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고통을 노래한 "입속의 검은 잎"은 마음이 아리면서도 강렬한 인상으로 오랫동안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엄마 걱정"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 홀로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던 그의 어릴 적 쓸쓸하고 가난한 삶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기형도 문학관 공원
시인 기형도는 어린 시절부터 타계할 때까지 지금의 광명시 소하동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가계 전체가 가난하게 살게 된 일, 바로 위 누나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일, 안개가 많이 끼는 안양천이라는 주변 환경 등은 시인의 내면에 깊이 체화되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수준이 남달랐던 그는 연세대학교 정법대학에 입학하여 '연세문학회'와 더불어 안양지역의 '수리 시'동인에 참여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었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작품 활동을 하며 '시운동' 동인을 비롯해 많은 선후배와 교류하였다. 시집 발간을 준비하던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의 심야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같은 해 5월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다. [기형도 문학관]
기형도 문학관 풍경
1층 전시실은 여덟 개의 테마로 되어있다. 1. 시인 기형도 기형도의 삶과 문학 등 시인의 생애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 유년의 윗목 시인의 유년 시절을 중심으로 당시의 추억이 담긴 물건과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안개의 강 등단작 [안개]를 텍스트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4. 은백양의 숲 문학청년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의 동인 활동 및 대학시절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5. 저녁 정거장 등단 이후, 활발한 문단활동과 신민 기자로 일했던 일상의 단면을 볼 수 있다. 6. 빈집"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빈집]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7. 더 넓게 더 멀리 시인을 추억하는 지인들의 인터뷰와 평문을 말날 수 있다. 8.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생전 시인의 모습과 소하동에 위치했던 옛집의 사진, 노트에 그린 캐리커쳐 등을 볼 수 있다.
[기형도 문학관]
기형도 문학관 2층 [엽서쓰기, 북카페]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쓸쓸함과 외로움,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 어린 나이에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야 말았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를 추억하는 문인들과 친구들 직장 선후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건빵을 먹으며, 별사탕을 먹으며 문학 속에 살았던 그의 잔잔한 미소가 그의 삶이 그렇게 쓸쓸하기만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조카의 증언에 의하면 한 편의 글을 쓰고 밤새도록 고치고, 또 고치며 자기의 글을 그렇게도 사랑했다고 한다.
1989년 새벽, 파고다 극장에서 시인 기형도는 뇌졸중으로 스물아홉의 젊은 생애를 마감했다. 유고시집을 남겼다.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그의 시가 어느 날 내 마음에 달라붙었어 떨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읽히는 이유는 그의 시에는 잘 살아보고 싶어 하는 시인의 결심이 들어있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함을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생각에 잠기게 하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수능 문제에 나오기도 해서 나보다 어린 세대는 기형도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상을 떠 돈 그의 시는 이제 맑게 갠 하늘처럼 희망을 노래하길...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기형도 시작 메모 1988.11)