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천남성과 따뜻한 밥 한 숟갈

by 허건

왕과 사는 남자를 봤다. 볼 생각은 없었는데, 박준의 산문집을 읽다가 어처구니없는 박준의 사연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연은 이렇다. 박준이 친구들과 겨울에 한라산을 등반하다, 하얀 눈밭에 빨갛고 영롱한 한 떨기 열매를 발견하게 된다. 그 열매는 먹음직스럽게 고운 빛이 마치 산딸기처럼 생겨서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그 순진한 시인은 열매를 따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입에 넣고 씹었다고 한다.

'열매를 깨물자 과즙이 터져 나왔고 나의 비명도 함께 터져 나왔다.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아리고 맵고 뜨겁고 따가운 감각이 입 전체를 휘감았다.'

이후 나온 이야기는 나를 실소하게 만들었다. 그 열매의 이름은 바로 '천남성'으로 조선시대 때 사약의 재료였다고 한다. 열매를 씹은 고통에 삼키지 않고 바로 뱉은 박준 시인은 다행히 살았다. 대신 입이 모두 헐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천남성이라는 열매에 대해 찾아보고 옛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천남성을 재료로 하는 사약에 얽힌 이야기다. 조선시대 사약은 죽을 사가 아닌 줄 사자를 쓴다고 한다. 바로 왕이 하사하는 약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사약을 마시면 피를 토하고 죽는 건 아니라고 한다. 사약의 약효가 위장 곳곳에 전달될 때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단종은 사약을 마시고 약기운이 빨리 돌게 하기 위해 군불을 땐 따뜻한 방에서 죽음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 순진한 시인의 재밌는 사연을 읽고, 요새 유행하는 '왕과 사는 남자'가 보고 싶어졌다. 사약을 마시고 군불을 땐 따뜻한 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나올까. 이 영화가 슬픈 이유는 그 장면 때문인가, 궁금해졌다.
2월에 개봉한 영화인데 한 달이 지나도록 아직도 상영을 하고 있고,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고도 하고, 단종의 죽음이 궁금하기도 하고, 영화를 안 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말 단종이 복권에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참 아이러니했다. 내 옆에 앉은 여중생 또래의 여자아이는 훌쩍훌쩍 코를 먹으며 울고 있었다. 나는 눈물 한 방울 안 나왔다. 사약을 먹고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금성대군이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은 나왔지만)
현생이 힘드니 영화를 봐도 눈물이 안 나온다. 내 인생이 더 슬프다. 그러나 가장 마음이 아픈 건, 어떤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고, 아니 노력할 기회조차 없었던 단종의 무력함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 무력함과 절망감은 내게 충분히 다가왔다. 그 무력함의 이유는 한명회 역할을 한 유지태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마리 살쾡이처럼 앙칼지고, 그러나 이 배역을 위해 살집을 찌웠는지 엄청나게 거대한 떡대(유지태는 원래 종족이 다른 거대한 체형을 가지고 있다). 유지태의 얼굴을 보면 감히 덤빌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단종이었다면, 유지태의 얼굴을 보자마자 개장수 만난 똥개처럼 오줌을 지렸을 것 같다.
그러나 단종은 그러지 않았다. 단종은 영화 속에서 호랑이의 두개골에 화살을 박으며 그 용맹함을 과시했다. 영월에서의 삶은 단종의 눈빛을 생기 있게 만들었고, 그 생기는 다음 목표를 위한 각오를 하게 만들었다. 상황을 역전시킬 에너지를 채운 것이다.

무력함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안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있고만 싶은 심정. 그러나 삶은 언제나 무력하진 않다. 나에게도 영월 광천골과 같은 사람들이 있고, 에너지를 주는 일들이 있다. 그 에너지를 받을지 안 받을지는 나의 선택이다. 영월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밥상을 물린 단종처럼.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노력과 사랑을 몸소 체험하며 따뜻한 밥을 맛있게 떠먹은 단종처럼.

비록 현실은 비참하게 끝났을지라도, 역사는 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순결한지.
오늘은 따뜻한 밥 한 숟갈 떠먹어야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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