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문학관

"빈집을 채우는 영원한 청춘의 언어"

by 보라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영원한 청춘으로 남았다.


그의 시는 기이하고 금방이라도 쏟아 내릴 것 같은 소나기를 가득 품은 회색빛 구름 같다.

그의 시를 어느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났다. 뭐가 그렇게도 암울하고 절절할까 싶었다.

거리의 고통을 노래한 "입속의 검은 잎"은 마음이 아리면서도 강렬한 인상으로 오랫동안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엄마 걱정"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 홀로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던 그의 어릴 적 쓸쓸하고 가난한 삶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기형도 문학관 공원


시인 기형도는 어린 시절부터 타계할 때까지 지금의 광명시 소하동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가계 전체가 가난하게 살게 된 일, 바로 위 누나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일, 안개가 많이 끼는 안양천이라는 주변 환경 등은 시인의 내면에 깊이 체화되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수준이 남달랐던 그는 연세대학교 정법대학에 입학하여 '연세문학회'와 더불어 안양지역의 '수리 시'동인에 참여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었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작품 활동을 하며 '시운동' 동인을 비롯해 많은 선후배와 교류하였다. 시집 발간을 준비하던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의 심야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같은 해 5월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다. [기형도 문학관]


기형도 문학관 풍경


1층 전시실은 여덟 개의 테마로 되어있다.

1. 시인 기형도
기형도의 삶과 문학 등 시인의 생애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 유년의 윗목
시인의 유년 시절을 중심으로 당시의 추억이 담긴 물건과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안개의 강
등단작 [안개]를 텍스트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4. 은백양의 숲
문학청년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의 동인 활동 및 대학시절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5. 저녁 정거장
등단 이후, 활발한 문단활동과 신민 기자로 일했던 일상의 단면을 볼 수 있다.
6. 빈집"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빈집]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7. 더 넓게 더 멀리
시인을 추억하는 지인들의 인터뷰와 평문을 말날 수 있다.
8.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생전 시인의 모습과 소하동에 위치했던 옛집의 사진, 노트에 그린 캐리커쳐 등을 볼 수 있다.

[기형도 문학관]


기형도 문학관 2층 [엽서쓰기, 북카페]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쓸쓸함과 외로움,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 어린 나이에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야 말았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를 추억하는 문인들과 친구들 직장 선후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건빵을 먹으며, 별사탕을 먹으며 문학 속에 살았던 그의 잔잔한 미소가 그의 삶이 그렇게 쓸쓸하기만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조카의 증언에 의하면 한 편의 글을 쓰고 밤새도록 고치고, 또 고치며 자기의 글을 그렇게도 사랑했다고 한다.


1989년 새벽, 파고다 극장에서 시인 기형도는 뇌졸중으로 스물아홉의 젊은 생애를 마감했다. 유고시집을 남겼다.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그의 시가 어느 날 내 마음에 달라붙었어 떨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읽히는 이유는 그의 시에는 잘 살아보고 싶어 하는 시인의 결심이 들어있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함을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생각에 잠기게 하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수능 문제에 나오기도 해서 나보다 어린 세대는 기형도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상을 떠 돈 그의 시는 이제 맑게 갠 하늘처럼 희망을 노래하길...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기형도 시작 메모 1988.11)



질투는 나의 힘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