든 것이 본인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철저히 개성을 죽이고 살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사고로 잃고 홀로 런던에 도착한 크루엘라는 가출 청소년인 재스퍼, 호러스를 만나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요. 크루엘라의 남다른 패션 감각은 완벽한 소매치기를 위한 의상을 만드는 일에 사용됩니다. 아무런 연고 없는 이들이 모여 마음으로 가족이 되고, 소매치기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는 설정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떠오르기도 해요. 영화의 3분의 1은 크루엘라가 자신의 본모습을 억누르고 친절한 에스텔라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크루엘라는 재스퍼, 호러스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적으로 대하려 노력하지요.
Nancy Sinatra -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크루엘라가 어머니가 바라던 삶을 살아가는 모습, 즉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곡과 특이하고 서늘한 그녀 본연의 성격을 보여주는 곡들로 나눌 수 있어요.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의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은 마치 거리를 활보하는 듯한 포크 송입니다. 포크라는 장르에서 유추할 수 있듯 크루엘라가 가족과 함께할 때 언뜻 보이는 따뜻한 모습을 표현하는 곡이에요. 멋진 부츠를 신고 빌딩이 빼곡한 대로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곡과 어울립니다. 주로 재스퍼, 호러스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 익살맞게 소매치기 작전을 수행하는 장면 등에 사용됩니다.
Bee Gees의 ‘Whisper Whisper’는 1969년 발매된 앨범 <Odessa>에 삽입된 곡으로, 날아갈 듯 경쾌하고 가벼운 소프트 록(Soft Rock)이에요. 이 또한 ‘soft’라는 장르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주인공의 순한 맛(?)을 표현합니다. 똑똑하고 외로운 크루엘라와 조금 바보 같지만 따뜻한 재스퍼, 호러스가 의외의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 모습이 이 곡과 닮았어요. 크루엘라의 천재적인 재능이 아까워 소매치기로 몰래 서류를 조작해 그녀가 꿈꾸던 백화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철저히 본인을 억누르며 살아가던 크루엘라는 백화점 취업 사기(?)를 통해 패션계의 거물인 바로니스를 만나게 돼요. 잊고 있던 스스로의 개성을 깨달아가며 사운드트랙 또한 조금씩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놀랄 만큼 자신과 성격도, 재능도 닮은 바로니스를 마주하며 크루엘라는 억눌렀던 개성을 표출하기 시작해요. 바로니스에게서 점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다른 이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직원들을 디자인 뽑아내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바로니스를 보며 크루엘라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낍니다. 바로니스가 지나가듯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죽여 없애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녀의 손에 들린 어머니의 목걸이를 보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기 시작하죠.
크루엘라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평범하게, 조화롭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건,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은 놀라웠습니다. 그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의문의 인물이 바로 바로니스였던 거죠. 그녀를 쫓다 어머니를 절벽으로 떨어뜨린 달마시안 강아지들 역시, 바로니스가 어머니를 죽이라 지시해 그리 한 것이었습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크루엘라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마지막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사랑했던 어머니를 죽인 바로니스가, 본인의 친엄마라는 사실을요.
