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애, 눈물을 마시는 새
사랑의 감정은 항상 미안함을 달고 다닌다. 주고 싶지만 줄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 이별 후 나는 언제나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모자라서...', '내가 나쁜 놈이야...'. 어떤 미안함은 후회 속에서 자랐지만 어떤 미안함은 내가 편해지려고 뱉은 일종의 책임전가였다. 미안하다고 말해버리고 내 후회와 자책의 짐을 상대에게 지우는 것이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으므로 그 짐을 떠넘기고 가벼워진다. 여태 그렇게 살아왔다.
이승우의 소설 '사랑의 생애'를 읽다 보면 사랑의 생애에 대해 현미경으로 관찰한 것처럼 구구절절한 감정의 변화, 인지, 사유가 나온다. 너무 구구절절해서 읽기가 힘든 점도 있지만, 잘 읽다 보면 뼈를 때리는 구절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랑이 끝난 후의 감정을 나는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싶어졌다. 사랑할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나는 기꺼이 관찰할 생각이다.
그렇게 분석한 나의 사랑의 패턴은 항상 미안함으로 귀결된다. 상대에게 줄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미안하다. 누군가는 내게 표현을 원했고, 누군가는 내게 공감을 원했고, 누군가는 내게 안정을 원했고, 누군가는 내게 믿음을 원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엇박자로 원한 것을 주었다. 표현을 원했던 사람에게 안정을 줬고, 믿음을 원한 사람에게 표현을 주었다. 잘못된 오답노트를 가지고, 새로운 문제를 계속 풀어나간 것이다.
더 이상 미안하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는 말도 지친다. 미안하다는 말로 퉁치는 나 자신에게 지친다. 언제까지 실수만 반복하고 사는 걸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킨다.'
이런 명언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 지독한 불안과 불신이 날 영원히 성장시키지 못할 것만 같은 절망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 때가 아니면 언제 눈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까?
정호승의 시에서 그는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나도 눈물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했다. 나 스스로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오만하고 건방지게도 내가 채우지 못한 것들을 상대를 통해 채우려고 했다. 상대에게 내 자격지심을 투사했다.
그러니 더 이상 그러지 말아야지. 이 마음 하나 가지고 살아야겠다. 모자라다는 핑계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지.
이렇게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사랑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기쁨과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 나는 나를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은 주는 거니깐, 그저 주는 거니깐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그 사람에게 많이 줄 수 있어서, 더 이상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한계를 느낄 때까지 줄 수 있어서 난 정말 슬퍼도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 글을 쓴다고 했잖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거 같아서 매일 글을 써요. 못 견디겠는 건, 내가 자기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알 것만 같아서. 정말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주기로 약속했는데, 눈먼 사랑에 자기한테 상처를 준지도 모르고 직진했습니다. 후회가 소용없다는 거 알아요.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죠. 그런데 자기 만난 건 정말 후회하지 않아. 진짜 행복했거든.
시간이 흐르면 나도, 당신도 조금은 나아지겠죠. 내가 치유해주지 못한 마음을 시간이 치유해 주길 바랄게요.
예전에도 '결국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잖아요. 이제 내 짐을 더 이상 자기에게 넘기지 않고, 나 스스로 소화하는 법을 연습할게요. 그렇게 사랑할게요.
내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났으면 좋겠다.
"우리는 멀리 돌아왔으나, 덕분에 서로의 어둠을 지켜보는 법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