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뇨끼 먹은 날
홍대에서 뇨끼를 먹고 그녀와 근처 카페에 가자고 했다. 무슨 카페를 갈지 지도를 보며 고민했다. 멀지 않고 분위기가 좋은 곳으로. 모든 데이트 코스를 내가 꿰고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문찐(문화 찐따)이었던 나는 그녀가 뭘 좋아할지 몰라 그녀에게 의지하곤 했다.
그녀는 언제나 적재적소의 장소를 잘 찾는 능력이 있었다. 어디든 많이 다녀봤고, 안 가본 곳이어도 네이버 후기를 찾아보고 평이 좋은 곳을 골랐다.
실제로 그녀가 가자고 했던 곳을 가면 만족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타율은 100% 홈런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녀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점점 노력을 안 했다고 보아도 좋다. 그녀가 혼자 다 할 줄 아니까,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게 더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사랑한다는 말과 표현, 웃음뿐이었다.
그날은 문득 그녀도 내게 기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대 길을 잘 모르던 나이지만 네이버 지도를 켜고 나를 따라오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오빠 믿지?"
연상이었던 그녀에게 '오빠'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 마법의 단어 하나만 있으면, 그녀를 온전히 품어줄 넓은 그릇을 가진 남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었으니까.
홍대 거리를 손잡고 걸으며 그녀와 알콩달콩 떠들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걷는 건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었다. 손을 마주 잡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건, 길 위에서뿐만이 아닐 거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우리가 함께할 날들이 앞으로도 이렇게 이어질 것 같은 느낌. 길을 잃거나 헤매도 함께 손잡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
나는 카페를 찾을 생각은 잊은 채,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그녀의 예쁜 얼굴, 목소리, 머릿결에서 풍기는 감미로운 향기. 지금 이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행복한 망상.
한 사람이 앞서가면 다른 한 사람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동행이란 발걸음을 맞추는 일이지만, 나의 마음은 물리적인 속도를 잊은 채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나는 이미 우리 관계의 결말 근처까지 혼자 뛰어갔다가, 길을 잃고서야 뒤를 돌아본 셈이었다. 그러자 문득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지나쳤다. 우리 너무 멀리 와버렸어."
"에이~ 자기 믿고 따라오라더니."
원래 가려던 곳보다 한참을 더 멀리 지나쳐 버렸다. 그녀는 실망한 기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서 나는 내게 더 실망해 버렸다.
앞서 가던 사람은 그녀였고,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따라가고 있었음을,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호기롭게 외치던 나를 믿으라는 말은 생명력을 잃었다.
그녀는 앞을 봤고,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그녀만 바라보느라 길을 찾을 수 없었고, 그녀는 언제나 주변을 잘 살피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혼자 고심했다.
길을 못 찾는 건 홍대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관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나는 그녀의 말에 기댔다. 나는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내 손을 무겁게 잡아끌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내 자책은 단순히 길을 못 찾아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믿어달라 얘기해 놓고 믿음을 주지 못한 것.
믿음을 구걸해 놓고 믿을 만한 구석을 보이지 못한 것. 사랑은 냉철한 이성 위에서 쌓아가는 믿음의 성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온도차 속에서 우리는 간극을 맞출 수 없었다. 그녀가 냉정했다는 건 아니다. 나 홀로 불타올라서 그녀를 아프게 했다는 의미다. 그 뜨거움은 그녀를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상대라는 타자성을 무시한 채 내 감정의 속도만 밀어붙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의 양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뜨거워야만 살아있다고 느끼는 내 가여운 사랑의 속성이 사랑을 구걸하고, 믿음을 구걸한다. 그건 상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한 것도 아닌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게 되어 버림받은 사랑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받기 위해 타인의 확신을 갈구하는 구걸이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데 누가 나를 믿어줄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 줄까.
반대로 말하면
내가 나를 믿는데 누가 나를 못 믿을까.
내가 나를 사랑하는데 너라고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믿게 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믿을 것.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사랑할 것.
길을 잃은 그날, 우리의 사랑도 길을 잃었다. 결국 다른 카페에 가긴 했지만, 원래 가려던 곳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날 길을 잃은 내게 실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내게 실망하고 내가 나를 못 믿게 되자 끝없이 길을 헤매게 된 것이다.
지도는 내 손에 있었지만, 내 눈은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담긴 나의 확신만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카페가 아니라 '우리'라는 목적지를 지나쳐버린 것이다.
답 없이 헤매고 그녀에게 기대려고만 하는 내 모습이 헤어지는 날까지의 내 모습이었다.
그녀가 떠나고 그녀가 그녀만의 길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게 내가 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별의 순간이 찾아와야만 사랑의 진정한 깊이를 알 수 있다는 말. 나는 왜 바보처럼 후회할까.
아직도 나는 길을 잃은 그날처럼 그녀의 예쁜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다시 만나도 뜨겁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불타는 뜨거움에 눈이 멀어서 그녀에게 상처를 주느니, 만나지 않는 게 그녀를 위한 길임을 잘 안다.
이젠 그녀의 손을 잡지 않고도 내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렇게 길을 찾아가다 우리의 교차로가 한 번 더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그때 다시 만난다면 내 손을 잡아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