크루엘라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이후 더이상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거부합니다. “에스텔라가 아니고 크루엘라야”라고 단호히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더 이상 본모습을 숨기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복수를 위해 일말의 따뜻함도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 이면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어요. 크루엘라가 진정한 빌런으로 거듭남에 따라 사운드트랙 역시 포크, 소프트 록에서 화려함의 끝인 글램 록(Glam Rock)으로 옮겨 가요. 삽입되는 노래뿐만 아니라, 크루엘라의 조력자인 빈티지 옷가게 청년의 중성적이고 화려한 패션, 기이하고 파격적인 크루엘라만의 패션쇼 퍼포먼스에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퀸(Queen)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Queen의 ‘Stone Cold Crazy’는 퀸의 초기 글램 록을 보여주는 곡으로, 크루엘라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려함과 기이함, 중성적임, 일상적인 것들과는 매우 거리가 먼 데서 오는 고독함을 보여줍니다. ‘Stone Cold Crazy’는 원래 느린 곡으로 기획되었으나 브라이언이 곡을 빠르게 하자는 의견을 내어 음반 작업 중 속도감 있는 곡으로 개조되었다고 해요. 곡에 대한 TMI를 찾아보며 ‘크루엘라가 스스로 에스텔라로 살기를 거부했지만 재스퍼, 호러스와 함께하며 배운 많은 감정들이 크루엘라가 인간적으로 이해 가능한 빌런이 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londie - 'One Way or Another'
Blondie의 ‘One Way or Another’은 시작부터 존재감 강력한 기타 소리로 정신이 번쩍 드는 곡입니다. Blondie는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해 초창기 미국의 펑크 록(Funk Rock)과 뉴 웨이브 신을 개척한 밴드에요. 세상에 반기를 들듯 전에 없던 패션, 전에 없던 문화를 거침없이 대중들에게 소개한 크루엘라에 걸맞게 대부분의 사운드트랙은 당대에 그야말로 센세이션했던 뮤지션들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The Clash - 'Should I Stay or Should I Go'
The Clash 역시 1976년 결성된 영국의 록 밴드로, 펑크에 레게, 댄스 등의 요소를 섞어 실험적인 시도를 거듭해 다양한 스타일의 펑크 록(Funk Rock)을 선보였어요. 또한 The Clash는 인종차별, 인권문제 등 사회 참여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습니다. Rock이라는 장르에서 연상되는 질서 파괴, 거침없음, 새로운 시대의 개척과 같은 속성들과 크루엘라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성격, 그녀가 선도하는 패션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볼 수 있어요. The Clash의 ‘Should I Stay or Should I Go’는 1982년 발매된 앨범 <Combat Rock>에 수록된 곡으로, 60-70년대의 록에 비해서는 비교적 정돈되고 희석된 느낌을 줍니다.
Ike & Tina Turner - 'Come Together'
‘Come Together’는 The Beatles의 ‘Come Together’을 Ike & Tina Turner가 재해석한 곡입니다. 여성 빌런의 이야기에 몰입감을 더하기 위해 여성 보컬이 커버한 곡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어요. Come Together는 난해한 가사로 유명한데요, 비틀즈 멤버 각자를 묘사했다는 설, 마약을 한 상태에서 보이는 모습을 썼다는 설 등이 있어요.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가사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가 기이합니다. 다만 몇 줄의 가사에서 왜 크루엘라에 이 곡이 삽입되었는지 추측해 볼 만 했어요.
He say I know you, you know me
그가 말해. 난 너를 알고, 너도 나를 안다고
One thing I can tell you is you got to be free
내가 네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넌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야
Come together right now
모두 모여, 지금 당장
Over me
내 곁으로
날 때부터 잘났고, 날 때부터 남들과 달랐을 뿐인데 세상은 모두 틀렸다고 손가락질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살아남는 방식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 만큼 똑똑한 빌런 크루엘라에게 재스퍼, 호러스라는 가족의 존재는 어찌 보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동화적인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변한 후 저지르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과 이기적인 행동에도 재스퍼와 호러스는 크루엘라의 “가족이잖아”라는 한 마디에 사르르 마음이 녹고 말지요. 터무니없을 정도로 현실성이 없어 헛웃음이 났지만 한 편으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을 그대로 내보여 인정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그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본 듯했기 때문이에요. 크루엘라는 다소 과격하고 자극적인 특이함이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크고 작은 특이함은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사회의 흐름이나 제도와 거리가 멀다면 크루엘라가 에스텔라로 사는 것을 택했듯 그를 숨기며 살아갈 확률이 높지요. 그녀에게 제 모습을 투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 역시 에스텔라로 살아가며 재스퍼와 호러스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크루엘라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거예요. 이 글을 빌려 스스로를 부정하며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는 동안에도 새벽 내내 본인의 일처럼 과제를 도와주셨던 분들,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주셨던 분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든 사랑으로 응원해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이 다른 에스텔라들에게 위로와 소소한 삶의 낙이 되기를 바라요. 글램 록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건 그만큼 특이하고 특별했기 때문이지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크고 작은 특별함이 환영받는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하고 믿는다는 동화 같은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크루엘라
개봉 | 2021.05.26
감독 | 크레이그 길레스피(Craig Gillespie)
주연 | 엠마 스톤(Emma Stone), 크루엘라 역
음악 | 니콜라스 브리텔(Nicholas Britell), 니콜라스 카라카차니스(Nicolas Karakatsanis)
추신. 단지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고 즐길 뿐 전공자가 아니기에 다소 허술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여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셨다면 언제든 댓글로 피드백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